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여림 시집을 읽는다. 여림, 그는 한편의 시집도 내지 않았다. 이 시집은 유고집인 셈이다. 시만 생각하다. 시만 쓰다, 시인이 되었고 시로 돌아갔다. 어떻게 이럴수가 있을까? 삶이 고여있는 시집이다. <사과나무>란 시집도 겹쳐진다. 절망, 아니 황망한 일, 고인들의 명복을 빈다. 060509
2.
작은 바람
내 바람 크지 않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식후에 피우는 한개비 담배만큼만
세상이
살맛났으면 좋겠네 (박영희, 팽이는 서고 싶다에서)
3.
접기로 한다
요즘 아내가 하는 걸 보면
섭섭하기도 하고 괘씸하기도 하지만
접기로 한다
지폐도 반으로 접어야
호주머니에 넣기 편하고
다 쓴 편지도
접어야 봉투 속에 들어가 전해지듯
두 눈 딱 감기로 한다
하찮은 종이 한장일지라도
접어야 냇물에 띄울 수 있고
두 번을 접고 또 두 번을 더 접어야
종이비행기는 날지 않던가
살다보면
이슬비도 장대비도 한순간,
햇살에 배겨나지 못하는 우산 접듯
반만 접기로 한다
반에 반만 접어보기로 한다
나는 새도 날개를 접어야 둥지에 들지 않던가
4.
마흔
마흔이 되자
서른은 외아주머니마저 떠나고 없는
외가와 같았다
서른에서 마흔으로 이어지던
계단은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고
외출이 뜸해지면서 자꾸만
페이지 속 활자로 눕고 싶은
질주가 멈춘 거리엔
건널목만 선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