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개인적 체험을 바탕으로 13세부터 19세까지 성장해 가는 소년의 내면을 따뜻한 시선으로 그린 성장기 소설. 빨리 어른이 되고 싶어하는 소년의 욕망과 꿈이 오래된 사진첩을 펼쳐 보는 것처럼 정감 어린 어투로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다


지난 일을 돌이켜보는 것이 어줍잖다는 느낌이 많이 들었는데, 이 성장기소설을 읽으며 그때가 반추되고, 불쑥 커버린 아들녀석에게 생각길이 난다. 경계인형 범생이 스타일이 나였을까?  노는 애들과 그렇지 않은 애들 사이, 그런대로 모가 나지 않게 잘 어울렸던, 하지만 돌이켜보면 씁쓸한 기억들이 많다.  나의 사춘기 내내 맴돌던 응어리/갑갑함, 대물림하여 주고 싶지 않은 기억들이 지금도 여전한 것에... ... 

1. 누나 - 누나는 상고를 갔다. 형편이 다들 그러했지만 울동네에서  인문계라는 것으로 부모들이 시선을 갖지 않았다. 정말 공부를 잘했던 누나.. 그러던 누나가 남자친구를 사귀었고, 어찌된 일인지 무단가출, 집안이 발칵 뒤집어졌다. 어머니를 따라 누나친구들을 찾아 수소문하던 기억(사랑엔 국경인 없다는 생각뿐인 나는 심정적동의, 어른세계의 불안함은 별 관심거리가 아니었던 것 같다.), 그 뒤로 아버님 몰래 매형은 집으로 숨어들어왔고, 결국 외삼촌에게 들켜 혼쭐이 났고, 집안의 반대로 사랑의 외줄타기는 계속되었지만, 결국 제대후엔 결혼에 성공 너무 잘 살고 있다. 

2. 기도 - 반장을 하고 한살이 많던 박기도라는 친구는 어떻게 친해지게 되었는지 모르겠는데, 무진장 어른스러웠고 학생부일에 미술부까지 하고 있었다. 그 친구집에 놀러간 일이 있고 몇번 왔다갔다한 기억, 하지만 인상에 더욱 남는 것은 그 녀석 입으로 나온 '자살하고 싶다'는 말이었다. 그런 생각해본 적 있냐고 물었던 것 같기도 하구. 어렴풋이 동의를 한 것 같은데 아무래도 어머님인지 아버님인지 정신병에 집안이 어려웠고 그 고민이 겹쳐있었다.

하지만 그 녀석은 헬쓰도 하고 겉으론 정말 쾌활하고 사교적인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문제가 생긴 것은 그것이 아니었다. 학생부를 맡고 있어서 중요한 것은 시험문제 보관이 허술하여 시험문제 유출이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문제집에 있는 문제를 고스란히 내는 선생님들도 여전히 수준이하였지만, 시험문제를 미리 알 수 있다는 것은 커다란 유혹이었다. 한 과목에 가담했다. 하지만 시험이 끝나갈 무렵 학교가 온통 발칵 뒤집혔다. 누가 교무실에 들어가 시험답안지를 고치려다 잡혔다는 것이다.  그 뒤로 그 친구는 정학을 맞았다. 그리고 그 쾌활한 모습은 조금씩 잊혀져간 듯 싶다.  어느 대학을 가고 중학교땐 선생님과 결혼했다는 소문이 들리고 있다.

3. 정녕 - 국민학교 단짝이었다. 녀석은 공부를 잘했고 싸움도 잘했다. 전학온 태권도 몇단짜리와 아이들 보는 앞에 맞짱을 떳는데 이겼다고 소문이 파다했다.  달동네 그 녀석 집에 놀러간 기억도 있는데 홀어머니,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없다. 그런 기억과 중학교 기억으로 이어진다. 논다는 녀석들, 다른 학교와 패싸움 소식은 간간이 들렸는데 점점 소식, 횟수도 잦아들었다. 그 중에 한명이 그 녀석이었고, 잘 알던 나는 편지를 썼다. 제발 그만 돌아오라는 호소문 비슷한 것을 그리고 그것을 전해주었는지 기억은 없다.  고등학교에서 멀찍이 보다 대학갔다는 소식, 열심히 데모한다는 소리, 우연히 지하철에서 만났고, 나처럼 사이벌어진 앞니를 드러내고 씨익 웃어보였다. 그 뒤 은행에 취직했다고, 최근 부인이 사별했다는 문자를 받았다.

4. 학교 - 한반에 70명이상 17개반 - 베이비붐에 서울 변두리는 그야말로 득실득실했다.오전반 오후반까지,  신출 여선생님이 오며 여지없이 울음을 터뜨리고, 갖은 수모를 다 당했다. 이쁜 여선생님은 더욱 더. 험한 생활 탓이었을까? 더 조숙하였다. 말죽거리 잔혹사는 지극한 일상들 가운데 하나였을 뿐, 그런 여선생님들도 점점 표독스럽게 변해갔다. 사육을 제대로 하려면 말이다. 남자 선생님처럼 단체기합을 받을 땐... ...

5. 시험 - 암기기술만 있으면 모든 과목이 무사통과였다. 그대로 복사해놓고, 시험전까지 잊어버리지 않으면 될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영어 발음기호문제도 그대로 머리에 전사시켜놓으면 영어를 잘 하건 못하건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음악 이론도 마찬가지... 문제는 하루 세과목을 보면 조금 시간이 빠듯한 것이 문제였을 뿐... 고 1, 2학기 말이 되면서 하루에 2과목씩 본다는 것이다. 정말 쾌재를 불렀다. 중간고사도 80점을 갓 넘었는데... ... 그 여유시간은 정말 많은 득을 주었다. 환산점수로 평가를 했으니, 90점만 넘으면 되었고 ... .. 성적진보상에 ... ...하지만 그 뒤로 이 닭짓만으로 성적 유지하기가 쉽지 않았고, 실력이 보강되지 않으면 안되는 일이었다. 나의 복사 실력은 그것으로 족했다. 나의 단점은 국사과목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내가 제일 못하는 과목은 국사였다. 별명이 악마인 이 선생님은 문제를 그대로 내지 않는다는 것이다. 맥을 모르면 헷갈려 풀지 못하는 그런 문제...80점 넘기기가 정말 어려웠다. 더구나 책을 싫어했고, 책 혐오증 비슷한 것이 있었던 나에겐 넘을 수 없는 벽이었다.  정말 제도권이 원하는 그런 학생이었을지 모른다. 시키는대로 아무 생각없는... ...

6. 하지만 그땐 하루 종일 뛰어놀 수 있었다. 운동장, 산, 주말이면 이웃동네와 아이스크림내기 시합이 줄을 잇고 있었다. 어두워도 밤을 밝힐 수 있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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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5-12-26 16: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루종일 뛰어 놀았던 넓은 운동장
아이들의 땀에 절은 발가스름해진 뺨
어두워지는 동네 골목길에 누구야 밥 먹어라 부르던 엄마의 목소리...
따듯한 아랫목같은 페이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