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랫동안 달동네에 살았다. 내게 1980년대의 후반부가 독재와 민주화운동과 시의 시절이었다면, 그 전반부는 원죄의식과 주사(酒邪)와 첫사랑의 시절이었다. 나는 거기 살던 내내 언젠가 탈출기(脫出記)를 완성하겠다는 생각으로 살았다. 거기서 벗어난 지 십오년이 되었는데 이제는 그곳이 나를 벗어나려 한다. 그곳, 서울시 성북구 삼선동 일대가 재개발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그들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며 살고 있을까? 그곳의 소로(小路)들과 사람들과 삶을 복원하고 싶었지만, 그것의 탈출기의 내용은 아니었을 것이다. 나는 주름ㅡ사람들의 동선(動線)이 그어놓은ㅡ을 잔뜩 품은 어떤 장소에 관해서, 끊임없이 현재로 소환되는 사람들에 관해서, 겹으로 된 삶에 관해서 말하고 싶었다. 내가 기억에 관해 이야기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 권혁웅
1. 산등성이 마을의 불빛들

멀리서 보면 그 마을의 불빛들은
저들끼리 일가를 이루어
바람에 깜박이곤 했습니다
별자리가 별을 낳듯
조그만 길들이 가등(街燈)을 낳고 담벼락을 낳고
시멘트 기와지붕을 낳았습니다
그 빛더미 어디선가 나 역시
4등성처럼 희미하게 빛났을 것입니다
옆집 사는 그녀가 앉았던 자리는 치마 자리,
삼선교회가 만든 자리는 아브라함 좌(座)였을 테지만,
우리 집이 만든 성좌는 겨우
술자리였습니다 나는
낮은 처마 아래서 성문종합영어를 펴들고,
펜은 칼보다 강하다든다
침묵은 금이다 같은
뜻 모를 구절을 암기하기도 했습니다만
돌아봐도 그곳은 여전히 캄캄하고
불빛들만 여간해서 지워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참다못한 별 하나,
가출하면서 성냥을 긋듯
슥, 타오르기도 했습니다만

 2. 수면

작은 돌 하나로 잠든 그의 수심을 짐작해보려 한 적이

있다 그는 주름치마처럼 구겨졌으나 금세 제 표정을 다

림질했다 팔매질 한 번에 수십 번 나이테가 그려졌으니

그에게도 여러 세상이 지나갔던 거다


1.

윤중호의 <본동에 내리는 비>가 생각이 났다.  윤중호가 살아 꿈틀거리고 그 골목골목에 시선이 삶과 섞여 있다면 권혁웅은 일관되게 시선을 허공에 둔 채 시 한편 한편을 그 계보속에 착실하게 넣어둔다. 그리고 낱개의 시 한편들은 '산등성이 마을의 불빛들'처럼 모여 빛을 발한다. 그리고 가슴이 아리다.

2.

지난 일들이 생각났다. 셋방-건넌방-친구집-이웃 골목길 구멍가게-좁디좁은 골목, 기억 속에 묻혀있던 편린들이 그 계보학을 통해 제법 복원되었다.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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