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04월 04일 13시 53분 24초

그대는 대학에 입학했다. 한국의 수많은 무식한 대학생의 대열에 합류한 것이다. 지금까지 그대는 12년 동안 줄세우기 경쟁시험에서 앞부분을 차지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영어 단어를 암기하고 수학 공식을 풀었으며 주입식 교육을 받아들였다. 선행학습, 야간자율학습, 보충수업 등 학습노동에 시달렸으며 사교육비로 부모님 재산을 축냈다. 그것은 시험문제 풀이 요령을 익힌 노동이었지 공부가 아니었다. 그대는 그 동안 고전 한 권 제대로 읽지 않았다.

그리고 대학에 입학했다. 그대의 대학 주위를 둘러 보라. 그 곳이 대학가인가? 12년 동안 고생한 그대를 위해 마련된 '먹고 마시고 놀자'판의 위락시설 아니던가. 그대가 입학한 대학과 학과는 그대가 선택한 게 아니다. 그대가 선택 당한 것이다. 줄세우기 경쟁에서 어느 지점에 있는가를 알게 해주는 그대의 성적을 보고 대학과 학과가 그대를 선택한 것이다. '적성' 따라 학과를 선택하는 게 아니라 '성적' 따라, 그리고 제비 따라 강남 가듯 시류따라 대학과 학과를 선택한 그대는 지금까지 한 권도 제대로 읽지 않은 고전을 앞으로도 읽을 의사가 별로 없다.

 영어영문학과, 중어중문학과에 입학한 학생은 영어, 중국어를 배워야 취직을 잘 할 수 있어 입학했을 뿐, 세익스피어, 밀턴을 읽거나 두보, 이백과 벗하기 위해 입학한 게 아니다. 그렇다면 차라리 어학원에 다니는 편이 좋겠는데, 이러한 점은 다른 학과 입학생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 '인문학의 위기'가 왜 중요한 물음인지 알지 못하는 그대는 인간에 대한 물음 한 번
던져보지 않은 채, 철학과, 사회학과, 역사학과, 정치학과, 경제학과를 선택했고, 사회와 경제에 대해 무식한 그대가 시류에 영합하여 경영학과, 행정학과를 선택했고 의대, 약대를 선택했다.

 
한국 현대사에 대한 그대의 무식은 특기할 만한데, 왜 우리에게 현대사가 중요한지 모를 만큼 철저히 무식하다. 그대는 <조선일보>와 <동아일보>가 '민족지'를 참칭하는 동안 진정한 민족지였던 <민족일보>가 어떻게 압살되었는지 모르고, 보도연맹과 보도지침이 어떻게 다른지 모른다. 그대는 민족적 정체성이나 사회경제적 정체성에 대해 그 어떤 문제의식도 갖고 있지 않을 만큼 무식하다.

그대는 무식하지만 대중문화의 혜택을 듬뿍 받아 스스로 무식하다고 믿지 않는다. 20세기
전반까지만 해도 읽지 않은 사람은 스스로 무식하다고 인정했다. 그러나 지금은 대중문화가
토해내는 수많은 '정보'와 진실된 '앎'이 혼동돼 아무도 스스로 무식하다고 말하지 않는다. 하물며 대학생인데! "당신의 능력을 보여주세요!"에 익숙한 그대는 '물질적 가치'를 '인간적 가치'로 이미 치환했다.

 물질만 획득할 수 있으면 그만이지, 자신의 무지에 대해 성찰할 필요조차 느끼지 않게 된
것이다. 그대의 이름은 무식한 대학생. 그대가 무지의 폐쇄회로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인가. 그것은 그대에게 달려 있다. 좋은 선배를 만나고 좋은 동아리를 선택하려 하는가, 그리고 대학가에서 그대가 찾기 어려운 책방을 열심히 찾아내려 노력하는가에 달려 있다. [펌, 홍세화]




아빠도 이렇게 무식한 대학생으로 입학했다.
지금도 여전히 무식하지만,
좋은 선배, 책방 열심히 들락거리려 노력한단다.

대학에 입학한지 20년이 지났지만,
교육현실은 뭐 그리 잘났다고, 그 자리에서 맴돈다.
찬,윤,민이가
또 내 나이가 되면 이렇게 교육현실이 물이 고여있듯이
제자리에 맴돌지 않았으면 하구.
그런 현실을 바꾸도록 같이 노력했으면 한다.

무식하지말자.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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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울 2006-05-08 13: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060507
어르신과 함께, 조부모산소에 들르다. 조모 이장시 아무런 도움도 드리지 못하고 고생만 하게 만들어서 맘이 편치 않았다. ( 식구들 모두 한자리에 모여 하루밤을 지냈는데, 어르신 두분은 부지런하시다. 새벽산행부터 해서... ... 인근에 아침*요 수목원을 들르려고 하였는데, 객들로 붐비고 빠져나갈 생각하니 엄두도 나지 않는다. 더구나 불쑥 올라버린 입장료라는 것이 만만치 않아 회군하다. 점점 불어나는 인파는 장난이 아니다.)

산소입구엔 묘비도 묘반도 없다. 조모산소를 옮기는 것도 당신이 아무일도 아니라곤 하고선, 서류일이며 부대일로 외삼촌도움을 받아 간신히 처리해내시느라 이만저만 고생이 아니었던 것이 들린다. 몇번 선산을 데리고 가신 적이 있다. 장남이란 이유도 있겠지만, 어르신 마음엔 조상이 고스란히 들어있음을 안다. 잘 되고 잘 못되는 일 가운데 마음과 연결고리를 갖고 계신다.

먼저 작고하신 숙부님은 기제사자리에서 격식을 유난히 반대했고, 나 역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