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이오니아 자연철학의 특질

 

1. 종교비판

 

밀레토스이 자연철학자가 신 없이 세계를 설명하려고 한 것은, 리디아니 페르시아의 침략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내부 폴리스에서 빈부차이가 생기고 지배-피지배의 관계가 발생하여 이소노미아가 파괴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폴리스가 신들이나 씨족적 전통에 의해서가 아니라 사회계약에 의해 존재한다는 것을 재확인시키려고 했다. 자연철학은 이런 의미에서 근본적으로 사회철학이다. 108

 

2. 운동하는 물질

 

자연철학과 관련하여 중요한 것은 무엇이 시원물질인가가 아니라, 오히려 그것이 스스로 운동한다는 점이다. 여기에서는 물질과 운동이 분리불가하다. ..탈레스가 만물은 신들로 가득 차 있다.”고 말했는데 이는 주술적인 사고를 도입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주술적인 사고방식을 거부하기 위해 스스로 운동하는 시원물질을 생각한 것이다. 111

 

밀레토스학파가 물질의 자기운동을 생각한 것은 물질의 자기운동의 배후에 무언가를 상정하는 것, 즉 제작자로서의 신들을 상정하는 신화적 사고를 부정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목적인에서는 밀레토스학파가 내쫓은 신들이 되돌아온다. 물론 아리스토펠레스는 신들을 부활시키려고 한 것은 아니었지만, 운동의 궁극적 원인으로서의 을 발견한 셈이다. 113

 

자연철학에는 질료가 스스로 운동한다는 생각이 중요하다. 이 생각은 화형에 처해진 사상가 조르다노 브루노(1548-1600)에 의해 능산적 자연으로 파악되었다. ..코페르니쿠스가 아리스토텔레스=프톨레마이오스의 천동설을 뒤집고 지동설을 주장했을 때, 브루노는 그것을 지지했지만, 동시에 코페르니쿠스를 비판하며 태양계는 무한한 우주에 존재하는 다수의 세계 중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사실 이것은 우주는 무한한고 우리의 세계는 다수의 세계 중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한 아낙시만드로서의 생각을 부활시킨 것이다...부르노의 능산적 자연이라는 사고를 전면적으로 전개한 이는 스피노자이다. 114-5

 

3. 제작과 생성

 

이오니아학파는 목적인을 거부한다. 자연의 생성은 목적을 가지지 않기에 제작과는 다른 것이다. 하지만 생성을 이처럼 생각하는 것이 제작의 의의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기는커녕 이오니아의 자연철학자는 제작이나 기술을 중시하고 그에 기반하여 생성을 생각했다. 116

 

생물 고찰을 주로 하는 아리스토텔레스와는 달리 이오니아의 자연철학자는 탈레스에서 원자론의 데모크리토스에 이르기까지 목적론을 거부하고 우주의 생성, 생명의 발생, 생물의 진화, 그리고 인간사회의 역사적 발전에 대해 생각한 것이다. 118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와 같은 아테네철학이 이오니아적 사고를 압도하고 억압하게된 것은 그들의 동시대나 헬레니즘시대보다는 오히려 기독교가 확립된 시기였다. 즉 아테네의 철학은 기독교의 신학 안에서 계속 살아남은 것이었다. 다른 한편 이오니아적 진화론은 서양에서 근대물리학이 발전해도 부활하지 않았다. 다윈의 종의기원에 이르러서야 근본적으로 부정된다. 121 다윈의 획기적 의의는 우연성을 근저에 두고 모든 목적성을 거부했다는 데에 있다. 그리고 그때 다윈은 자신도 모르게 이오니아학파의 사상을 회복시켰다. 122

 

젊은 마르크스는 에피쿠로스에게서 목적론과 기계적 결정론이라는 쌍방을 원자운동의 편차에서 비판하려는 시도를 발견했다.....양자역학은 어떤 의미에서 질료와 운동은 불리할 수 없다는 이오니아학파의 사고를 회복시킨 것이었다. 즉 양자는 입자(질료)임과 동시에 파동(운동)이다. 123

 

4장 이오니아 몰락 이후의 사상

 

자연철학은 물질이 자기운동하는 것, 물질과 운동을 분리할 수 없다는 것을 강조했는데, 이것을 사회철학으로서 볼 경우 무엇을 의미할까. 그것은 개인들이 존재하는 것과 이동하는 것을 분리할 수 없다는 뜻일 것이다. 바꿔 말해, 이동의 가능성이 없다면, 개인은 존재하지 않는다. 127

 

이오니아 도시들의 구성원은 이동해온 자들로, 그들은 또 언제든지 다시 이동할 수 있었다. 그와 같은 조건이 자유롭기 때문에 평등하다는 이소노미아(무지배)를 가능하게 한 것이었다. 하지만 식민자의 이동이 계속 이어짐에 따라 이동할 프런티어가 소멸되어 갔다. 그와 더불어 폴리스 내부에 빈부의 격차와 지배관계가 생겨났다. 기원전 6세기 전반에는 이오니아 각지에서 그와 같은 경향이 두드러지기 시작했다. 128

 

아테네에서 페이시스트라토스의 참주정은 귀족정에 대항하는 싸움에서 태어났다. 참주가 민중의 지지를 얻은 것이다. 한편 사모스 섬에서는 원래 이소노미아가 존재했었고, 그것을 회복하려는 데모크라시 안에서 참주가 출현했다. 129

 

피타고라스는 우리가 삶이라고 부르는 지상의 생활이란 실은 바로 혼의 죽음이다. 다시 신적 본성을 회복하지 않으면 영원히 윤회전생의 바퀴 안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그것을 벗어나기 위해 혼은 지혜(소피아)를 구해야 한다.이런 의미에서 철학(필로소피)이란 윤회전생의 바퀴로부터 해탈하기 위한 방법이다. 129

 

피타고라스교단에서 구성원은 청정을 지키고 육식을 끊고 침묵 속에서 자신의 혼을 주시하는 수행을 부과받았다. 하지만 오르페우스교단과 달리 피타고라스학파의 운동은 본질적으로 정치적이었다. 예를 들어, 크로톤에서 피타고라스학파는 화폐주조에 종사했고 신흥 상공업계급과의 결부를 기반삼아 폴리스의 정치와 관계했다 131

 

피타고라스가 남이탈리아에서 만든 교단조직의 존재방식은 그가 이오니아의 경험에서 어떤 교훈을 얻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하나는 대중의 자유로운 의지에 맡겨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결과적으로 대중의 자유를 억압하는 독재제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다른 하나는 지도자가 육체’(감성)의 속박을 넘어선 철학자여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그렇지 않으면, 지도자는 그저 독재자가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133

 

아시아로부터 발전된 과학지식을 얻고 스스로도 개발했지만 이오니아에서는 물질적 노동과 정신적 노동의 분할이 진행되지 않았다. 탈레스는 이집트에서 토목기사로서 일한 인물이자 삼각함수를 사고한 수학자이자 일식을 예언한 천문학자이자 정치가이기도 했다. 이는 그가 특별히 만능이었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탈레스는 확실히 걸출했기 때문에 지자’(현인)로 꼽혔다. 하지만 그는 철학자가 아니었다. 이오니아에서는 철학자와 그렇지 않은 자의 구별이 존재하지 않았다. 바꿔 말해, 이오니아에서는 지중세계가 성립하지 않았다. 135

 

정치가를 지망했던 플라톤에게 있어 소크라테스가 민주파에 의해 처형된 사건은 첫 번째 큰 좌절이었다. 출신 때문에 귀족파로 지목된 플라톤에게 이 사건은 공인으로서의 진로가 끊긴 것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이후 그는 철학자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는 그 후 아테네를 떠나 피타고라스처럼 각지를 방랑하다 마지막으로 남이탈리아의 탈라스에 있는 피타고라스학파 학원에 견학을 갔다. 그는 거기에서 그 자신이 오랫동안 생각해온 민주정에 대한 의문과 극복에의 열쇠를 보려고 했던 것이다. 137

 

헤겔은 피타고라스가 수를 실재로 간주한 것을 관념론의 초기적 단계로 파악하고 있다. 수는 개념과 사물의 중간에 있다는 것이다. 수는 사상의 시작이지만 가장 낮은 시각이다. 즉 피타고라스는 아직 사상=개념에 이르고 있지 않다. 그것이 개념이 된 것은 플라톤의 이데아론에서라고 헤겔은 말한다. 하지만 실제는 반대다. 플라톤의 이데아론은 피타고라스의 사고, 즉 수를 실재로 삼는 사고에 의해서만 가능했다. 142

 

2. 헤라클레이토스

 

플라톤의 이중세계라는 관점을 부정한 것이 헤라클레이토스이다. 그는 끝까지 물질성과 그것의 운동성을 중시하는 자연철학의 시점을 유지하려고 했다. 그가 말하는 은 물질임과 동시에 운동이다. 크세노파네스는 의인적인 신 관념을 비판하며 소나 말이 신을 생각해 그린다면 소나 말의 모습을 그릴 것이라고 야유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경우, 중요한 것은 그가 의인적인 신들을 비판하는 근거로서 유일한 신을 발견했다는 점이다. “유일한 신은 신들과 인간 가운데에서 가장 위대하며, 모습에서도 사유에서도 죽어야 하는 자들과는 조금도 닮지 않았다. ‘유일한 신이라고 하지만 그것은 이 세계 바깥에 있는 것이 아니다. 크세노파네스에게는 이런 자연=세계야말로 신인 것이다. 150

 

헤라클레이토스가 유니크한 것은 만물에서 하나가 생겨나고, 하나에서 만물이 생겨난다.”는 사고에서다. 여기서 그가 말하는 하나는 만물의 다양한 겉모습 너머에 본질로서의 동일성이 숨겨져 있다는 생각과는 다르다. 만물의 성은 물질성이나 운동성을 넘어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후자에서 실현되는 것이다. 152

 

3. 파르메니데스

존재의 진실은 되다이며 존재는 무엇보다도 직접적인 사상에 지나지 않습니다. 헤라클레이토스는 모든 것이 되다라고 말합니다. ‘되다가 원리인 것입니다...‘있다’(존재)에서 ‘-되다로의 이행은 위대한 사상의 힘을 보여줍니다....아리스토텔레스가 이제까지의 철학에서 결여되어 있다고 지적한 것-운동의 관념-이 보충됩니다. 여기서는 운동 그 자체가 원리가 되고 있습니다. 156-7

 

이것도 사실은 아니다. 이오니아의 자연철학은 아르케(시원)에서 운동하는 물질을 발견했다. 즉 물질과 운동은 분리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것을 분리한 이가 피타고라스이다. 157

 

제논은 당신들의 비겁에 질렸다고 말한다. ...그의 선동은 시민을 움직여 참주타도를 실현시켰다. 이와같은 인물이 스승으로 우러러본 파르메니데스가 헤라클레이토스 못지 않을 정도로 격하게 투쟁적이었다는 것을 의심할 수 없다. 159

 

파르메니데스는 공허나 무로부터 세계의 생성을 보는 사고를 부정한다. 공허는 있지 않은것이다. 있지 않은 것은 있지 않다. 한편 있는 것은 하나가 된다. 그것은 말하자면 물질의 항존성을 의미한다. 공허나 무로부터의 세계생성이라는 사고를 부정하는 것은 전이오니아적 사고(헤시오도스)와 포스트 이오니아적인 사고(피타고라스)에 대한 비판이며, 이런 의미에서 이오니아적인 사상을 회복하는 것이었다. 160

 

신화에서는 모든 것이 사후적으로 보인다. 즉 이미 일어난 사건이 신들의 의지나 목적으로 해석된다. 그렇게 생각하면, 이오니아의 자연철학자가 부정한 것은 신들이라기보다 호히려 사건을 사후적 내지 목적론적으로 보는 관점 자체이다. 그들에 의해 물질운동이 목적론적이 아닌 것으로서 파악된다. 그러므로 거기서 진화론적인 관점이 생겨났다. 하지만 피타고라스에게 운동은 사후적인 관점에서 이해된다. 그리고 사후적으로 발견되는 세계야말로 진정한 세계이다. 161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크세노파네스 =일자도 간접증명을 통해 제시되었다. “만약 신들이 태어났다면, 그 탄생 전에는 무로 있었을 것이다. 또 만약 신들이 죽는다면, 신들은 무가 될 것이다. 신들이 존재하지 않을 때란 생각할 수 없다.(불합리하다) 그러므로 신들은 태어난 것도 죽는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신들은 항상 존재하는 것이다.”라고 말이다. 파르메니데스의 논법도 그것과 같다. “는 불생불멸이다. 왜냐하면 가령 가 생성되고 소멸한다고 하자. 생성된다면 로부터이고, 소면한다면 로이다. 그런데 는 말도 생각도 할 수 없다.(불합리). 그러므로 는 불생불멸이다.“ 164-5

 

원자론을 자연철학으로서가 아니라 사회철학으로서 볼 때 중요하다. 오늘날은 원자론, 즉 개체에서 전체를 설명하는 이론이 사회철학의 주류이다. 이에 대해 전체론, 즉 개체에 대해 전체의 선행성을 주장하는 관점으로부터의 비판이 있다. 그리고 이에 더하여 헤겔처럼 개체와 전체의 변증법적인 상호규정을 보는 관점이 있다. 이것들은 모두 개체와 전체를 대립하는 것으로 파악한다. 여기에는 개체와 개체가 관계하는 차원이 결락되어 있다. 개체와 전체라는 관점 자체가 개체와 개체의 관계에 의해 성립하는 구조를 무시하게 만드는 것이다....이 책에서 네 가지 교환양식이 결합과 분리로 사회사를 보려고 한다. 그것은 전체와 개체라는 관점에서 사회를 보는 것이 아니라 개체와 개체가 관계하는 형식들을 기본으로 하여 사회구성체를 보는 것이다. 174

 

엠페도클레스 이후 데모크리토스에 이르는 사상가들은 더 이상 폴리스에 입각하지 않았다. 그것은 개개인의 선택에 의한 것이 아니다. 페르시아전쟁 이후 아테네가 일종의 제국으로서 군림하게 되고, 각 폴리스의 자율성이 내적, 외적으로 상실된 것과 관계가 있다. 그때까지 사상가는 각자의 폴리스에 있으면서 다른 폴리스의 사상가들과 교류하고 있었는데, 이제 그것이 불가능하게 되었다. 그들은 그리스 정치경제의 중심지인 아테네로 갔다. 몰론 거기서 폴리스(정치)에 관여하는 일은 불가능했다. 그들 대부분은 지식을 파는 상인으로서 활동했다. 175

 

 

볕뉘. 사람과 삶을 읽지 않고는 한 걸음도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무지를 통감한다. 무엇을 모르고 있는지 이제서야 조금 알 것 같다. 피타고라스, 플라톤, 소크라테스 그 순환의 맞물림과 역정....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