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 - 꿈자리가 뒤숭숭하다. '일터 오비들과 운동가, 녹색운동을 지지하는 교수, 일터 품질관련 담당당자들. 외딴 곳의 크루즈호를 오르락내리락 거리고, 아마 선실을 오가며 얘기하다가, 또는 골방같은데서 선배나 활동가를 만나 심각한 이야기를 나눈다. 배에서 내렸는지 아니면 선상이었는지 먼 곳을 보며 후배들과 대화다. 전임 사장 오비와도 한참 얘기를 나눈다. 데이터를 보며 문제점을 나누거나 대처방안을 생각하는 것들이 간간히 잡힌다.'

 

 대항해시대가 숙명으로 받아들이던 위험을 감수할 수 있는 것으로 개념을 바꾸었다고 한다. 그런 위험은 과학이나 통계, 확률이 충분히 보증하거나, 예측할 수 있는 것으로, 보상이 위험보다 많으면 투자하는 것이 상식이라고 자리잡았다. 하지만 그런 위험의 맥락이나 개념은 바뀐지 한참 지난 듯하다. 자본주의의 작동방식과, 기업이나 관료의 일처리 관행은 위험의 이중, 삼중장치를 하더라도, 방대한 규모에 걸맞게 어이없는 사고(정상사고)가 일어날 수밖에 없다. 그러니 의사결정을 집중하는 중앙집권적인 관료시스템과 이윤을 일차적으로 생각하는 관행은 위험을 키울 수밖에 없으며, 위험을 증폭시킬 수밖에 없다. 위험과 위험은 서로 만나며, 서로 어디로 향하는지 서로 예측하지 못한다.(위험사회) 관료시스템의 구성원의 힘은 너무도 미약하다. 위험의 증가속도는 저지속도를 앞지를 수밖에 없다. 일터나 기업의 울타리를 넘어섰고, 산업이나 업종이 있다고 하면, 그 역시 그 범위를 넘어섰다. 정부나 관료 시스템 역시 예방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실행시킬 수 없다.

 

위험을 잘게 잘게 나누고, 이윤의 고리를 줄여나가고, 모두가 들여다볼 수 있는 재구조화가 진행되어야 한다. 사유도 이분법은 벌써 종말을 고했다. 인간, 사물, 주제와 부제의 맥락를 갖는 것들에 대한 줄기사고가 진행되지 않는다면 그 역시 무지가 위험을 불러올 수밖에 없다. 전체를 알고 꿰는 사람들이나 조직은 갈수록 줄어들기 때문이다. 막이나 장이 아니라 희곡 전체를 읽고 느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과학, 예술, 인문, 사회, 경제, 정치가 나뉘어진 것이 아니다. 서로 정치의 고개를 빳빳하게 들고 있다. 독기서리게 말이다.

 

 

볕뉘. 가습제만이 아니라 제2, 제3의 사고가 도사리고 있다는 것이 맞을 것이다.  그 간극을 메꾸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과 희생이 필요할까? 삶의 방식과 태도에 대해서도 다시 물음을 하게 하는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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