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가당착

 

운동엘리뜨

 

 그가 운동의 대장정을 나선 것은 '방송'때문이었다.

 그녀가 운동의 대장정을 나선 것도 '엘'때문이었다.

 공부에 시달린 청춘과 시대에 대한 염쯩은 살포시 퍼지는 '방송'의 마력과 시원시원함때문에, 애국적 열정은 더욱더 불타오르게 되었다. 사실들은 모두 수렴되어가는 것이었다. 사회주의권이 변하고 말고가 문제가 아니라 굳건히 버티고, 화려한 전술에 매료될 수밖에 없었다. 점점 더 몸은 전적인 신뢰를 더해갔다. 어찌 조중동 나부랭이의 신문을 믿을 수 있을까? 비방한다는 부류를 이해할 수 없다.

 

 

 

공부하는 것은 내 취미하고도 맞지 않다. 말 많은 놈들. 책을 핑계삼아 하는 것들은 하나도 없는 것들이지 않는가?

 

요즘 점점 불안하다. 내가 민주주의를 알기나 하는 것일까? 폭력배라고 하지만 내가 저지른 폭력을 무엇이란 말인가? 절차적 민주주의라 하지만 경도되어 다양성의 수렴보다 절차만 지키면 그뿐 아닌가라는 행태를 대의아래 봉사시키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내가 성폭력을 알기나 하는 것일까? 교육받은 것과 부르조아만 하는 것을 나도 일상적으로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저놈 피디들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 하는 짓들이라곤,

저년 엔엘들은 도저히 이해도 되지 않는다.  시민운동하는 것들이라 변호사하고 비싼 술 먹고...그러면서 허구헌날 술을 퍼먹고 있다. 운동은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이라며 운동관료가 된 나는 매일 그 비싼 술을 축내고 있는 것이었다.

 

뻔뻔이 1.2.3

 

아줌마

애를 낳으니 온통 사물이 애를 중심으로 정해진다. 이쁜 얼굴도 찍고 먹을 것 신경써야지 온통 정신은 육아로 몰려지는 것이었다. 내가 언제 활동했었야고, 사회활동에 관심있었던 것인지 온통 일상은 육아에 모아졌다. 이정도 열정이면 아동학 박사논문은 몇권은 냈으리라. 

어떻게 애를 기죽일 수 있으랴. 귀찮게 제사는 무슨제사. 일도 공평해야하는데.

공평이

제멋대로

운동신참

뭔가 될 것 같다. 운동과 관계없고, 당나라당 선배와도 관계했지만, 나의 정치적 야심은 이 기회로도 맛닿으리라.

우리 노선이 승리해야한다. 주도권을 잡으려면. 나의 피끓는 민중에 대한 사랑을 몰라주는 것인가? 반드시 알 날이 있을 것이다.  볼세비키 아니었던가? 민중을 도도한 흐름을 모르고, 운동사기꾼들만 경도 된 것은 아닐까?

도오사

'도'를 아는가? 음양의 조화도 모르는 것들이 무슨 운동을 한다고, 매일 싸움만 해대고 말이야

성공이

운동권이 엉망이다. 정말 왜 그렇게 일하는지 도통 수준이하이다. 바보같은 짓만하고 있다.  나의 원대한 꿈은 우리조직을 잘 만들어 모범을 보이는 것이다. 왜들 일들을 그렇게 하는지 모르겠다. 그것도 모르는가? 이렇게 하고 이렇게 하면 되지 않는가?  다들 어리석다. 우리가 하는대로 하면 될텐데말이다.

대시니

아줌마들은 대신 산다. 매니저의 삶이기보단, 한술 더 떠 똑 같은 일상을 살고 있는 것이다. 아니 다시 살고 있는 것이다. 유아는 물로 초중학교를 대신, 그런 바보가 있을까? 대리만족과 대신사는 삶

 일마니

나의 사전엔 퇴근은 없다. 지리한 일상이지만, 나의 착함에는 일밖에, 주말 놀고 싶어도 불안하다. 일터에서 쉬는 편이 마누라나 자식들에게 들복이지 않고 편하다. 그러고보니 일 외에 할줄 아는 것이 없다. 번듯한 취미도 동선도 제한되기는 마찬가지.  집회 현장도 가본적 없고, 신문 외에 다른 정보에 관심도 없다. 전공이외의 서적은 진절머리가 난다. 일어본 책이라곤 처세책 몇권일뿐

 

말무니

귀멍어리, 듣되 듣지 않고, 말하되 듣지 않고, 말하고 말만하구.  하고싶은 것, 단체나 사람이나 단면만 보고 판단하는 것은 아닐까? 독선이나 자만이 도를 넘어설 경우, 인식의 선에서 배치되고, 배치되거나 한다. 그 이면은 중요한 것도 필요한 것도 아니다. 인식의 선만 필요한 것. 자신이 없어지면 아무것도 아니다.

봉거니

 

초기 자본주의는 근검-절약성이었다. 부르조아가 시대를 극복하게 했던 것은 최소한 습속이 달랐기 때문이다. 성장의 맛을 본, 꼼꼼함도 근검절약도 없는 것이다. 풍요에 넋을 놓은 것인가?

 

권리니

 

대표적 자중심성과 권리찾기의 도착증세는 무엇일까? 뻔뻔함을 넘어서는 무엇이다. 아이를 음식점에 방임하며, 타이르는 사람에게 애 기죽인다는 부모. 아이와 자신의 권리만이 박혀있다. 타인과 관계, 공공장소의 예절 무시는 보수를 넘어서 질타받고 있는 것은 아닐까? 주장만 있지 하여야 할 의무에 대한 시선은 어디에서도 살펴볼 수 없다. 활동권도.. 예외가 아니라는 점이다.

 

신 노예근성


1.

어쩌면 내속 깊숙이 그늘을 드리운 것은 ‘하지말라’는 소리에서인지도 모르겠다

국민교육헌장만 암송된 것이 아니라,

입속에 무의식중에 배여나오는 소리는 늘 ‘하지말란’ 소리다.

아이를 키우고, 같이 자라지만 기껏 가르치는 것이 ‘하지말란’소리다.

그러다보니 나의 출구는 늘 변칙에서 잉태되는 듯하다.

남이 잘되는 것이 배가 아픈지도 이미 오래다.

오늘도 ‘뒷담화’를 즐긴다. 이래서 안되고, 저래서 안되고 되지 않는 투성이다.

남이 안되는 것에서부터 쾌감의 출발이다.

어디서 이렇게 뿌리깊은 근성이 시작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점점 더 강렬한 강도로 커지는 잔인함에서 묘한 미소를 띠게 된다.

이젠 스스로 하는 것을 잃어버렸다.

‘하지말란’ 소리에 인이 베겨 하는 재미도 잊어버린 것 같다.

그저 자극하는대로 뱉고, 웃고,  ‘하는 것’에 대한 고민은 이미 고통으로 자라버렸다.

피자와 콜라가 배달되듯, 오늘도 풍요의 바다에 휩쓸려 떠다닌다. 떠다니기에도 빠듯하다.

싸구려개그에 영혼도 팔아버리고 정신없이 벌어진 입을 다물기에도 벅차다

 

4.

'속도전'에 취해 돌아보는 것을 모두 사치라고 여기고 있는 것은 아닐까? 집단망각처럼 새로운 것이 나타나면 모든 시선을 주고, 맘을 주는 어리숙함. 애초에 '돌아봄'은 우리의 취향이 아닌 듯, 도대체 시선은 앞만 향해있고, 자신의 행적에 대해 무감각해져 버린 것은 아닌가? 저자는 지금의 현실을 로마의 폐망직전으로 묘사한다. 사우나와 식당과 환락이 뒤범벅이되어 먹고, 마시고, 즐기고... ...세상은 온통 욕하기 바쁘지만, 자신의 행적에 대해선 객관적 시선을 잃는다. 무한한 관용, 타인에게는 잔인할 정도의 인색함이 우리라고 한다.

050115

5.

피해의식 - '내가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스캔들 ' - 변이 자중심성, 개성이 강하거나 자기 주장이 뚜렷하다거나라는 것과 씨부터 다른 것 같다. 어쩌면 군사문화가 그 책임소재의 8할이상은 가지고 있다고 본다. 지휘고하를 막론하고, 본질적인 생활의 논리는 내 위주이다. 나를 중심으로 돌지 않으면, 병장의 반경으로 상병-일병-이등병이, 상병의 원으로 일병-이등병이, 일병의 반경으로 이등병이 돌아줘야 움직이는 시스템은 찬란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고 있다. 병장은 쫄병들 누구에게나 뒷담화에 주제다. 하지만 현실은 언제나 일사분란하게 병장 중심으로 도제가 형성되어있다. 화장실 청소까지? 그런 면에서 남,녀를 불문하고 자중심성의 늪에서 도망갈 수 없다. 나는 아니라고 해도, 엄연히 그 포로가 되어 있다.

집단이 성찰해서 벗어날 수 있을까? 내가해도 스캔들, 남이 해도 스캔들이란 바닥을 언제쯤 치고 올라올 수 있을까? 그런 빈틈은 있는 것일까?

6.

환상은 마치 마약과 같아서 취하면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 들지요. 하지만 깨어나면 허탈하기만 합니다. 어제 황우석 박사의 기자회견을 보면서 우리 사회에 지금 필요한 것은 금단현상을 이겨내려는 굳은 의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진*권, sbs 창과*패, 1. 13 )

 

언젠가 남겨둔 흔적

 

오늘도 정세와 입장이 중요하다는 말씀올 듣는다. 지도자의 선택에 따른 운동흐름이 바뀔
수 있다는데 일견 동의하지만, 수긍하기가 쉽지만 않다.

1. 늘 술자리가 되든 그렇지 않든 ‘전투적 문화’ 이것도 무의식중 군사문화 잔재라 볼 수 있
는가? ‘아군과 적군밖에 없는~’ 친하면 아주 친하구, 아니면 뒷담화주제거리로 전락하고 마
는, 하늘과 량차이만한 간극~ 쟁점이 붙는다. 표현하는 바, 의중에 우회하지 않고 직선타
를 날린다. 잘 잘못을 떠나 의중에 정확히 박힌다. 의중이 발가벗겨진다. 이젠 입장이 중요
한 것이 아니다. 셜전의 와중에 흠집을 집요하게 찾아낸다. 드디어 발견이다. 역전타. 모임
의 전투성은 활동가!에 인접할 수록 강하다. 오늘 판결내지 않으면 되지 않을 듯, 의기가 충
천하다.


2. 정세와 입장을 거꾸로 따라가볼 수 있을까? 모두 참이라고 할 수 있을까? 언젠가는 그릇
된 판단올 했올텐데. 앞만 볼 줄 알아 뒷그림자는 볼 수 없는가? 얼마나 열심히 무엇올??
정치운동의 중요성을 모르는 것은 아니나 그 열정을 회석화하자는 것도 아니나


3. 모임이 늘 진위만 가리려 한다면? 옳고 그름만 따지려한다면? 상처난 감정들로 상대방이
들려주는 다른 모습과 견해는 잊혀지는 것은 아닌가? 그 흔하디 흔한 모임의 식탁에 파업
이라는 화두의 요리가 나왔다고 치자? 사람마다 까다로운 입맛, 기호의 차이가 명백해 다른
맛, 다른 식사방법을 나눈다면 좀더 배려할 수 있지 않을까? 이 음식에 대해 이런 부분올
모른다고 이야기해줄 수도 있을 것이고, 이 음식의 참맛을 보기위해선 이런 조리방식까지
들여다 보아야한다구. 이것은 영 입맛에 맞지 않으니 다른 음식부터 맛보아야 하지 않느냐
구. 그래야 다음에 만나면 상대방 식성도 고려하지 않을까?


4. 한번 보고 그칠 사람들은 아닌데, 늘 전투코드는 의욕을 상실하게도 한다.

5. 대중과 활동*의 벽은 점점 높야지는 것은 아닌가? 높아지는 벽을 ‘허물기위해 오로지 한가지 정공법만 태하는 것은 아닐까? 어딘가 금간 곳이나 틈이 있을텐데. 동시대를 살아가는 시대인으로서 뭔가 다른 방법도 있을텐데. 내 피붙이 교육이나 나혼자만 살 궁리하지 않고 비정규직이 마음에 들어오게 하는 방법이나 전술은 없는 것일까?


6. 지도부와 집권만하면 된다고 하는 것은 아니겠지? 헌신과 의무만큼, 흑자는 경험만큼 잠재된 이론올 가지고 있다는 말씀이 아니라도 삶은 무궁무진한 이론투성이 정세투성임을 모르는 것은 아니겠지? 계몽은 가고 벽을 허무는 동선과 움직임만 남으면 좋겠다. 초록이 너무 짙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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