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위대한 식사
산그늘 두꺼워지고 흙 묻은 연장들
허청에 함부로 널브러지고
마당가 매캐한 모깃불 피어오르는
다 늦은 저녁 멍석 위 둥근 밥상
식구들 말없는, 분주한 수저질
뜨거운 우렁된장 속으로 겁없이
뛰어드는 밤새 울음,
물김치 속으로 비계처럼 둥둥
별 몇 점 떠 있고 냉수 사발 속으로
아, 새까맣게 몰려오는 풀벌레 울음
베어문 풋고추의 독한,
까닭 모를 설움으로
능선처럼 불룩해진 배
트림 몇 번으로 꺼트리며 사립 나서면
태지봉 옆구리를 헉헉,
숨이 가쁜 듯 비틀대는
농주에 취한 달의 거친 숨소리
아, 그날의 위대했던 반찬들이여
2.
가을산
덩치 큰 저 사내
어깨 들썩이며 울고 있네
소리 죽여 우는 붉은 눈물
오르고 오르다가
하늘까지 번지네
누가 저 순명의 저 사내 울리고 있나
한바탕 가을을 쏟아내고는
초심으로 돌아간 저 사내
한결 가벼워진 영혼으로
마을을 보네 하늘을 보네
닭울음 소리 더욱 쾌쾌하고
계곡물 토실토실 살이 오르네
( '가을산'을 주제로 시들이 몇편 있던 기억, 시원하고 훤하게 뚫린 마음의 가을산님이 생각나, 콕)
3.
어떤 날 강물은
어떤 날 강물은 밥알 같은 별 몇 점
가슴에 동동 띄우며 흐른다
어떤 날 강물은 가는 달빛의 허리를 감고
가쁜 듯 가쁜 듯 뜨겁게 흐른다
어떤 날 강물은 못난 세상이 미워 퍼런 불길
둑 너머로 뻗어 풀잎의 머리채를 휘어감는다
어떤 날 강물은 초저녁 노을에 취해
벌게진 얼굴로 출렁출렁 노래부른다
길게 누운 길들이 젖는다 마을이 젖는다
(지금 오는 비가 대못같다. 쿡쿡 민들레 뿌리처럼 박힌다. 오늘 강물은 어떻게 다가올까? 어떻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