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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로 시력을 잃은 화가는 핀과 실로 구도와 화점을 만든 뒤, 물감의 질기를 지촉에 의존해 그림을 그린다. 전체에 대한 감각을 놓치면 그림이 순식간에 망치게 되는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시력과 실력을 우연치 않게 경험한 유일한 세대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힘을 잃은지 너무도 오래. 감각을 살려 전체에 대한 하나하나를 기억해내며 잊지 않으려는 것이 그래도 아주 작은 그림하나 그려내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 화가의 동생은 깜짝 전시회를 열었는데 관객은 핀이 꽂힌 자리에 의아해하면서도 수려한 풍경화에 무척 놀라와 했다. 그리고 앞을 볼 수 없단 사실엔 함께 눈시울이 시큰거렸다.

                                                                          최악에 최선을 연결하는 뫼비우스의 띠

 

뱀발. 변화해야만 그 사물을 제대로 인식할 수 있다는 브레히트의 말이 걸린다. 머리도 몸도 시간의 문턱에 숨는 습관도 바꾸어낸다는 것이 쉽지 않다. 꿈 마저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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