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일하는 청소년, 폭력의 중심에 서다

 

영선의 이야기처럼, 실제로 Jex & Beehr(1991)의 연구에 의하면 부당해고나 일터에서 부정적인 경험을 할 경우 청소년들이 사회에 대한 불신과 무기력감을 느끼게 되고, 우울, 자존감 저하 등이 나타난다고 보고하고 있다. 영선도일을 하면 할수록 뭔가 이렇게 살아가는 게 맞는건가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고 했다.121

 

현수의 마지막 인터뷰 말에서 자기미래의 불안감이 그대로 드러나기도 했다. 병원에서 주6일을 일해서 받는 돈은 33만원이다. 거기에 식비와 차비를 빼면 30만원도 채 안 되는 금액이다. 부족한 돈은 주말 야간 택배 일을 하면서 충당한다. 현수와 인터뷰를 하면서 고등학교 학력취득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는데, 현수는 아직까지 생각이 없다고 했다. 안타까운 마음이 들긴 하였지만, 한편으론 학력취득만이 청소년 노동환경 개선을 해결하는 것은 결코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127-128

 

청소년정책연구원의 청소년 아르바이트 실태조사(2014)에 따르면 근로계약서를 작성한 비율은 25.5%이며, 소규모 사업장일수록, 근로일수가 적을수록 근로계약서 작성비율이 낮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또한, 임금체불, 초과근무수당 미지급 등 임금 관련 부당 처우를 경험했다는 응답비율이 31.6%로 실제로 일을 하고도 정당한 대가를 지급받지 못하는 사례가 비일비재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로 이번에 인터뷰한 친구들 중에서도 근로계약서를 써본 경험이 잇는 청소년은 2명뿐이었고, 그 중 한 친구는 근로계약 내용에 중간에 갑자기 일을 그만두면 단 한 품의 임금도 지급하지 않겠다는 등의 불법적인 조건을 제시했던 고용주들도 있었다. 130

 

2014년 학교 밖 청소년 지원에 관한 법률(2015.05.29.)이 제정됨에 따라 학교밖 청소년 지원 사업이 확대되어 전국적으로 학교 밖 청소년 지원센터가 생겨나고 있다. 대전도 역시 기존 대전시 학교 밖 청소년지원센터와 더불어 서구, 유성구, 2개의 센터가 새롭게 개소하였다. 132

 

지금도 근로 청소년들은 자신의 현장에서 어떠한 형태로든 폭력의 피해자로 서있다. 어쩌면 그들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치료해주고 보호해 주는 것보다, 폭력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환경이 아닌가 싶다. 여기에 청소년이 그 어떤 상처와 시련에도 다시금 일어설 수 있도록 용기를 주고 격려해줘야 한다. 왜냐하면 일하는 청소년역시 미래가 기대되는 청소년이기 때문이다. 132

 

2. 청년, 창업을 말하다

 

지금의 대다수의 청년들은 한 가지만 잘하면 먹고 살 수 있다. 공부 열심히 하면 나중에 좋은 직장을 얻을 수 잇다고 듣고 자라온 세대다. 어른들 말씀 잘 새겨듣고 고등학교에서 기술을 배우고 나와서 취업을 하려해도, 대학가서 졸업하고 취업을 하려해도 사회에서 제대로 대우받고 인정받으며 일할 수 있는 곳은 손에 꼽을 정도다.“ 135

 

취업과 창업을 이야기하기 전에, ‘라는 존재가 어떤 일을 하면서 행복할 수 있을지 고민해봐야 한다. 우리는 행복한 삶을 위해 일을 하고 돈을 번다. 어느 회사에 가야지 돈을 많이 벌 수 있느냐가 아니라 어떤 삶을 살아야 행복한 인간인가를 먼저 생각해야 하는 것이다. 135

 

나에게 7개월의 시간은 정말 인생에서 중요한 시간이었다. 삼성에서의 활동은 뛰어난 능력을 가진 친구들과 협력하고 경쟁하며, 자본주의의 치열함과 수많은 것을 배우게 했다. 행복나눔재단에서의 활동은 새로운 시각을 키우고 사회와 정의에 관한 나의 관점들을 다시 한번 되돌아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138

 

회사를 운영한다는 것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월급이 꼬박꼬박 나오는 것도 아니고 손해를 각오하고 투자를 해야 하는 일도 부지기수다. 함께하는 직원이 생기면 그 책임감도 이루 말할 수 없다. 창업은 낭만적인 일이 아니다. 정말 먹고사는 문제다. 그러기에 이 일이 정말 내가하고 싶은 것인지, 내가 꿈꾸는 가치와 목표를 위해 그 시간들을 견뎌낼 수 있는 사람인지 잘 판단하고 도전해야 한다. 143

 

3. ‘관리된 심장콜센터 노동자

 

하지만 내가 여기 직원으로 앉아있으니 욕을 들어 마땅하단다. 내 잘못이 아리라고 하면서 나에게 욕을 하는 게 당연하다니, 알 수 없는 논리다. 20여분에 걸친 진땀나는 통화를 끝내고 마음을 지정시킬새도 없이 또 다시 수화기를 든다. 이번에도 민원이다. 낭패다. 하루 90-110개의 콜을 채워야 한다. 148

 

첫 아이를 출산하고 복직한 후 힘든 시간을 보낼 즈음, 매체에서 감정노동이라는 말이 유행처럼 쏟아져 나왔다. 그래서인지 회사에서도 정신과 의사를 초빙해 힐링을 주제로 상담을 진행했다. 돌아오는 이야기는 터닝포인트가 필요하다, 운동을 해라, 별 도움이 되지 않은 빤한 것들이었다. 상담프로그램은 얼마 가지 못해 막을 내렸다. 148

 

평가 콜이 들어오면 깃발을 올린다. 어느 때는 1분 안에 5번 이상 말해야 하고, 또 어느 때는 한 콜에 우리 고객님2번 이상 말해야 한다. 지금은 고객의 이야기가 끝나면 , 그러세요를 꼭 붙여야 한다. 혹시라도 깜박하면 바로 감점이다. 사물존칭을 해서도 안 된다....평가기준을 누가, 무슨 근거로 만드는 것이며, 누구를 위한 평가인지도 모르겠다. ...완벽한 100점을 요구하는 세상이 야속하기만 하다. 149

 

지난 1013, 한국고용정보원이 국내 730개 직업 종사자 25550명의 감정노동 강도를 비교 분석한 결과 감정노동의 강도가 가장 센 직업이 텔레마케터인 것으로 나타났다. 148

 

고용정보원은 분석 결과 텔레마케터에 이어 호텔관리자, 네일 아티스트, 중독치료사, 창업컨설턴트, 주유원, 항공권 발권사무원, 노점.이동판매원 등이 감정노동을 많이 하는 직업 순위 상위권을 차지했다. 149

 

콜센터 산업의 메카로 불리는 대전의 경우, 일자리 창출을 통한 지역경제 활성화 정책의 일환으로 2006년부터 콜센터 유치에 주력, 2010년 중 지방으로 이전한 전체 콜센터 31개 가운데 16(전체의 51.7%)를 유지했다. 2008년 지방자치단체로는 최초로 상담사 1만 명을 돌파했고, 20159월 현재 대전시에는 130여개의 콜센터가 자리잡고, 17천여 명의 상담사가 근무하고 있다. 대전시는 콜센터 유치를 위한 비교우위의 입지여건으로 수도권 본사와의 지리적 접근성, 저렴한 임대료 및 관리비, 우수한 인적.기술적 자원 등을 꼽고 있다. 150

 

대전시는 콜센터 근로자의 인권 침해 피해를 예방하고 근무 여건을 개선하기 위해 팔을 걷어붙였다. 대전시는 콜센터 상담사의 권익 향상을 위해 법률, 노무, 의료, 경영, 인권 등 분야의 전문가 23명으로 자문단을 구성.운영하고, 상담사 사회인식 개선을 위한 홍보다큐 사랑합니다. 고객님제작에나서는 등 다양한 사업을 벌이고 있다. 151

 

하루에 20-30변씩 전화하는 고객들이 잇어요. 신음소리, 바람소리 내며 속삭이듯 이야기하고, 마치 음란전화처럼요, 우리에게도 작게 천천히 이야기해달라고 요구하죠. 또 수시로 전화해서 요금 조회하는 고객도 있어요. 세부 항목별로 일일이 요금 물어보고 그렇게 반복하다가 실수하도 하면 꼬투리 잡히는 거예요. 그 때부터 큰 소리와 욕이 시작돼요. 도대체 왜 그러는지 이해는 안 가지만 우리는 전화를 끊을 수 없는 입장이니까 요구하는 대로 다 해줘야 한느 거죠. 속상한 건 회사 측에서 다 파악하고 있으면서도 나서주지 않는다는 거예요.” 152

 

억울함을 느낀 A씨는 사직서를 제출했고, 사직서의 건의사항란에는 서비스직일지라도 직원들의 인격은 지켜줘야 함이 당연하다.”는 글을 남겼다. A씨는 다음날 수면제를 과다 복용하는 방법으로 자살을 시도했다. 154

 

유럽은 감정노동이 고령화나 고용불안 등과 함께 미래 사회의 10대 심리적 위험요인 중 하나가 될 것이라고 보고, 산업재해 승인 범위를 사고 중심에서 질병 중심으로 전환하는 추세다. 유럽연합은 2000년부터 직장에서 받는 직무 스트레스를 차별 행위로 간주하고 법을 통해 이를 처벌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155

 

4. 예술노동자가 꿈꾸는 노동

 

역시, 그 만큼의 돈을 벌기 위해 노동을 해야 했다. 다시 악순환이 반복되었다. 미래의 평안과 행복을 위해 현재의 평안과 행복을 포기하는 것이 당연한 줄 알았다. 내 인생에도 희망이 있는 줄 알았다. 개미와 배짱이 중에서 개미가 되어야만 하는 줄 알았던 그때의 끔찍하기 짝이 없는 나의 하루는 끝이 없어 보였다. 끝이 없어 보였으므로 희망도 보이지 않았다. 무엇보다 나는 내가 누구인지 조차 알지 못 했다. 나는 무엇을 위해 태어났으며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는지, 내가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지, 꿈은 무엇인지 전혀 알지 못했다. 나는 나를 잃어버린 채 돈을 버는 행위에 하루의 대부분을 바치는 자본주의의 성실한 노예일 뿐이었다. 노예였으므로, 짜증나고 힘들고 삶이 싫었다. 157-158

 

아팠다. 아프고 또 아팠다. 힘들고 힘들었으며, 공감도 위로도 받지 못 했다. 누구나 그렇게 살아가고 잇고, 도한 나보다 앞서가는 많은 이들의 뒤꽁무니를 쫓으면서 달려가야 했다. 응원도 격려도 받지 못 한, 별 볼 일 없는 30대가 되었다. 159

 

서른이 되자 돌연 직장을 때려 치웠다.....피자를 배달하러 가는 15분 동안과 다시 매장으로 돌아오는 15분 동안 정신적인 자유로움을 누릴 수 있었다. 회사를 다니면서 격렬하게 느껴야 했던 스트레0스와 정신적인 압박 대신 시원한 맞바람과 생각할 자유를 얻게 된 셈이엇다. 생각할 자유라...이것은 아주 대단한 선물이었다. 나는 나 자신에 대해서, 그리고 내 삶의 방향에 대해서, 미래의 내 모습과 세상에 대해서 생각할 시간이 충분했다. 너무나 충분하고 넘쳐나서 글 쓸거리가 넘쳐났고, 나는 매일 매일 새벽 1시에 집으로 돌아와 잠이 올 때까지 그 꺼리들을 글로 써낼 수 있었다. 160

 

자정이 넘은 깊은 밤, 시장 골목에서 고물을 줍는 할머니를 보게 되었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중얼거리고 말았다. - 나는 진짜 늙어서 저렇게 되지 말아야 할 텐데......부끄러웠다. 견딜 수 없이, 부끄럽고 부끄러워서 내 자신에게 화를 낼 수밖에 없었다. 잠이 오지 않을 정도로 분한 마음이었다. 그렇게 당하고도, 똑같은 사람이 되어 있다니,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창피했다. 161

 

배고픈 음악가의 삶을 이어가면서 깨우친 마음 중 하나가,나는 불쌍하지 않다. 나는 소중한 사람이다.’였다. 다시 말해 나는 나의 삶을 소중히 여기면서 무의식적으로 다른 사람의 삶을 소중히 여기지 않고 있었던 셈이다. 내가 타인의 삶을 응원하지 않았던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었다. 평생에 걸쳐 반복되어온 습관적인 태도였다. 나는 언제나 누군가의 삶보다 우위를 점하기 위해서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의 삶을 무시해왔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내 자신의 삶이 너무나 한심하고 비루하게 느껴져 견딜 수 없었다. 동시에 나는, 남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살아왔다. 좋은 모습만 보여주려고 애를 썼고, 조금이라도 흠이 잡히는 것을 견딜 수 없었자. 나의 약점이 드러나는 순간 도망치기를 반복했으며, 무시당하지 않기 위해 무시하고 멸시당하지 않기 위해서 멸시를 일삼았다......타인의 삶을 응원하거나 격려하지 않다보니, 나는 내 자신을 깊이 응원하고 보살피는 힘 역시 잃어버리고 말았다....게다가 나는 지금 이순간의 삶을 늘 결과로 받아들였다. 늘 실망할 수 밖에 없었다. 모든 것을 결과로만 평가하며 결과물의 상태에 따라 내 자신을 다그치는 정도가 다르기만 할뿐, 깊이 응원하거나 격려하거나 위로하지는 않았다. 162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사랑하게 되면서 가장 많이 달라진 점이라며, 가진 것을 기준으로 사람을 판단하지 않는다는 점과 부를 판단하는 기준이다. 나는 부의 기준을 돈이 아닌 시간으로 매기게 되었다. 얼마나 많은 돈을 가졌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자유시간을 누리느냐로 매기는 것이다. 164

 

이처럼 돈을 벌 것인가, 자유시간을 벌 것인가. 이 두 가지 중 한 가지를 택하는 것은 오직 내 자신에게 달여 있다.....불가피한 선택을 할 것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선택을 할 수 있다면 삶이 더 재미있어 질 것임을 확신한다. 165

 

우선은 좋아하는 일이나 하고팠던 일을 시작하되 반드시 재미로 시작할 것을 권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무언가를 새롭게 시작할 때는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의 판을 갈아엎듯이 제대로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것은 옳지 않다고 본다. 165

 

꿈은 이루는 것이 아니라 꾸는 것이고 꾸준히 하다 보면 저절로 이뤄지는 것이다. 언제까지 반드시 이뤄야겠다는 기한을 정해두지 않는 것이 좋다. 재미로 시작한 모든 일들은 그 한 걸음, 한 걸음 모두가 꿈을 이뤄나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꾸준히 해나가는 것은 이 재미에 달렸다. 166

 

우선은 부자가 되지 않기로 하는 것이다. 이 말은 부자가 되고자 하는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한다는 뜻이다. 두 번째는 부의 기준을 앞서 말한 대로 자유시간을 얼마나 누리느냐로 바꾸는 것이다. 세 번째는 얼마나 노동시간을 줄일 수 있는가를 고민하고 실천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 세상의 모든 삶을 소중히 여기며 응원하고 지지하는 것이다. 167

 

세상은 취업을 하더라도 대부분의 노동자가 착취의 대상으로 여겨질 뿐, 그들의 존재를 꿈꾸는 존재, 생각하는 존재, 지혜로운 존재로 여기려고 하지 않는다. 소수가 다수를 돈과 권력으로 지배하는 사회로 변화했고, 앞으로는 좀 더 심해질 것이 분명하다. 168

 

나는 도대체 왜 노동을 하는가?’

 

자유롭고 행복하기 위해서, 꿈을 꾸기 위해서, 사랑하고 사랑받기 위해서, 웃고 울고 춤추고 노래하기 위해서, 함께 살기 위해서,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기 위해서, 따뜻한 마음들을 위해서....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은가? 169

 

5. 주변부의 과학기술자들

 

이 아래의 학력은 연구소의 노동자들을 상대하는 서비스업 계약직으로 일하거나 벤처기업의 생산직으로 근무할 것이다. 이렇게 잘게 부수어진 위계구조는 위로 오르는 상상을 불허하며, 아래로 내려가는 것은 이 구역을 떠나거나 존재가 사라지는 일이 된다. 그들 모두 이 자리가 불안하지만 지켜야할 규칙으로 생각한다. 이 규칙 속에서 위기가 올 때 가장 먼저 버려지는 자는 가장 낮은 계급으 노동자와 기간제 청년노동자들이다. 176

 

사실 과학관련 대학원생도 특정분야를 연구한다는 것을 빼놓고는 한국사회가 작동되는 방식과 똑같다고 보시면 됩니다. 다들 과학 연구하는 사람들 생각하면 어떤 문제가 생길 때 논리적이고 이성적으로 문제를 풀고 대처할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아요. 우리 사회의 환경, 문화의 작은 축소판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177

 

교수님들을 개인적으로 만나면 다 좋으신 분들이죠. 열정도 있고, 하나라도 더 알려 주려고 매우 열심히 하시는데요. 정작 대학원 시스템에 관해서는 관심이 없어요. 외국에서 유학한 교수님들은 한국의 대학원생들이 얼마나 열악한 환경이신지 아실 거예요. 미국만 해도 우리의 대학원체계와 다르게 대학원생 노동자의 지위와 권리를 보장하고 있거든요. 물론 시스템이 다르겠죠. 하지만 안타까운 건 교수님들이 이런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는다는 거죠. 178

 

이런 일상 속의 작은 위계는 삶을 지배한다. 내가 만났던 비정규직 청년들은 회사에 충실했고 약속을 정해놓고도 바쁜 일 때문에 약속을 연기하는 일이 많았다....그들은 먼 미래를 계획하지 않았고 1, 2년 단위의 계획에 익숙했다. 정치 얘기보다는 대중스타와 먹어보지도 못한 음식 레시피에 더 관심이 많았다. 40대 이상의 정규직도 마찬가지다. 아이들 입시교육과, 해외여행, 펀드, 골프이야기로 대화는 채워졌다. 180

 

철수씨와 헤어진 후 가야 할 곳을 내비에 찍는다. 내비는 목적지를 찾지 못하고 계속 주위를 맴돌게 한다. 과학기술 연구 분야에 종사하는 노동자 또한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노동의 틀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여전히 연구 현장에서 노조는 거대한 기관과의 싸움에서 노동자가 기댈 희망의 끈이지만, 비정규직과 청년에게도 희망의 불씨가 될 수 있을까? 정해진 답은 없다. 길의 방향만 안다면 목적지에 다다를 수 있다는 바램으로 내비를 잠시 끈다. 우리의 노동에 대한 존중만이 위계와 분열의 피라미드와 싸워 이기는 좌표계가 될 것이다. 181

 

볕뉘.

 

1. 깊이있는 글들이 고맙다. 학교 밖 청소년, 콜센터 노동자, 청년예술가, 주변부 과학기술자들, 청년창업자의 삶들을 깊숙히 들여다볼 수 있다는 점도 그러하다. 어떠한 방식의 삶을 선택하더라도 이땅에서, 변화하는 세상에서 살아가기는 결코 녹녹치 않다는 것을 글들을 통해 아프게 새겨진다. 또 다른 삶의 실험과 그 결을 느낄 수 있는 것도 큰 수확인 것 같다. 문제는 나의 삶의 선택도 다양한 방법과 갈래길을 갖게 될 수 있지만, 다른 삶들의 파고가 늘 나에게도 미치고 있다는 것이다. 다른 삶들에 눈길도 관심도 없이, 나의 삶으로도 벅차다고 생각하는 순간, 다른 삶들의 외피를 쓴 조직적인 파도 끝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2.  양극성 장애를 앓는 것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증상이라면 그것은 달성해야 하는 목표와 관리시스템이 이 하나에 집중하도록 만드는 수많은 아이러니의 겹침때문에 발생하는 것은 아닌가? 탈진의 기로에 서 있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어떤 사회적 역할도 의미가 없어지는 병증에 도달하는 사람들이 늘어날 수 밖에 없는 확전의 상태에 있는 것은 아닌가? 취재하고 인터뷰한 내용들의 근저에 흐르고 있는 또 다른 삶들의 결을 잘 모아볼 필요성이 있는 것 같다. 이렇게 보이지 않는 삶들은 거대한 노동의 흐름을 묵묵히 움직이고, 그 경제행위가 삶의 방편이자 질곡이 되는 현실이다. 좀더 광범위한 조사와 문제점에 대한 연구, 다층적인 해결책의 실마리로 다양한 삶들을 느낄 수 있는 것, 주식 시세표처럼 등락을 거듭하는 보이지 않는 삶들을 다시 여기로 가져오는 일이 필요할 것 같다.

 

3. 끊임없이 반복하는 자신에 대한 실망과 남에 대한 멸시, 수치심과 증오가 반복되는 삶을 다시 살리고 채워내는 방법과 삶의 실험도 눈여겨보면 좋을 것 같다. 그리고 또 다른 삶들과 섞어내는 다른 삶의 이정표를 느낄 수 있다면 반드시 이 사회에서 다르게 사는 길이 없는 것은 아닐 듯 싶다. 인식의 심화와 일상의 노력들에 응원을 보내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