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무 부담이 큰 고위직에 오르지 않더라도, 또 근로 환경이 아주 나쁜 편은 아니라 하더라도 근로자는 얼마든지 업무 피로를 호소하고 일찍부터 직무 기력이 소진되는 상태에 빠질 수 있다. 하지만 개인이 느끼는 업무 피로감과 번아웃 상태가 서로 다르게 나타나는데도 우리는 지극히 상식적인 관점을 통해서만 이들을 보살피려 한다. 16

 

인적자원의 손실이 회사 자본의 손해임은 말할 것도 없으며, 지구의 자원이 한정된 것과 마찬가지로 인적 자원 또한 한정되어 있다. 앞으로 얼마든지 새로운 사람을 뽑으면 된다는 생각은 통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지속 가능한 개발이라는 개념은 환경 부문뿐만 아니라 근로 부문에서도 통용된다. 이제는 우리 모두가 인적 자원을 보호하고 서로가 서로를 지켜 주며, 필요하다면 법이 규정한 바에 다라 미리 위험을 알려야 한다. 18

 

근로자들이 일에 지친 상태라는 것을 어떻게 확인할 수 있을까? 수시로 경쟁의 법칙이 달라지는 조직 내에서 사생활도 없이도 넘어설 정도로 일에 몰두했는데, 이제 어떻게 하면 직무의 탄력성을 회복할 수 있을까? 일에 지친 근로자들이 잃어버린 삶의 좌표를 다시 세울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근로자들의 진로를 안정적으로 만들어 주면서도 그들의 동기나 의욕을 조직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맞춰 나가는 방법은 무엇일까? 19

 

우리가 시간을 다스릴 수는 없으므로 우리가 생각해 볼 수 있는 유일한 선택지는 자기만의 리듬을 따라 살아가는 것뿐이다. 얼마 전 겪은 시련이나 경험을 통하여 이를 인지할 수 있는 것도 바로 우리 자신이다....유충에서 성충이 되기를 기다리는 번데기는 남이 도와주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이는 번데기 자신에게도 해롭다. 또 한 번 위험에 빠질 필요는 없으며, 그저 시간이 제 역할을 다하는 것을 감수하고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그렇게 해서 새로이 도약하게 될 사람은 바로 우리 자신이다. 23

 

직무기력 소진과 관련해야 캐나다 스트레스 연구소장은 이렇게 주장한다. “ 우리가 나약해서가 아니라 우리 몸이 고장 난 상태라서 직무 기력이 소진되는 것이다. 최근의 연구 결과, 스트레스 호르몬이 뇌까지 올라가면 이 호르몬은 앞으로 일어날 상황에 대한 우리의 인지 방식까지 바꾸어 놓는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호르몬의 작용으로 인해 무언가를 바라보는 방식 자체가 달라지는 셈이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받을수록 스트레스에 대한 우리의 대응 기제도 점차 일반화된다. 컵에 남은 물의 양을 바라보는 방식도 달라진다. ...왜곡된 시선으로 상황을 바라보고 이를 벗어나는 방안에 대해서도 그릇된 판단을 하기 때문이다.” 41

 

우울증에 빠진 사람들은 자기 앞에 닥친 일에 대해 스스로 죄책감을 느끼지만, 스트레스 보상 반응이 퇴화된 번아웃 피해자들은 분노를 느끼는 경향이 더 강하다. 번아웃 증후군을 경험하는 사람들이 느끼는 가장 큰 불쾌감은 방향성 상실이다...몸은 여기 있지만 마음은 콩밭에 가 있는 이러한 상태를 전문 용어로 프리젠티즘 presenteeism'이라고 한다. 산업 보건 문제로 인해 고용주가 부담해야 하는 비용 가운데 프리젠티즘 관련 비용이 18-60%를 차지한다..최근의 연구에 따르면, 근로자 세 명이 프리젠티즘 상태에 있다면, 이는 한 명이 결근한 상태와 맞먹는다..44-45

 

과중한 업무를 마치고 난 후나 극도의 스트레스를 경험하고 난 후에 갖는 휴식의 시간에는 역설적이게도 편두통이나 근육통 같은 병증이 되살아날 수 있다. 대개 주말이나 휴가 초기에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는데, 이것을 일 중독 증후군이라 부른다. 51

 

언제 끝날지 몰는 이 암전의 상태를 우리 스스로는 아직 납득할 수 없겠지만, 그렇게 막이 내려온 이 상황이 우리로서는 꽤 다행스럽기도 하다. 그리고 바로 이때부터 그동안 우리가 희생시켰던 부분들이 스스로의 자리를 되찾는다. 역설적이게도 막이 내려오게끔 만들었던 충격파를 기반으로 하여 새로운 지지대가 마련되며, 막이 내려가게 만든 원인들은 끊임없이 우리의 머릿속에 반향을 일으키며 미래에도 이 요인들에 대비할 수 있도록 경각심을 고취한다. 우리는 결국 이 난국에서 벗어나게 되겠지만, 한 번은 이 난국을 지나가야만 한다. 80

 

번아웃 상태에 빠진 사람은 현재 자신이 어떤 상황을 겪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 정신적 정서적 차원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언어로 표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어느 날 문득 그동안 잠자코 있던 내부의 자극에 불현 듯 사로잡히는 느낌을 받는데, 이는 사실 외부의 압박을 좀 더 잘 견뎌 낼 수 있도록 도와주려는 작용에 불과한다. 이 적응 과정은 스스로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암암리에 조용히 이루어지고 있었다. 이 과정은 더 이상 적응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까지 계속된다. 이때부터는 자가 조절 과정이 전혀 힘을 쓰지 못하고, 무절제하고 혼란스러운 상황이 뚜렷이 나타난다. 번아웃 증후군은 일종의 적응 장애라는 점에 유념하자. 93-94

 

이들의 감정은 모두 다 재로 변했다. 말 그대로 번아웃상태이다. 이제는 기다려야 할 때이다. 이후의 상황은 스스로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으며, 번아웃 피해자들은 곧 모든 것이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돌아간다는 안타까운 현실을 깨달을 것이다. 세상은 여전히 계속해서 흘러간다. 하지만 이들이 빠진 채로 돌아간다. 명예가 실추된 이들은 자신이 세상에서 하등 쓸모없는 인간이라는 생각을 하게되고, 고독감이 이들을 엄습한다. 이들이 제일 먼저 맛보는 고통은 스스로의 위신과 명예가 바닥에 떨어져 버렸다는 것이다. 이들은 이를 결코 잊지 않을 것이다. 97

 

직무 기력의 회복이 순조롭게 이루어지려면 이러한 문제 제기가 상당히 중요한데, 모든 것이 근로 환경이나 사내 문화, 직업적 관행에 기인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다문 그동안 저마다의 접근법을 알아보기 위해 진행한 상담의 결과로 미루어 보건대, 산업 보건 전문가들은 대개 시간적 요인을 직무 기력 회복에서 중요한 요소로 꼽았다. , 양적인 시간과 질적인 시간을 고려해 가며 자신의 시간을 재인식하는 것이 번아웃 증후군 극복에 가장 큰 관건이 된다는 말이다. 128

 

번아웃 이후의 직무 기력 회복 과정에서는 회사 생활과 개인 생활 사이의 경계를 구분하기가 더욱 힘들다. 직무 기력을 다시 살려 내는 과정은 복합적으로 이루어지며, 서로 간의 상호 작용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번아웃 이후의 회복 과정은 모세관 현상과도 비슷한 양상을 보이며, 번아웃에 따른 피해는 사방으로 확산된다는 점에 유념하자. 라부아지에의 말마따나 새로 생겨나는 것도 없고, 사라지는 것도 없다. 모든 것은 그저 형태가 바뀔 뿐이다.” 131

 

인간공학 연구자들의 기준에 다르면 업무 부담을 세 가지 형태로 구분할 수 있다. (1) 정해진 업무: 미리 규정된 업무 (2) 실질적 업무: 효과적인 수행을 위해 구체적으로 부과되는 실제업무 (3) 체험적 업무: 정해진 환경 속에서 실제로 수행을 하면서 실감하게 되는 업무....업무가 연속되는 가운데 중간에 끼어드는 틈새 시간에 대해 따져 본다...이 소소한 시간들이 쌓이고 쌓여 결국 우리를 구석으로 몰고 간다. 133-135

 

시간축 - 후퇴의 시간, 휴직의 시간, 휴가의 시간, 자원 재비축의 시간, 성찰과 고민의 시간, 행동 욕구의 시간, 위험 요인 인식의 시간, 생태적 균형 추구의 시간, 행동 실천의 시간, 능력보유의 시간, 행동 의지의 시간, 행동 능력의 시간

 

공간축 - 치료의 공간, 요양의 공간, 휴식의 공간, 은거와 침거의 공간, 고민과 성찰의 공간, 투사의 공간, 통합의 공간, 놀이의 공간, 자기만의 무대 143

 

시간에 대한 새로운 인식은 번아웃 증후군이 우리에게 알려 주는 첫 번째 가르침 중 하나이다. 양적 시간과 질적 시간 사이의 균형점을 찾으면 투자의 균형을 이룰 수 있으며, 한쪽에만 편중된 빚은지지 않게 된다. 저울의 균형을 잘 잡을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 170

 

번아웃 회복기에 있는 사람들은 늘 대외용 가면을 내려놓은 다음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는다....여성들은 촉각에 대해 가장 많이 언급한다. 마사지에 대한 이야기도 자주 하고, 스파나 수영장, 원예 활동의 이점에 대해서도 많이 이야기한다. 흙 속에 손을 파묻었을 때의 느낌 같은 것도 종종 언급한다. 업무로 지친 여성 번아웃 피해자에게는 촉각적으로 느껴지는 타인의 손길이 무언가를 활성화하는 역할을 한다...반면 남자들의 경우에는 촉각보다는 음악을 통한 청각이나 후각, 미각 쪽 경험담이 두드러진다....신체적 부분이 정신적인 부분에 작용을 미치고 이를 활기차게 보완해 주기 때문이다. 182

 

공간의 변화는 상당히 바람직하다. 자의든 타의든 피할 수 없는 이러한 변화는 대개 갑작스럽게 찾아온다. 직장이라는 집단적 공간은 가족 또는 자신의 개인적인 공간에 그 자리를 내준다. 이로 인해 사회적 차원에서의 관계는 다소 주춤할 수 있겠지만, 그 덕분에 우리는 한 걸음 뒤로 물러나 다시 자원을 그러모을 수 있다. 나 자신에 대한 호의적인 배려가 시작되는 것이다. 이는 좋은 신호이다. 스스로를 보살피고 바로잡는 모습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183

 

달라진 것은 자기 자신이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는 스스로의 시각이기 때문에 번아웃 이후의 자기 모습이 적응되지 않는 것을 걱정할 필요는 없다. 또한 세상을 이해하고 파악하는 방식 또한 좀 더 진화하고 좀 더 세련되게 다듬어진다. 이는 차라리 잘된 일이다. 다만 세상을 바라보는 이 혜안을 얻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대가가 필요하다. 바로 인고의 시간과 뼈를 깎는 노력, 삶에 대한 회의라는 값을 치르는 것이다. 정신적인 계약을 위반하면 삶에 그 흔적이 남는 법이다. 207

 

볕뉘. 

 

1.  "세계보건기구는 정신 쇠약을 야기하는 정신 건강에 관련한 정신적 고충이 향후 2020년가지 병가 휴직의 가장 큰 원이 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28)" 고 한다. 직면한 문제다. 책을 읽으면서 프랑스의 산업심리 전문가나 시스템에 대해 더 궁금해진다.

 

2. 육체적 탈진에 맞부딪혀야 알게 되는데 우울증과 달리 분비되는 호르몬도 상황도 다르다고 한다. 이를 위해서는 좀더 일들과 일들사이에 생기는 틈새시간을 눈여겨봐야 하며 업무도 규정되거나 실질, 체험업무를 구분하여 볼 필요가 있다고 한다. 틈새시간들이 쌓이고 쌓여 거꾸로 자신을 무너뜨릴 수 밖에 없는 것임을 각인하여야 한다고 말이다.

 

3. 회복 역시 시간과 공간을 달리쓰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한다. 회복기에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신체의 오감을 회복하므로써 치유되는 과정을 밟기도 하며, 시간 또한 양적인 것이 아니라 질적으로 쓰는 습관이 도움을 줄 수 있다고 한다.

 

4. 지금 여기로 돌아와 심리적 사회적 시스템과 일터내에서 우발적으로만 다루고 있는 관행이 더 큰 문제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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