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라디오 소리가 들립니다. 어린 부모가 탯줄을 달고 있는 아이를 피시방 화장실에 유기했습니다....사지도 않을 사람이 머리통만 두드리고 가는 오후입니다....심지가 타들어가 터지는 폭탄처럼 저렇게 입술이 바짝바짝 탑니다...바나나가 익어갑니다. 그 옆에서 수박도 함께 꼭지를 말리고 있습니다.‘ – 이 내용은 ‘라디오‘라는 시를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본 것이다. 아마 시인은 라디오로 이 뉴스를 들었을 것이며 마음을 괴롭히며 어른 거리던 시상을 모았을 것이다. 읽어내리면 아무렇지도 않거나 시에서는 오히려 튀어보이는 대목이, 사진의 음화처럼 거꾸로 보면 충격이 와 닿는다. 이런 틀은 ‘근원적 골짜기‘에서도 유사하게 반복된다. ‘ 자신의 아파트 난간으로 아이들을 떨어뜨렸던 여자가 있었다. 사과나무는 자신이 떨어뜨린 사과에 대해서 생각중이다. 어쩌면 구름을 바라보는 당신의 습관도 조금은 바뀌어야 할지모른다. 사과나무를 이해하기 위하여 바람이 불어오는 골짜기를 쳐다봐야 한다.‘고 말한다.

생활이라는 생각이라는 시집 가운데 덩어리라는 시는 정육점에 걸린 고기. 프랜시스 베이컨의 그림을 연상케한다. 사회가 뱉어내는 틀에박힌 삶은 사육, 정육, 그리고 덩어리로 존재한다. 그리고 그는 사육에서 정육으로 향하는 붉은 길을 도축이라 부른다. 사육의 기술을 소명받은 우리의 삶이자 한계라고 적는다. 결정적으로 무너지기 위해 존재하는 삶. 살인의 기술에 ㄱㅏ까운 무표정한 일상을 살아내는 우리를 묘사한다.


2.

비는 오고 빗방울을 굵어지고, 온갖 구멍들은 물로 채워진다. 온갖 것들을 녹는다. 녹아있는 것들로 존재한다. 7월 휩쓸고 가는 장마처럼 잠ㄱㅕ있다. 잠겨져 있다. 시인에게는 일인용 잠수정이 있다. 비린내를 맡으며 끊임없이 녹고있는 것들을 생각하며 잠수한다. 녹은 것들의 냄새를 맡아가며 의심한다. 물살을 거슬러 천천히 일정한 속도로 ㄱㅓ슬러 오르는 기술을 배웠다. 빗속에 완전히 몸을 잠그고 걷는 법을 말이다. 그래야 제자리에 있을 수 있다는 것을 말한다.

세상은 딴 사람은 없는데 잃은 사람만 있는 판돈같은 이야기와 때린 사람은 없는데 언제나 아픈사람만 있는 이야기로 가득차, 눈코입도 없이 자꾸만 따라다니는 달걀귀신만 득실거린다. 채무의 삶만 있는 세계. 우리는 볼 수 없고, 들을 수 없다.(있을 뻔한 이야기)

전기가 나가면 우린 동작을 멈추고 듣기 위해서 눈을 감고, 보기 위해 입을 다문다.(암전) 나머지의 세계에선 죽음의 사이사이 공기가 조금씩 더 무거워진다. 그 피와 살과 뼈를 뺀 나머지가 공기 속으로 녹아들며, 그 공기를 통해서만 적대감과 친밀함을 느낄 수 있다.(나머지의 세계)r 그는 비를 ㄷㅓ 맞는다. 죽은 화분에 귀를 기울인다. 빈틈없이 물을 채운다. 그래야만 더 젖지 않고 녹는 것을, 녹은 것을 냄새맡고 볼 수 있다. 포기만이 정답이다.


3.

그런 그가 화난 사람들에게 돌멩이를 하나씩 들게한다. 가슴에 사무쳐, 눈물이 맺힌 돌멩이를. 여전히 내리 꽂히는 빗줄기. 쇠창살 같은 빗줄기. 맞아도 아픈 그 자리에 비가 내린다. 내리는 빗속에서 더 이상 젖지 않는 것들은 이미 젖은 것들이고, 젖은 것들만이 아는 비의 무게. 우리는 언제나 물의 한가운데서 목마르다. 목마르다. 그러나 웃음. 천국.

껌도 세계적으로 씹고, 침도 세계에서 제일 잘 뱉는 우리 십대가 징표다. 좆나 씨발을 발음하고 침을 덜어내는 여중생 십대가 천국의 아이들이다 (뉴스의 완성, 천국의 아이들) 사라지기 전에만 나타나는 그믐. 구멍을 통해 구멍을 본다. 눈을 본다는 것은 생각보다 위험한 일이다. 구멍에서는 질문들이 끝도 없이 쏟아진다. 지문을 지우는 지문처럼, ㅈㅣㄹ문을 지우는 질문처럼.(그믐, 지나친 사람)


4.

포기를 받아들이는 것만이 삶을 지속하는 유일한 조건이 된다고 당신에게 질문한다. 질문하고 있다. 너의 웃음만이 당신을 현상할 수 있다.(까다로운 주체) 당대를 과도기로 보는 발전주의자들을 혐오한다. 우리는 최선을 다해 무너져가고 있을 뿐이다. 그래도 웃음은 이성을 마비시키는 것 이상이다. 입맛 없이 우겨넣는 식사같아야 한다. 현재를 살아가는 데 소요되는 비용이다.(시 농담을 위한 삽화)


낭떠러지

샤워기의 물줄기에서 이따끔씩 강의 냄새가 난다
강에 사는 것들의 체취를 느끼면서
나는 물살을 역류하는 물고기가 된다

미끌 하며 중심을 잃을 때
꼬리뼈에서 감지되는 낭떠러지
허공으로 뻗친 넝쿨손 같은 것이 잠시 잡힌다

낭떠러지에서는 긴 꼬리의 원숭이가 된다
움켜 쥔 허공은 손아귀를 빠져나가고
나는 지지대를 잃고 결정적으로 추락한다

떨어지지 않기 위해서 원숭이가 되었다가
떨어지면서 다시 새가 되지만
사실상 떨어지는 내내 나는 온전히 나 자신으로
가장 촘촘하게 추락을 몸에 새기는 중이다.
.

징후와 예후만으로 이루어진 위독의 자리, 훌륭한 칼잡이가 된다는 것, 훌륭한 칼놀림이란 죽이면서 또한 구하는 것. 이라고 시인은 시집이 마무리된 말미 시인의 말을 이렇게 마무리하고 있다. 정육에서 덩어리로 향하는 도축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온다. 구하면서도 죽이는 것. 죽이면서도 구하는 것. 시인과 시, 시들 그리고 시를 읽는 이들은 할말이 많다. 무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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