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해콩님의 "뉴스를 보면 아프지 않나요 - 홍세화"

호흡을 가다듬을 수 없게 만드는 현실과 냉혹함은 비열하리만큼 '나'만 재생산하고 있지 않나싶네요. '나'와 '우리'사이의 간극은 점점 멀어져만 가는 것은 아닌지?  무관심은 의례히  중독으로 치닫고, 재산과 아파트 평수로 일상의 삶이 논의된다는 것(어떻게 벌었냐?왜?다른사람은?)이 얼마나 '우리'속에서 '나'를 발라내려는 것인지? '내정년'만 이야기하는 단체는 '우리의 고용'에 대해 한마디 이야기하지 않는 현실,(정규직의 정년연장만 현수막으로 걸리고 반이나 넘는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해달라는 문구는 아무데도 보이질 않고?) '내월급'이 얼마인지가 중요하지 '우리'월급이 과연 얼마인지(내 쥐꼬리 월급에는 분개하지만?), '내살림'살이가 중요하지 '우리살림'살이에 대해 의견조차 교환되지 않는 현실, '나'와 '우리' 사이의 분열증 또는 그 심연의 연결고리는 무엇인지? '내자식'만 생각하지 키우는 '우리 어머니'는 당연한 것?

언제부터 '나'는 '우리'에서 벗어나 이렇게 독립한 듯 제멋대로일까? 도시의 전시상품처럼 그저 전시만 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누가', '어떻게','왜' 만들어졌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나'라는 존재는 그렇게 유통만 덩그러니 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렇게 유통되는 '나'만을 보기만 할뿐이지? '고민'하는 자체로도 삶이 버겁기때문은 아닐까? 도시는 끼리끼리 모이게 하고, 앞집옆집 모두 같으니 세상이 같은 것이라 위안하고 사는지도 몰라?

'가진 것'은 회자되지 않고 '가질 것'만 유통되는 현실, '가질 것'만 부탄가스처럼 가슴에 안고 사는 불두덩이를 뛰는 '나'   익숙한 것은 당연한 것이 되고, 당연한 것은 불문율처럼 '논의'의 자리마저 뺏겨 '터부(금기)'되는 지금

'나' ; 유통기간이 지난 것은 아닐까?  맘에 상처나고 고통스럽고, 버겁겠지만  유통기간이 지나 상하기 전에 '우리'로 소통의 잔뿌리를 내려야 하는 것은 아닌가?  점점 더 영특해지고, 똑똑해지고, 적응력이 뛰어나고, 능력이 있어지지만, 점점 더 미숙해지고, 오만해지고, 잔인해지고, 탐욕스러워지는 '나' ---- 하지만 유통기간은 재충전되지 않는 밧데리처럼 급속히 반비례하는 것은 아닐까?


홍세화님의 미어지는 '가슴'이 보이는 듯합니다.  님의 글로 한번 스스로 되돌아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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