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와 염치 사이 - 자신이 없다. 금을 밟고 있는 것일까. 벼랑끝에 서 있는 것일까.

몇년 전 기제사 음식 준비에 딸이라는 이유로 `더더더`라는 꼬리표를 단 할머니- 엄마-오빠-동생 그리고 아빠-할아버지.

딸의 울음에서야 함께 뉘우쳤다.

어머니의 생각과 아들들의 행동을, 그리고 나를 바꿀 책임자가 나란 사실을 말이다.

일이 몰린다. 일이 밀린다. 나서지 않는다. 돕지 않는다. 가장 힘없는 후배의 어깨는 무르춤 바로 서지 못한다.

차별의 길목에서 차별받은 이들은 온몸의 울화를 더 약한 이들을 골라내 푼다. 악순환의 호흡은 더 가빠진다.

난 자신이 없다. 비좁아지는 대중버스에서 땀에 전 냄새. 만만한 사람에게 의심을 보낸 자신. 장애를 나는 당하지 말아야지로 각색하는 나. 이주노동자의 어눌한 말투를 속 꼬리 잡는 나. 여성운전자를 향한 냉대에 불쑥 동조하는 나.

죽비로 한 대 맞은 뒤에서야 염치가 자라는 나. 차이가 아니라 차별에 익숙한 나. `그러면 안되는 거 잖아요`라며 말도 보태지 못한 순간들. 예쁘지 않아 잘생기지 않아 다가섬에 차이를 둔 나날들. 부끄럽다. 똬리 틀고 있는 의식 못하는 차별들. `천하에 남도 없고, 당연한 것도 없다.`는 잣대를 더 깊숙하게 들이미는 수밖에. 일상에 더욱 깊어지는 수밖에.

발. 사회도 삶도 더 팍팍해지고 극단으로 몰리지 않았으면 한다. 강자는 이유를 댈 필요도 느끼지 않고, 약자는 증거를 모으고 읍소를 하고 부당을 알려도 꿈적하지 않는 세상. 그 기로에 서 있다. 삶의 변방으로 몰리는 이들이 점점 늘면서 여파는 강해진다. 잘못이라는 이유의 꼬리표를 덕지덕지 붙여놓는다.

예민함과 부끄러움이 그래도 더디가게 할 수 있을까요. 희생자의 명복을 빕니다. 또 다른 사회의 성숙으로 이어지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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