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롭다. 새로운 우정, 새로운 반려, 다른 삶의 관계를 촉발하는 무한히 정치적인, 외로움.

1. 책을 쓰게 된 배경

정념과 정동에 관한 이 책의 논의들은 필자의 연구 작업과 고민의 이행 그 자체와도 연결되어 있다. 맨 처음 정념에 대해 고민하게 된 것은 파시즘 연구를 시작한 연구자로서의 출발 지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28
이 글은 먼저 새로운 파시즘의 징후가 세계화와 이에 따른 위기감의 만연, ㅎㅕㄴ존하는 ㄷㅐ안적 패러다임의 한계 및 이에 대한 반작용에서 생성된다는 점에 초점을 두고 논의를 전개하고자 한다. 또 이를 통해서 현재 한국 사회에서 파시즘적 징후를 사유하는 일이 사회적 약자의 해방의 사상과 실천을 다시금 탈환하는 일이라는 점을 제기하려고 한다. 258-259

처음에는 외로움과 환멸에 대해, 그리고는 ‘부적절한 정념‘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다. 그리고 부적절한 정념에 대한 고민은 그 자체로 이행의 열쇠를 풀어보고자 하는 문제와 결부된다. 즉 무능력자, 부랑아, ‘문란녀‘와 미숙한 청소년들은 과연 역사적으로 어떻게 정치적 주체로 이행하게 되었을까? 그 열쇠 말을 얻기 위해 ‘부적절한 정념‘이라는 말 그대로 희미한 불빛을 좇아 몇 년을 방황했다. 그 ‘방황의 길‘에서 풍기문란에 대한 연구를 시작하게 되었고, 정념의 표지들을 하나하나 좇아가다가 정동 이론과 조우하게 되었다. 또 정동 이론 연구와 함께 정념을 정치적 차원에서 연구하는 흐름들은 정념의 바다에서 허우적거리다가 익사 직전에 발견한 불빛과 같았다. 28

부적절한 정념이라는 흐릿한 불빛을 붙잡고 방황하던 필자의 연구 작업에서 정동 이론과의 조우는 그 자체로 정념에서 정념-론으로의 이행의 계기가 되었다. 30

2. 파시즘 연구

한국 사회에 만연한 자살률 증가 현상과 출산 거부 현상은 인간을 재생산 기계로 몰아온 한국 사회의 고질적인 사회 구조의 ‘부정적 효과‘라는 점이 명백해진다....자살과 출산 거부는 단지 만성적인 ‘사회 문제‘가 아니라, 인간을 재생산 기계로 몰아온 한국 사회의 구조적 문제라는 인식이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가 한국 사회가 파시즘의 경험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한 채 지속적으로 파시즘적 사회 구조를 강화해 온 과정에서 비롯되었다는 인식 또한 필요한 것이다. 282

파시즘은 인간을 사상, 문화, 정치를 통해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생존이라는 신화를 통해서 재규정한다. 그런 의미에서 파시즘적 인간형은 생존의 노예이다. ...한국 사회에서 사회적 약자는 삶과 자신의 목소리를 통해 존재를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죽음과 유언으로만 자신의 부재를 증명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죽음의 정치는 한국 사회에서 너무 오래, 그러나 언제나 새로운 방식으로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286-287

파시즘의 징후를 분석하는 일은 단지 특정 정당의 정책 변화나 집권 집단의 성향을 분석하는 일로 환원될 수 없다. 오히려 파시즘적 징후에 대한 분석은 사회 전체의 집단적인 심성 구조 변화의 결을 살펴보는 일이며, 특히 사회적 약자의 심성구조, 자기 인식의 준거와 그 변화 등을 읽어내는 일과 관련된다. 260

파시즘의 정체성 정치의 핵심은 그간 사회의 이면에서 호출되지 못했던 존재들을 사회의 전면으로 부상시킨다는 점이다. 역사적으로 보자면 식민지 조선에서 효과적으로 호출된 집단은 청년, 부인, 소국민이었다. 261

파시즘이 현존 하는 모든 것에 대한 안티테제로 자신을 정립할 수 있었던 것은,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페미니즘과 반페미니즘, 진보와 보수 등등 현존하는 이념에 대한 대중의 만연한 환멸과 피로감에 안티테제적 호소가 효과적으로 작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한겨레도 조중동도 편파적이기는 매한가지라는 심성구조로 변화...페미니즘도 문화상품으로서도 매력을 잃은 지 오래고, 그렇다고 ㅎㅐ서 사람들이 반 페미니즘에 적극적으로 동의하지도 않는다. 다만 페미니즘이라는 말 자체가 ‘지겨울‘뿐이다.)262-263

최근 한국 사회에 만연한 파시즘의 징후도 ㅅㅏ회적약자의 ㅎㅐ방의 사상과 정치에 대한 기대감의 좌절과 깊은 관련이 있다.....게다가 초ㅣ근 대중에게 만연한 환멸과 피로감은 세계적인 경제 위기를 통해서 극점에 이르렀다…1차 세계대전의 역사적 판본이 ‘입신출세주의‘라면 현재적 판본은 ‘실용주의적 전환‘이라 할 것이다. 264

이명박 정부에 대한 유권자 과반수 이상의 지지를 ‘자영 自營‘에 대한 기대와 환상이라는 차원에서 검토할 필요가 있다.....기존의 집단적 주체성에 대한 피로감에 젖은 집단들에게...스스로 경영한다는 ‘자영‘의 이념은 집단적 주체성과 이와 결부된 개념들, 특히 노동, 신체, 노동을 통한 정치화 등과 다른 의미화 방식으로 정체성을 재규정한다. 특히 이는 만연한 경제 위기 속에서 세계 속에 맨몸으로 내던져져 있는 것과 같은 존재론적 불안감에 시달리는 사회 구성원들의 위기감에 호소하는 일이기도 하다. 265-266

국밥집 할매와 자갈치 아지메의 일은 가족을 위한 헌신적인 노동으로, 맨 몸으로 세계와 맞서서 가족을 지켜내는 것으로 의미화 된다. 이를 통해 노동은 갈등과 투쟁의 장이 아니라 가족의 생존을 위해 막막한 세계 앞에서 맨 몸으로 홀로 맞서 싸우는 일이 된다. 싸워야 할 대상은 저 위기로 ㄱㅏ득한 세계이고 ㅈㅣ켜야 할 것은 가족의 생존이다....그런 점에서 ‘민주화 시기‘의 노동과 삶의 관계를 규정하던 의미 맥락과 완전히 이질적인 세계이다. 269 이 정체성은 기존의 페미니즘적인 여성 주체성과도 상이하고 노동자라는 집단 정체성과도 상이하다는 점이다. 269 국밥집 할매와 자갈치 ㅇㅏ지메로 상징되는 이 정체성 정치의 준거는, 기존의 진보/보수, 페미니즘/반페미니즘적인 집단적 주체성의 정치 모두에 ㄷㅐ한 안티테제의 성격을 명확히 지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아ㄴ티테제가 수렴되는 것은 생존의 절대성, 모든 이념을 넘어선 ‘실용‘의 세계이다. 270 이러한 세계 속에 모든 존재는 홀로 서있다. 거기에는 어떠한 사회적 유대 관계도 존재하지 않는다. 존재하는 것은 고립된 존재의 생존을 우ㅣ한 투쟁, 그 막막한 세계를 신화로 만드는 이미지뿐이다. 이를 통ㅎㅐ서 생존은 기존의 모든 ㅇㅣ념을 ㄷㅐ체한 ‘대안‘이 도ㅣㄴ다. 270

파시즘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자발성이다. 271 전 ㅅㅏ회 내적으로 적대의 관계가 조밀하게 재구성되고, 사회 구성원들이 적대의식을 내면화함으로써 자발적으로 파시즘에 참여하게 되는 역학이다. 역사적 사례를 통해서 볼 때, 이러한 자발성을 효율적으로 작동시키는 것은 경쟁의 내면화, 혹은 생존 논리의 이념화이다.272

파시즘이 생존을 이념과 인간 존재의 진리의 차원으로까지 격상시키는 과정에는 사회 내적으로 만연한 위기감이 중요하게 작용한다. 273 경쟁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내 옆에 존재하는 인간이 다름 아닌 나의 경쟁 상대, 즉 내가 이겨야 할 적이라는 인식을 내면화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심성 구조 하에서 사회의 모든 인간은 적으로 간주되고, 적으로 간주된 존재를 절멸시키는 기획에 동참하는 일은 손쉽게 이루어진다. 274 경쟁 기계로서의 인간이란 사상이나 정치와 무관하게 자신의 성공에만 골몰하는 인간이다.

파시즘에서 살아남은 자들 이외의 나머지는, 항시적으로 반사회적 존재, 낙오자, 무능력자 등등의 이름으로 노예상태에 내몰렸다.(위안부 홀로코스트,호모사케르) 275

파시즘의 절멸의 기획이 말살, 성노예화, 비국민화와 관련이 깊고, 이것이 ‘합법적‘ 절차를 통해서 수행되었다는 점, 즉 인간에게 모든 권리와 특권을 완벽하게 박탈하는 일이 법의 이름으로 자행되었다는 것을 새삼 환기할 필요가 있다. 276-277

한국 사회에서 법적 판단의 기준은 일본 식민통치가 파시즘으로 전환되는 문턱에서 만들어졌는데, 대표적인 것이 풍기문란 통제와 사상 통제라는 두 가지 형식이었다. 특히 문화와 사상에 ㄷㅐ한 검열과 통제의 법적구조는 한국 사회에 여전히 남아있다. 278

파시즘이 상상하는 인간은 사상과 신념, 정치와 문화와는 거리가 먼, 재생산의 기능과 역할에만 충실한 존재이다...파시즘이 그토록 강박적으로 사상과 신념에 ㄷㅐ한 억압적 통제에 골몰하는 것은 ㅇㅣ 때문이다. 또 경쟁 기계로서의 인간이란 사상이나 정치와 무관하게 자신의 성공에만 골몰하는 인간이라는 점에서, 파시즘의 이상, 그 죽음의 상상력의 완벽한 실현이다. 281

파시즘의 절멸 기획은 말의 권리에 대한 합법적 박탈의 과정이며, 여기에는 사상 통제와 정보 통제 역시 포함된다. 이와 함께 중요한 것은 성노예화의 경우에 명백하게 나타나듯이 아예 어떤 존재를 말 이전의 세계로 전이시키는 것이다. 이는 파시즘적 통제가 사회를 불가지론의 구조로 재조직하는 것과도 관련된다....파시즘적인 사회 체제하에서 세계는 음모론적이고 불가지론적인 방식으로 구조화된다. 284-285

무엇보다 사회적 약자의 해방에 대한 기대와 희망이 충족되지 못하고, 노동, 주체성, 성 정치 등 삶에 대한 새로운 사상과 실천이 대안적으로 제시되지 못하는 상황이 대중들이 파시즘에 매혹되는 중요한 요인이다. 그러ㄴ 점에서 파시즘의 징후를 고찰하고 이를 통해 어떤 ㄷㅐ안을 제시하고자 한다면, 무엇보다도 사회적 약자의 삶의 새로운 조건들을 사유할 수 있는 ㅅㅏ상과 그 실천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모색하는 일이 가장 중요할 것이다. 287

3. 프롤로그

정동이 말 그대로 힘-관계와 이에 따른 부대낌의 양태라고 할 때 이를 추적하는 것은 다양한 부대낌의 상태들을 통해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부대낌의 상태‘란 아직 의미를 획득하지 못한 미정형의 ‘힘‘을 뜻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바로 영혼의 동요로, 혹은 부대낌의 양태로 나타나는 그 ㅁㅣ정형의 힘에 초점을 두고 있는 것이다. 22

이 시대의 슬픔은 익숙한 공동체성을 촉발시키는 방향으로 이행되고 있다. 애도가 광장에서 극장으로 이동한 것과 이러한 이행은 밀접ㅎㅏ게 연관된다. 또한 이 시대의 슬픔이 익숙한 공동체성을 촉발하는 것은 재생산의 위기에 대한 감각과 밀접한 관련을 맺는다. 재생산의 위기라는 감각이 익숙한 공동체성을 촉발시키는 것은 논리적인 선후관계라기보다 서로 밀접하게 연동되어 있으며, 사회 여러 분야에 확산되어 있다. 또한 이 시대의 슬픔은 잃어버린 시대/세대에 대한 노스탤지어를 촉발하며, ㅇㅣ를 통한 익숙한 공동체성을 다시 불러들인다. 그러니 ‘우리‘의 슬픔은 극도로 정치적이며, 그 슬픔에는 어떤 ‘비판적 삶의 종말‘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 24

최근 20년간 한국 사회에 만연한 외로움은 한편으로는 위축되는 삶의 반경, 힘 관계에서의 수동적 지위에 ㄷㅐ한 불안감의 산물이기도 하다. 하지만 동시에 이는 끝없이 너를 부르는, 외로움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 외로움은 한편으로는 새로운 우정, 새로운 반려, 지금까지와는 다른 삶의 관계가 촉발될 수도 있는 다분히 정치적인 외로움인 것이다. 25

[소립자]가 68세대의 아이들 이야기이고, [1Q84]는 전공투 세대의 아이들의 이야기다. 혁명세서 사랑으로 라는 이행은 전공투, 68혁명, 1980년대로 상징되는 시대/세대의 ‘종말‘을 뒤로 ㅎㅏ면서, 새로운 시대/세대의 ‘윤리‘로서 사랑이 부상하는 방식을 공유하는 것은 아닐까 25-26
한국 사회에서 위기감이나 불안과 관련해서 중요하게 살펴볼 지점은 환멸이라는 이행의 방식이다. 환멸이란 환상이 깨어져나가는 것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그 자체로 환상으로부터 다른 것으로 이행하는 표지이다. 26

“정동이 우리 안에 고도로 잘 투자되어서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무엇인가 마술적인 것을 제공해줄 것처럼 믿는” 것은 과도한 낙관이다. 또한 정동이 “이미 항상 진보적이거나 자유를 위한 정치학에 더 잘 봉합되어 있거나” 한 것도 아니다. 오히려 정동은 “아직 아님”의 지평에서 사유되어야 한다. “누구도 신체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아직은 규정할 수 없다.” 27


볕뉘

0.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기 전, 2012년 여름 경에 출간된 책이다. 책을 보기전 제목 역시 무한히 정치적인 외로움이라고 해서 도통 무엇을 얘기하고 싶어하는지 가늠할 수 없었다. 시종 개념적인 언어도 전달하고자 하는 바와 달라 곤혹스러웠다. 스스로도 그러하지만 언어 선택과 전달에 신중과 노력을 기울여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부제가 한국 사회의 정동을 묻다 이기에 골랐다. 그리고 될 수 있으면 출간 의도를 살피고자 하였다. 그러고보니 묻혀있는 책의 발견에 가깝다.

1. 밑줄다듬기에서 볼 수 있듯이 파시즘 연구의 확장의 방편으로 정동이론을 살펴보게 되었다고 한다. 박근혜정부가 끝까지 반면교사 역할을 해 줌으로써, 예상된 우려는 가시고 있지만 여전히 진행형이다. 새로움을 보려고 하지 않는 무지는 여전히 반복되고 있다. 대선주자들의 시선도 갇혀서 새로움이란 찾아보기 힘들다. 지금 우리 수준을 발견해내고, 보이지 않는 것들, 말없는 사람의 말을 찾지 않는다면, 정권만 바뀌어도 그리 나아질 것이 없다. 여전히 효율과 성과만을 고집할 것이기에 더 우려스렵다.

2. 자기계발, 자기경영의 신민들은 새로운 세상을 볼 수 없다. 나에게 갇혀 한 발자욱도 너에게 다가설 수 없다. 다른 삶과 ㄷㅏ른 일상, ㄷㅏ른 사유가 죽음으로만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이들에게 스며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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