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피다

 

비다. 문을 반틈 열고, 환기하려는 반대편 문을 여니 바람길이 생긴다. 바람을 따라 빗소리가 드나든다. 방안에 있되 처마밑에 있다. 바람따라 빗소리따라 처마밑의 마음길은 이리도 오가기 쉬운데, 삶을 실은 마음들은 피식피식 한치 앞도 다가가질 못한다. 단풍도 첫눈도 와르르 마음 길을 활짝 열지만. 송곳같은 생각엔 나만 찔려버리고 만다. 아물지 않을 상처처럼 깊이 피다.

 

 

볕뉘. 어제 밤은 비가 많이 내렸다. 당기지 않는 저녁이지만 챙겨들었다. 책은 읽히지 않고 답답함은 밀려오고 앙금처럼 남는 말에 짓눌려 어쩔 수 없었다. 지쳐 술에 의지할 생각조차 말라버렸다. 톡톡거리는 빗방울이 툭툭, 뚝뚝 마음에 비수같이 떨어져 고였다. 빗방울인지 핏방울인지  마음을 주기만 했지 틈틈히 나를 위해 채워주지 못한 것이 화근이었다. 다 내 책임인 것이다. 남을 위해 산다는 것만큼 허망한 것도 없을 것이다. 남을 위해 살아주는 체 한 것이다. 사람 속은 한 길도 알 수 없다. 원하고 바랄수록 목적과 목표에서 멀어지는 것인지 알면서도 그리하지 못한 것이다. 진심도 말라버린 경험을 한 것은 좋은 일이기도 하다. 어쩌면 시간이란 녀석이 곁에 있으니 두고보고 모아볼 일이다. 현실은 뜻하지 않게 드러나기도 하는 것이다.  지금여기를 직시하게 되는 방편이라고 위로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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