0.

‘좋아하는 일을 하라‘는 말은, 그래도 싫은 부분을 구체적으로 말할 수 없다면 그 일을 잘 모르는 것이다. 그래서 위험하다. 그 일이 놓인 조건, 일이 포함하는 다양한 활동, 그 안에서 맺게 되는 관계를 아우르며 총체적으로 일을 바라보아야 한다. 일이 놓인 조건에 만족하는 것과 일 자체에 만족하는 것은 다르지만 그 둘은 늘 서로 뒤섞여 있기 때문이다. 무언가를 좋아한다는 것은 언제나 조건과 상태를 전제한다. 65

새롭게 일을 정의하려면 일 속에서 맺는 관계망 역시 새롭게 정의해야 한다. 일이란 본질적으로 관계 안에 놓여 있다. 골방에 ㅊㅓ박혀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으며 아무에게도 영향을 미치지 않을 무언가를 만드는 활동을 우리는 일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일은 언제나 그 결과물을 세상에 내놓는 작업이다. 우리는 언제나 누군가와 함께 일하고, 누군가에게 물건이나 서비스를 팔며, 누군가로부터 노동의 ㄷㅐ가로 돈을 받는다. 일 속에서 만나는 사람들과의 관계가 건강하지 못하다면 우리는 결코 행복하게 일할 수 없다./행복하게 일하려면 ‘행복한 일‘의 정의를 공유하는 사람들이 필요하다. 255

1.

많은 사람이 입버릇처럼 ‘일하기 싫다‘고 말하지만 싫은 것은 대개 일 자체라기보다 일이 놓인 조건이다. 그저 싫다. 괴롭다 토로하는 대신 정확히 어떤 부분이 싫은지 구체적으로 파고들어야 한다. 거기서부터 무엇이든 하나씩 지금과는 ‘다르게‘ 해보아야 비로소 실마리가 드러난다. 49

절절한 연애가 결혼이라는 일상이 되는 순간 무수히 많은 결이 생겨나듯이, 일 역시 다르지 않다는 것을. 그래서 그저 좋아하는 일을 하겠다는 친구를 말리기도 한다. 51

번역가 정영목의 선택이 자신의 호불호와 현실 사이의 냉정한 타협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랬기에 ‘관성‘이라는 것이 생겨났다고 믿는다. 그 관성이 “번역할 책을 제가 고를 수 있는 위치”로 그를 데려다주었고, 그 일을 더 좋아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54

나 역시 진짜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몰라 오래 방황했다. 내가 어쩔 수 없이 택했던 전략은 싫어하는 것을 하나씩 피하는 것이었다. 눈앞에 보이는 대안 중에 절대적으로 싫은 것을 피해가며 살아왔다. 그렇게 싫어하는 것을 하나씩 알아가다 보니, 내가 좋아하는 ‘것-들‘의 조합이 무엇인지 조금씩 뚜렷해졌다. 그리고 그 조합이 하나의 변치 않는 정답이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내가 변화하고 성장하는 만큼 좋아하는 일 또한 달라질 수 있다. 58, 59

좋아하는 일도 당장 하고 싶은 일, 1년만 하고 싶은 일, 10년동안 하고 싶은 일이 다르다. 게다가 그것들은 때로 상충한다. 인생에 딱 하루가 남았을 때 하고 싶은 것과 10년이 남았을 때 하고 싶은 것이 같을까? 10년을 내다보며 하고 싶은 일보다 마지막 하루 동안 하고 싶을 일에 무조건 더 열정을 쏟아야 할까? 아니면 10년의 꿈을 위해 오늘 당장 하고 싶은 일을 다 유보하며 살아야 할까? 상충하는 여러 욕구 사이에서 우선순위를 결정하고 그 사이의 조화와 균형을 고민하며 나아갈 수밖에 없다. 64

‘좋아하는 일을 하라‘는 말은, 그래도 싫은 부분을 구체적으로 말할 수 없다면 그 일을 잘 모르는 것이다. 그래서 위험하다. 그 일이 놓인 조건, 일이 포함하는 다양한 활동, 그 안에서 맺게 되는 관계를 아우르며 총체적으로 일을 바라보아야 한다. 일이 놓인 조건에 만족하는 것과 일 자체에 만족하는 것은 다르지만 그 둘은 늘 서로 뒤섞여 있기 때문이다. 무언가를 좋아한다는 것은 언제나 조건과 상태를 전제한다. 65

고정된 일터에서 ‘해방‘되는 것이 기쁜 소식이기만 할 리는 없다. 불안정성을 그 대가로 받아들여 얻은 능동적 자유가 어떤 사람에게는 골치 아픈 숙제에 불과할 수도 있다. 68

지나친 자기애에 빠져 있다면 적절한 가면을 쓸 수 없다. 관계 맺기에 대한 두려움으로 움츠려 있을 때도 마찬가지다. 적절한 거리를 두고 일과 환경을 바라볼 때만 우리는 기꺼이 가면을 쓸 수 있다. 그때야 비로소 쓸데없이 상처를 받지도 주지도 않으며, 사회적 관계 안에서 적절한 역할을 해낼 수 있다. 더 많은 종류의 가면을 쓸 수 있어야 그 주체는 ‘사회적‘인 주체일 것이다. 77

가면 쓰기의 과정에서 건강함을 잃지 않으려면 필요한 전제조건이 있다. 스스로 주체가 되어 대본을 써내려갈 수 있을 때만 우리는 가면을 쓰고서도 소외나 자기연민의 덫에 빠지지 않는다. 그래야 비로소 그 모든 가면이 ‘나‘가 된다. 일이 벌어지는 자리는 다양한 주체의 대본들이 교차하는 장인 동시에 공동의 연극이 공연되는 무대다. 76

2.

일을 돈벌이의 결로 환원해버리는 것이 합당하지 못하듯이 일에 존재하는 돈벌이의 결을 무시하는 것도 똑같이 현실을 부인하는 태도다. 활동가의 일에는 ‘사회적 의미‘라는 결이 가장 위에 놓이겠지만 그 아래에 돈벌이의 ㄱㅕㄹ, 즐거움의 결 등도 분명히 존재해야 한다. 돈벌이가 전부라는 중독에 빠지지 않으면서도 돈벌이의 무게를 부인하지 않아야 얼마큼의 돈벌이를 감당하며 살아갈지 냉정히 판단할 수 있다. 거기서부터 시작이다. 88

3만엔 비지니스 – 한 달에 이틀이상 일하지 말 것. 경쟁을 유발하지 않는 착한사업일 것. 94

자신의 일상을 돈벌이 경제 밖에서도 그럭저럭 꾸릴 수 있다고 믿을 때, 그것도 꽤 즐겁고 행복하게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할 때 세계에 대한 우리의 공포는 사라진다. 공포만 사라져도 일은 훨씬 ㄷㅓ 수월해질 것이다. 어느 날 일자리를 갑자기 빼앗기고 돈벌이 경제 밖으로 밀려난다고 해도 삶 전체가 당장 나락으로 빠져들지는 않을 것이란 믿음이 오늘의 고된 일을 좀 더 견딜 만하게 해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일의 다양한 결들이 좀 더 모습을 드러내게 되고 일이 지닌 돈벌이의 결조차 한층 부드러워질 것이다. 99

한 인간의 ‘열심의 총량‘을 마냥 늘릴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갖고 있는 열심 용량 대부분을 밥벌이에, 그것도 그다지 원치 않는 밥벌이에 쏟아넣을 수밖에 없는 세상에서 재미있는 일을 찾기란 하늘의 별따기다. 그 때문에 개미에게도 베짱이에게도 세상이 재미없고 사회도 이 모양 이 꼴은 아닌가 147

교육과정의 목표는 ‘좋은 일자리‘이고, 얼마나 많이 안정적으로 돈을 벌 수 있느냐가 일자리의 질을 판가름하는 절대적인 기준으로 자리 잡는다. 공동체 안에서 얼마나 감사받고 인정받느냐는 중요한 ㄱㅣ준이 아니며, 그런 감사와 인정을 측량할 기준조차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시장의 감사와 인정이며, 그것은 늘 화폐로서 명징하게 수량화된다. 216

등가교환의 시대(하류지향)-현대의 샐러리맨 아버지는 노골적으로 언짢은 얼굴을 가지고 돌아옴으로서 가족을 위한 노고와 희생을 과시한다는 것이다. 사냥꾼이 사냥한 짐승을 들고 오듯, 농부가 곡식과 채소를 지고 오듯/가족 전원이 ‘우리 집에서 ㄱㅏ장 많이 불쾌하고, 가장 많은 불이익을 받는 사람은 누구인가‘를 둘러싸고 패권 경쟁에 열중하게 된다. 217

세넷은 자율이 “타인에 대해 당신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받아들인다는 의미로, 불투명한 평등”이라고 말한다. 상대의 다름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다름을 이해한다는 뜻이 아니다. 이해할 수 있어야 받아들이는 관계는 평등한 관계로 이어지지 않는다. 이해해주는 자와 이해받아야 ㅎㅏ는 자의 위계가 들어서기 때문이다. 227

어떤 사람이 대체 불가능한 존재가 된다면 기업의 평가 시스템으로 점수 매겨지는 ‘능력‘때문일 수는 없다. 대체 불가능성은 능력의 양이 아니라 그 사람의 존재가 만들어내는 질적 차이에서 나온다. 그런 대체 불가능성이 현실에서 효력을 발휘하려면 그 차이를 발견해주는 조직이, 즉 사람‘들‘이 필요하다. 기업에서 우리가 언제나 대체 가능한 인력으로 소모되는 이유는 단순하다. 기업이 대체 불가능하다고 생각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기업이 일을 규정할 때 각 존재가 만들어내는 질적 차이에는 관심을 두지 않기 때문이다. 230

이러한 변화는 ‘우리‘만의 측정 기준, 그 기준에 따라 움직이는, 좀 다른 구조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236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고 싶다. 내가 하는 일이 가치가 있었으면 좋겠다. 그러면서 생계를 유지하면 좋겠다. 249


볕뉘

0. 책방의 책꽂이를 살펴보다 손에 집어든 책이다. 참고문헌이 많이 겹쳤고, 막 읽은 과로사회처럼 좀더 예민하게 살펴볼 부분은 있을까? 저자의 이력도 독특해서 다시 보았다. 주인장의 페북활동 안내도 있기도 했다.

1. 자신의 꿈과 좋아하는 일은 무척 알기가 힘들다. 그래서 함부로 좋아하는 일과 꿈을 혀끝에서 쉽게 놀리면 안 된다. 가장 긴 노동시간이 24시간 회전 시장을 만들어내고, 그 숱한 교육의 배출구는 여전히 세븐일레븐 7to11의 불꺼지지 않는 일터이다.

2. 저자의 고민의 결이 다양하다. 그래서 고정관념에 사로잡힌 일과 꿈의 개념을 흔든다. 흔들고, 빠져서 새 이가 나왔으면 좋겠다. 여전히 진행형일 수밖에 없다. 이런 것이다 선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일상의 삶들로 그 간극들을 메워나가야 할 것 같다. 그래서야 조금 더 나은 텍스트가 만들어질 수 있을 것이다. 막 사유와 활동의 출발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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