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회적 시야 - 함께 깊이 볼 수 있는 표현력. 점증하는 구체. 능력의 산개.- 개인적 자유의 자장 안에 움직인 진보는 외롭다. 늘 혼자임을 감수해야 하고, 혼자 해결해야하는 절명을 안고 갈 수밖에 없다. 함께하는 자유. 공화주의의 자유에 우리는 낯설다. 경험이 일천하다. 사회적 자유는 기본적으로 말하는 상대가 있는 자유. 정치행위를 하는 자유, 유적 존재인 것이다. 불편해도 함께 사는 존재. 그 관계를 전제로 한다. 끼리끼리의 낮은 관계로는 해결해나갈 수 없다. 이질적인 삶. 이질적인 일상의 다원성으로부터 배워나가는 것이 많아야 할 것이다. 어쩌면 우리 일상에 붙어있는 말, 언어들로 확인해봐야 되는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얼마나 갇혀있는지. 얼마나 관계를 만들고 있지 못하는지. 그것을 지시하는 말들, 언어들이 희귀한지도 말이다.

5. 오다와 피다, 그리고 그 사이
- 오다나 와라. 이해도 그렇고 진보라는 것이 있다면 와라가 아니었는가 어쩌면 피다나 피라고 한 적은 있던가. 피다 피다가 아니라 자장안으로 와라. 일단 와라가 아니었던가 설익은 계몽이 낳은 것이라곤 이질감이다. 그래 잘났다. 감정의 상처를 재생산했다고 봐야할 것이다. 오다와 피다 .

4. 당당함과 침잠하는 우울사이- 뫼비우의 띠는 안과 밖이 열려있다. 이 땅위에 이론들은 하지말아야 하는 것들이 천지다. 지구를 지키기 위해, 자발적 가난도 피해를 주지말기 위해...하지말것을 정교화해내고 있다. 아무 것도 하지 않는 홀로 감당해내는 삶이 진보는 아닐 것이다. 무엇인가 아귀가 맞지 않는 이론이다. 밖도 우주이고 내 안도 그러하다. 심연을 확장한다는 일은 서로 만나는 일이다. 자신에로의 배려는 더 밖으로 관계를 확장하는 일이기도 하다. 삶의 진보는 몇백년의 삶들이 누적되는 일이기도 할 것이다. 삶이라는 것이, 일상이라는 것이 떳떳하고 당당하지 않다면 무슨 재미이겠는가. 삶의 냉기만 후대에 전달한다면 무슨 맛이겠는가. 자발적 가난, 채식, 자유인의 삶....모두 인정하고 존중되어야 할 삶이지만 전부는 아닌 것이다.

2. 이질적 삶의 겹침이 바뀌어내는 정치관
- 사람들의 정치관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생활의 반경, 그 틀안의 사람들에 얽매여 있으면 변화라는 것이 요원하다. 가족 관계도 그러하며, 친구들 사이의 관계도 그러하다. 다른 삶이 부딪치지 않으면, 그 감정의 격동이 또 다른 시야를 확보하지 않는다면 변치 않는다.

3. 박정희모더니즘과 개인적 자유주의. 그 자장안의 진보/사회적자유의 자장 - 이 책을 보며 느낀 것은 산업-민주화의 이분구도도 그렇지만, 우리가 가져온 진보의 대부분은 개인적 자유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진보라 불리는 것들이 여전히 그 논리안에 움직이는 것이다. 그래서 한켠에는 농촌공동체나 도시변두리공동체 정서를 한 축으로 하면서도 지극히 이질적인 개인의 자유를 바탕으로 갈라서 있다는 것이다. 한 축은 귀소본능처럼 움직이는 공동체의 정서와 진보가 전유해온 지식인, 엘리트의 무늬. 그것도 대부분 서민과 대중의 정서가 뱉어내어 스스로 소외당하고 있는 이미지이겠지만, (소외된 민중의 삶이 만들어낸)엘리트의식과 지식인 정서는 개인적 자유를 차용해서 일정정도의 진보를 이루어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한 세대, 반 세기에 이어지는 왜곡된 구조는 지속될 수 없다. 이로서 더 이상 진보와 개인적 자유가 공존하는 시대는 지났다고 봐야 할 것이다. 서민과 대중 스스로 위축되어 엘리트 의식을 만들어내고 지배받기를 원했던 것 역시 더 이상 의미를 갖지 않아야 할 것같다. 선민의식이나 대자적 존재, 사회활동하는 이들 역시, 보다 낫다는 엘리트 의식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면 대중과 서민의 흐름을 읽을 수도 없고, 새로운 흐름도 만들 수 없을 것이다. 끌어내야할 대상이 아니라 감성과 감정의 결, 그 면면히 흘러온 흐름들을 몸으로 체감하고, 삶의 공유를 전제로 하는 벗. 그 바닥의 느낌을 건져올릴 능력이 없다면, 새로운 느낌들을 만들어갈 수 없다면, 이제 아무 것도 할 수 있는 것이 없을 것이다. 그저 퇴보하는 엘리트처럼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채로 멍하니 시간에 바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볕뉘. 진보하지 못하는 진부한 생각들이다. 서로 물릴지 서로 물고갈지 모르겠지만 흔적이라도 남겨둔다. 사회적 자유라는 표현도 좋고, 불편해도 함께하는 관계도 좋고, 단지 현안을 해결해야하는 생각들이 아니라 삶의 자장 안에서 서로 품는 생각들을 해보고 싶은 것 같다. 일반화될 수 없는 지금여기만의 독특한 무엇. 그 일상들을 살아내고 있는 우리이기도 하다. 그래서 더 묻고 싶고,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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