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는 혐오스럽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은 사람은 드물 것이다. 정치는 쉴 새 없이 곰팡이가 슬고 먼지가 쌓이는, 불결하고 악취 나는 안방과 비슷하다. 안방이 그렇다는 이유로 넓은 안방을 버려두고 비좁은 골방에 웅크린 채 구시렁거리며 사는 건 바보 같은 일이다. 상황이 그렇다면 먼지와 때를 묻힐 각오를 하고는 두 팔 걷고 안방에 들어가 곰팡이와 먼지를 제거해서 사람 살 만한 곳으로 만드는 것이 옳은 일이 아니겠는가. 아렌트가 강조한 정치적 사유와 행위는 바로 이런 것이라고 생각한다. 198

 

아렌트는 악의 평범성에 대해 우리 모두의 내면에 아이히만이 있고, 우리 각자는 아이히만과 같은 측면이 있다라는 식으로 이해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말한다. 악의 평범성 개념의 핵심은 남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는 데 있다고 아렌트는 강조한다. 남의 입장에서 생각하기를 못하는 것이 아이히만에게서 보이는 악의 참모습이라는 것이다. 11

 

68 -자발적인 정치적 운동이, 활동만 정치적인 게 아니라 거의 전적으로 도덕적인 동기에서 시작된 정치적 운동이 대단히 오래간만에 처음으로 일어났어요......우리 시대에는 꽤나 드문 이런 도덕적 요인과 더불어, 우리 시대에는 생소해 보이는 또 다른 경험이 정치 게임에 등장했어요. 정치적 행위가 재미있다는 것이 밝혀진 거예요. 이 세대는 18세기가 대중의 행복이라고 불렀던 것을 발견했어요. 대중의 행복이란 사람은 공적인 생활에 참여했을 때, 그러지 않았다면 그에게 닫힌 채로 남았을 인간적 체험의 차원을 혼자 힘으로 열어젖힌다는 것을, 그리고 그것이 여러 면에서 완전한 행복의 일부를 구성한다는 것을 뜻해요. 114

 

혁명사를 자세히 살펴보면, 탄압받고 멸시받던 사람들이 스스로 혁명의 길을 이끈 적은 결코 없었고, 탄압도 멸시도 받지 않았지만 남들이 그런 처지에 놓인 것을 도저히 참지 못한 사람들이 혁명을 이끌었다는 걸 알게 될 거예요. 다만 그들은 자신들의 도덕적 동기를 인정하는 게 부끄러워서 그런 사실을 대놓고 드러내지 않았을 뿐이에요. 이런 수치심은 대단히 유서가 깊은데, 여기서 그 역사를 세세히 설명하고 싶지는 않아요. 혁명의 역사에서도 대단히 흥미로운 측면이 있기는 하지만요. 그런데 혁명에는 항상 도덕적 요인이 등장했어요. 요즘 사람들은 그걸 인정하는 것을 수치스러워하지 않기 때문에 오늘날에는 그게 더욱 명확하게 드러나는 거지요. “굽실거리지 않는문제의 경우, 그건 당연히 일본이나 독일처럼 권력에아부하는 정도가 그토록 어마어마하게 놓은 나라들에서는 특히 중요한 역할을 수행해요. 반면 내 기억에 권력에 굽실거린 학생이 단 한 명도 없었던 미국에서 그건 정말로 무의미한 문제예요....국가별 착색은, 착색 자체의 성격상, 때때로 대단히 강렬한 특색이라는 것도 언급했고요. 그런 착색 때문에 특히 외부인 입장에서는, 눈에 가장 잘 들어오는 것을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오인하기가 쉬워요. 116-117

 

에른스트 블로흐는 도래할 혁명을 믿는데, 나는 혁명이 도래할지, 도래한다면 어떤 구조를 갖게 될지 모르겠어요. 아무튼 그 문제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하고 싶어요. 우리 경험으로 볼 때, 혁명이 일어나려면 일련의 현상들이 혁명의 전제 조건 - 정부 조직이 와해될 거라는 위협, 정부의 존재 기반 약화, 정부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 공공 서비스의 실패, 이 밖에 다양한 다른 것들 - 으로서 발생해야 한다고 말할 수 있어요. 117

 

지금 당장을 보면, 도래할 혁명을 위한 전제 조건 하나가, ‘진정한 혁명가 집단이라는 조건이 결여돼 있어요. 좌익학생들이 가장 되고 싶어 하는 존재 - 혁명가 -는 그들의 현재 모습하고는 다른 존재라고 할 수 있어요. 그들은 권력이 의미하는 바를 짐작도 못해요. 권력이 길거리에 떨어져 있고 거기에 그게 있다는 것을 안다고 해도 그들은 허리를 굽혀 그걸 집어 들 준비가 가장 덜된 사람들인 게 분명해요. 그런데 정확히 그게 혁명가들이 하는 일이에요. 혁명가는 혁명을 만들어내지 않아요.혁명가는 길거리에 권력이 떨어져 있는 것이 언제인지를 알고, 그걸 집어 들 때가 언제인지를 아는 사람이에요. 무장봉기가 그대로 혁명으로 이어진 적은 역사상 단 한 번도 없었어요. 그럼에도, 혁명을 준비한다는 의미에서, 혁명으로 이어지는 길을 포장해주는 것은 앞선 시대들에 제대로 행해지고는 했던 현 상황에 대한 제대로 된 분석이에요. 118

 

3세계 - 제국주의자들 입장에서는 이집트는 당연히 인도와 비슷해요. 두 나라 모두 피지배 인종이라는 분류명 아래 들어가죠. 제죽주의자들이 다른 모든 차이점을 무시해버린 것을 뉴레프트가 레이블만 뒤집어 다는 식으로 복제한 거예요. 모든 표어에 곧이곧대로 속아 넘어가는 것, 사유하지 못하는 무능력이나 현상을 실제 있는 그대로 보길 꺼리는 것, 현상을 마땅히 분류할 수 있다는 믿음을 바탕으로 현상마다 알맞은 범주를 적용하지 않는 것 등. 바로 이게 이론적인 무력함을 이뤄요.(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 125

 

오늘날 우리가 가진 문제는 수탈자들을 어떻게 수탈할까가 아니라,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시스템 안에서 산업화한 사회에 재산을 수탈당한 대중이 재산을 되찾을 수 있도록 사태를 조정하는 방법이 무엇일까 하는 거예요. 이 한가지 이유만으로도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사이의 대안은 틀렸어요. 그것들이 어느 곳에서도, 어떤 식으로건 순수한 국가 형태로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고, 이 세상에는 서로 다른 모자를 쓴 쌍둥이가 존재하기 때문이기도 해요. 130

 

반볼세비키주의자들이 동구를 악마라고 단언하거나 볼셰비키주의자들이 미국은 악마라는 주장을 유지하느냐 여부는, 그들의 사고 습관이 이전처럼 계속되는 한 다를 게 전혀 없는 주장들이죠. 그들의 사고방식은 여전히 똑같아요. 세상을 흑백으로만 보죠.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않잖아요. 어떤 사람이 그 시대가 때는 정치적 스펙트럼을 두루 모른다면, 여러 나라 사이의 기초적인 상황과 다양한 발전 단계와 전통, 생산 유형과 단계, 기술, 사고방식 등을 구분하지 못한다면, 간단히 말해 그 사람은 이 분야에서 활동할 방법과 형세를 살필 방법을 모르는 거예요. 그 사람은 결국 자신의 눈앞에 단 한 가지만, 온통 검은색만 보이게 만들려고 세상을 산산조작내는 것 말고는 아무 일도 할 수 없어요. 143

 

흑인 세입자가 백인이나 황인과 동일한 상류층에 속할 경우, 임대료가 상대적으로 비싼 주거지역에서는 인종 통합이 잘 이뤄질 수 있어요. 성공한 흑인 비즈니스맨의 숫자가 대단히 적기 때문에 이건 학계나 자유주의적 전문직 종사자들 - 의사, 변호사, 교수, 배우, 작가 등 - 의 경우 정말로 잘 들어맞죠. 147

 

사회적으로 하층계급은 민족주의와 쇼비니즘, 제죽주의적 정책에 특히 민감해요. 민권운동이 흑과 백으로 심각하게 갈린 건 전쟁 문제에 따른 결과 때문이었어요. 148

 

민족의 독립, 외세 통치로부터의 해방, 국가의 자주독립, 국제 정세 속에서 제약받지 않는 힘을 무제한 주장하는 일이 눈에 띄는 한 - 그리고 그 어떤 혁명도 이런 국가 개념을 흔들 수 없는 한 - ‘인류의 미래보다는 인류에게 미래가 있느냐 없는냐하는 데 매달리는 전쟁 문제의 이론적 해법은 상상 가능하지 않을뿐더러, 지구 상의 평화 보장은 동그라미를 네모나게 만드는 것만큼이나 유토피아적이다.” 153

 

전쟁은 소국들만 치를 수 있는 사치품이 됐고, 그런 그들도 강대국들의 영향권에 끌려들어가지 않고 자체적으로 핵무기를 보유하지 않았을 대만 전쟁을 할 수 있어요. 강대국들은 이런 전쟁에 개입해요. 부분적으로는 그들이 의존국을 방어해야 할 의무가 있기 때문이고, 부분적으로는 그것이 오늘날 세계 평화가 의지하는 상호 억제 전략의 중요한 일부가 돼버렸기 때문이에요. 독립국들 사이에는 전쟁 말고 최후 방책이 있을 수 없어요. 전쟁이 더 이상 그 목적에 봉사하지 못한다면, 그렇다는 사실만으로도우리가 새로운 국가 개념을 가져야만 한다는 것을 입증하죠....내가 보는 새로운 국가 개념의 기초 원리는 연방 시스템에서 찾아볼 수 있어요. 연방 시스템의 이점은 권력이 이동하는 방향이 상향도 하향도 아니라 수평이라는 거예요...이런 사안을 사유활 때 진정한 난점은 최종 방안이 초국가 시스템이 아니라 국가간 시스템이어야 한다는 거예요. 154-155

 

이 새 정부 형태란 알다시피 모든 시대와 장소에서 소멸된, 민족국가의 관료제나 정당의 지배 세력이 직접 파괴한 평의회시스템이에요. 이 시스템이 순수한 유토피아인지 아닌지 나는 말할 수 없어요 - 어쨌든 그건 국민들의 유토피아지 이론가와 이데올로기의 유토피아는 아닐 것예요. 하지만 내 눈에 그건 역사상 등장했던, 줄곧 되풀이해서 등장했던 유일한 대안으로 보여요....대부분의 혁명에서 전통이나 이론의 결과물이 아니라 전적으로 자연발생적으로 생겨났죠. 매번 예전에는 그런 종류의 시스템이 결코 존재한 적이 없었다는 식으로요. 156

 

평의회들은 말해요. “우리는 참여하고 싶고, 논쟁하고 싶고, 대중이 우리 목소리를 듣게끔 만들고 싶고, 우리 나라의 정치 과정을 결정할 여력을 거머쥐길 원한다.”국가의 규모는 우리가 한데 모여 우리 운명을 결정하기에는 지나치게 크기 때문에 우리는 나라 안에 많은 공공 영역이 필요해요. 우리가 투표용지를 맡기는 투표 부스는 의심할 여지 없이 지나치게 작아요. 이 부스는 딱 한 사람을 위한 공간이니까요. 정당은 철저히 부적합해요. 거기서 우리 대다수는 누군가의 조종을 받는 유권자나 다름없어요. 157

 

이상 한나 아렌트의 말 가운데서

 

볕뉘. 공화주의를 공부하고, 이 책은 꼭 챙겨봐야지 하였다. 정치와 진리의 저자 김선욱교수가 말하듯 생생한 육성의 말을 느끼고 싶었다. 인터뷰는 실망시키지 않았다. 그가 생각하고 있는 것, 지향하고 있는 것들이 사회주의자와 달랐다. 역사를 보는 관점도 다르며, 역사 속에서 읽어내는 것도 달랐다. 지나친 낙관이나 지나친 비관이 아니라 끊임없이 챙겨야 하는 것이 방점을 두어 말하고 있다. 소련의 모습, 우크라이나의 비극을 예견하는 것에 벗어나서 68혁명과 학생운동의 진폭에 대해서도 정확하게 조망하게 만든다. 조금 더 연관되는 도서를 이어서 봐야 할 것 같다.  시적 정의는 문학적 상상력과 공적인 삶에 대한 이야기다. 이어서 곁들일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