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4-4-4 공식으로 조화로운 삶의 특성을 정리한다. 네 시간은 생계를 위한 노동을 하고, 네 시간은 전문 활동에 보내고, 나머지 네 시간은 사람으로서, 지역 주민으로서, 국민으로서, 세계 시민으로서 의무와 책임을 다하는 단체 활동에 참여하는 것이다.


 


대학의 철학교수 자리를 내던지고 전라도 변산땅에서 3년 동안 직접 농사 지으면서 겪었던 일들과 떠올랐던 생각들을 정리한 자연주의 에세이. 잡초인줄 알고 뽑아버렸다가 나중에 그 풀들이 벌꽃나물과 광대나물이라는 것을 알았다든지, 새끼를 꼬면서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깨닫는다든지 하는 일들을 겪으면서 저자는 새로운 깨달음을 얻어간다.
 
 
1930년경 미국의 대공황,  1997 IMF 귀농?, 한살림?운동 들 겹쳐지기도 하다. 또한 첨단을 달려 쌀까지 작살내려는 정부의 어이없는 첨병역할로 현실에 대한 인식을 가져오는 것이 쉬워보이지 않는다. <윌든>을 읽던 경험이 되살아났는데, 또 다른 시각에서 다가오는 느낌이다.   도시화의 속도, 도시화에 포섭된 정도의 차이,공동체에 대한 차이도 있어 쉽게 비교하기에도 만만치 않겠지만, 우리에게 여러 일상에서 변화를 품고, 맘이나 생활에 가져가는 분들이 많아진 것은 사실이겠다.
 
하지만, 지극히 개인적인 차원, 개인의 삶에 얕은 방식으로 접목되지 않았는가 싶은 생각이 든다. 먹을 거리나  건강이란 개인의 테두리에서 말이다.  저자게 애초에 이야기한 자신과 공동체-사회에 대한 고민으로 품어냈는가 하는 점에선 대단히 회의적이다. 아니면 그러한 문화가 지극히 적고, 담론마저 척박하기에, 아니면 세계안의 나에 대한 고민도 곁들여지지 않아 원칙적인 것으로 다른 끝단으로 보이는 것은 아닌지?
 
너무나 빠른 변화의 속도 속에 살고 있다. 숨 막히는 비트의 박자, 호흡에 아무생각없이 살아지는 것이 우리의 자화상일 것이다. 박자의 속도를 늦추거나, 전혀 다른 박자, 아니면 엇박자를 통해 숨막히는 호흡에 파열음을 내야하지 않을까?  문화로 자리잡기엔 일하고 개인을 위해 쏟아붇는 4-4시간이 아니라 나머지 4시간에 대한 논의가 숙성되지 않고 묻히고선, 또 다른 변방으로 자리매김하는 것은 아닐까? 다른 끝단은 오히려 똑 같은 속도나 박자로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엇박자나 전혀다른 비트나 관점이나 무게중심이 움직여져야 하는 것은 아닌가? (주제넘고 몸에 배지 않은 이야기인 듯 서걱거린다. 책임은 전적으로 나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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