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산을 오르내리는 길, 아니 며칠동안 생각이 자멱질이다. 신흑묘백묘론 - 사람, 조망만 하고 다가설 줄 모르는 우리들, 시각에 심취해 대중들과, 민초들, 백성들과 다른 감각으로 교감할 수 없는 불감증의 우리들, 통속과 거리를 두어 머리만 비대해진 우리들, 우리의 말초신경은 이내 마비된 것인가? 생각은 자꾸 들이밀며 나오다 들어가길 반복한다. 교감되는 사람들, 교감되고 있는 오피니언 리더들, 소통되고 있는 무리는 점점 줄어들며 서로 남탓에 익숙해서 보수에서 수구로 치닫고 있는 현실들.
통속은 오감을 필요로 한다. 그 속에 어떻게 살고 살아가는지? 나누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애환이 무엇인지? 세상은 통속을 빼고 이야기한다. 무의식의 영역으로 치부해버리고, 삶을 이야기하지 않고 옳은 것만 이야기하는 무리 역시 세상을 모르긴 마찬가지다. 그러면 통속화하자는 이야기인가?
교감의 부족으로 인한 상황인식 미비, 활동의 전망-개선의 전망은 소통될 영역이 아무것도 없다는 이야기다. 운동꿘으로, 무능함의 이미지만 가득할 뿐이라는 것이다. 운동꿘은, 통속에 절은 그야말로 입으로만 말하는 운동권만 남아있다는 이야기다. 원칙과 대의때문에 모든 것을 다 없어진 젊음이 아니라 현실도 하나도 모르고, 말도 되지 않는 헛 소리로 일관하거나, 어떻게 살아가는지 이해가 되지 않은 철부지로 전락하고 있다는 것이다. 운동을 향유하고 누릴 뿐, 현실의 변방을 누비는 룸펜같다는 이야기다.
생산력 발전을 위해 흰고양이든 검은 고양이든 가리지 말고 잡아야 할 것은 오히려 우리가 아닌가? 사람 맘도 모르고 사람맘도 못잡는, 기댈 곳 없는 허전한 마음만 줍는 우리는 아닌가? 어렵고 힘든 삶이나 전망이나, 고통을 나눌 맘들은 왜 그토록 빗겨가고 내 팽겨치면서, 혼자 도도한 척만 하는가? 세상 물정 하나 모르는 양반들처럼...
계급에 상관없이 오피니언리더들을 만나고 교감하고 통속에서 사람의 마음을 읽으려는 노력없이, 때만 되면 남탓만하고, 의식없는 민초들 이야기만 하며 제 얼굴에 침뱉지 말고....... 부지런히 삶을 소통해야하는 것은 아닌가? 접촉점도 없이, 접촉 공간을 이야기하는 것이 지나친 도취에 빠진 우리의 현실이 아닌가? 접촉점 10년, 접촉선 20년, 접촉면 30년, 접촉공간 40년, 100년 그래도 늦지 않은 것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