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삶과 자신이 살고 있는 사회의 발전에 관심을 가진 사람은 누구나 이 전반적인 변화의 과정에서 문제를 해결하고 규명하려고 최선을 다하기 마련이다. 내 견해로는 이론적인 위기나 실제 역사, 혹은 직접적인 상황의 현실과 변화의 조건 등을 이해하고자 한다면, 우리는 이 과정을 전체적으로 보도록 노력해야 하며 이를 새로운 방식으로, 하나의 장구한 혁명으로 보아야 한다. 17

 

우리는 경제적인 미래에 대한 낙관주의가 당연히 단순한 현실 순응이라는 것을 알아야만 한다. 439

 

사용이라는 개념은 보편적인 인간의 판단 우리는 사물을 사용하는 법과 사용하는 이유, 특수한 사용이 삶 전반에 미치는 영향을 알아야 한다 과 연관되지만, 소비는 조야하고도 앞일을 생각지 않는 패턴 탓에 이러한 질문을 취소해버리고, 그러한 질문을 그저 외부적이고 자율적인 시스템의 생산물에 자극을 받아 질서정연하게 흡수하는 것으로 대체해버리기 때문이다. 443

 

1960년대의 영국은 사회적인 필요와 개인적인 필요 사이에 심각한 불균형 상태가 생길 뿐 아니라 증대될 것이라는 점을 깨달았다. 이 시대 영국이 상점 진열장에서 풍요의 느낌을 받는 것은 쉬운 일이지만, 학교, 병원, 도로, 도서관 등에서는 종종 만성적인 부족을 목격하게 된다....이 분열된 사고의 마법은 너무 강고해서 깨어지지는 않는 것 같다. 444

 

그들은 아침에 일어나서 스위치를 누르면 그냥 전기불이 들어오는 줄 아는, 그런 인간이에요.” 우리는 어느 정도 이러한 위치에 있다. 우리가 현실적으로 다른 이들에게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포함해서, 우리의 사고방식이 실제적인 관계의 넓은 영역을 습관적으로 억눌러버린다는 점에서 말이다. 우리는 내돈, 내 조명등을 이렇듯 소박한 관점에서 생각한다. 왜냐하면 사회에 대한 우리의 관념 자체가 뿌리부터 시들어 있기 때문이. 445

 

우리가 시장이 아닌 인간적 필요에서 출발한다면, 이러한 활동 분야를 좀더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일상적인경제활동 자체를 판단할 수 있는 수단을 가지게 된다. 이렇게 되면 노력과 자원의 분배에서 생기는 균형이라는 문제까지도 적절하게 다룰 수 있을 것이다. 희미하게나마 널리 인식된 최근의 위험은 시스템을 인간에게 맞추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시스템에 끼워 맞추는 것이다. 인식이 희미하다는 것은 이러한 과오의 원인을 잘못 짚는 데서 드러난다. 예를 들어 우리가 그것이 없으면 굶어죽을 텐데도 산업생산을 비판한다든가, 커뮤니케이션의 확장이야말로 우리가 이룩한 성장 대부분의 실체인데도 대규모의 조직을 비판한다든가, 마지막으로 우리를 불구로 만들고 있는 것이 바로 적절한 사회의식의 결여인데도 사회의 압력을 비판한다든가 하는 것들이다. 447

 

노동을 거래하는 지금의 체제는 결국 다른 모든 거래와 마찬가지로 제시된 가격에 판매자가 자신의 노동을 팔기를 거부할 권리까지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파업은 시장사회에 통합된 한 부분이다. 당신이 유리한 점을 원한다면 불리한 점도 같이 가져야 한다. 그것이 파국과 혼란으로 치달을지라도 말이다. 448

 

이 경쟁적인 영역세서 중요한 점은 이제는 조직된 시장과 소비자의 개념들이 우리의 경제적 삶과 사회의 나머지 대부분을 결정한다는 것, 그리고 그에 대한 도전은 너무나 효과적으로 교란되어서 어떤 원칙을 갖춘 반대도 임금에 대한 요구와 파업의 끝없는 승강이와 씁쓸함으로만 남아 있는 것이다. 우리가 이러한 상황에 만족하리라고 믿기는 어렵다. 현 상황은 우리를 계속 서로 싸우게 하고, 매우 빠르게 조야한 경제적 냉소주의의 패턴을 장려하면서도 이에 대한 뚜렷하고도 실질적인 대안은 없다. 그 명백한 미래를 사실상 실현하고자 한다면 새로운 의미를 창조하고 그것을 실체화하려는 도전에 직면해야만 할 것이다. 454

 

일에서 우리 사회 대다수의 패턴은 모든 상황에 대해서 지도자를 고정할 뿐만 아니라, 독립적인 결정을 내리고 그것을 단호하게 추진하는 것이 그들의 권리일 뿐만 아니라 의무라고 장려하는 식의 해석을 제공한다. 결국 개가 사람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개 스스로가 줄을 이끌고 가는 것이다. 455

 

잠정적 진술이라는 관습은 의견을 말하는 사람의 개인적인 특권과 합리적으로 떼어서 볼 수 있다는 데 가치가 있다. 이는 공동의 의견에 도달하려면 결국 필요한 방식이기도 하다. 노동운동의 솔직한 화법은 모든 것을 고려해보면, 인간 관리와 비밀스러운 독재자로보터 이슈들이 공개되었다는 점에서 위대한 성과이다. 그러나 동시에 민주주의의 작동은 공격적인 주장을 하는 습관으로 인하여 해를 입었으며, 이는 분명 민주주의의 전 단계로 간주되어야 한다. 이 세상에서 자신의 위치를 찾기 위해 외치고 때로는 공동의 과정을 개인적인 시위로 바꿈으로써 공동의 개선이 이루어지지 않을 것임을 확인시키는 평등하지 않은 사람들의 언어니까 말이다. 460

 

우리 삶의 다른 광범위한 분야에서 민주주의가 상대적으로 결여되어 있다는 것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 민주주의가 전국적 수준에서는 정부를 선출하는 과정으로 제한되어 있고 다른 분야의 사회 조직이 지속적으로 비민주적인 결정 양식을 제공하고 있기 때문에 상황은 현 상태대로 유지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제도의 실제 권력이란 그들이 적극적으로 특수한 감정의 방식을 가르친다는 것이며, 실질적으로 민주주의를 가르치는 제도가 부족하다는 것은 단박에 분명해진다. 464

 

일상적으로 만나면 대개 유쾌한 공공 관리가 왜 그렇게 자주 사회적인 보장을 전반적으로 발전시키는 데 유달리 해를 끼치는 공무원으로 돌변하는가? 그 사람 위에 너무 많은 공무원들이 있는 것도 한 이유가 아닌가 한다. 일반적으로는 리더쉽, 행정의 패턴과 어조가 여전히 민주주의의 전 단계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 아닌가도 생각한다. 고객들을 다루는 사업가는 친절한 인상을 주도록 학습한다. 일반적으로 그 수준에서는 공무원들도 그러하다. 그러나 공영주택에 입주해 사는 사람들은 원래 열등한 인간이라고 생각하는 공무원도 있는데, 그들은 그런 생각에 맞게 말하고 쓴다. 물론 치유법은 그들에게 인간 관리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공공 설비의 분야에서 민주적인 형식들을 개발하는 것이다. 468

 

볕뉘. 이것저것 준비해서 저녁을 챙기고 나니, 피곤이 접힌다. 잠을 자고 일어나니 자정인근....일본사 첫모임 뒤풀이를 하고 있던 벗이 전화가 와 통화를 한다. 가까이 가깝게 울릉도라고 같이 갈 궁리중이라고... ...같이 가자고... ...  그 뒤로 책을 건네들고 본다. 문화혁명  새삼스러운 말일까?  저자는 그동안 배움을 정리할 필요가 있어 이 책을 썼다고 한다. 의무같은 것일지도... .자본주의가 소비자에 머무르는 인간을 양산해 쪼그라들 것이며, 민주주의라는 것도 개같은 지도자가 사람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끌고가는 형국이 될 것이라고 한다. 에릭 홉스봄과 친구이자 문화연구를 평생에 걸쳐 하였다고 한다. 여기서의 지적 경향은 포스트 모더니즘이라는 것에 경도되자마자 그 양동이 안에 있던 마르크스주의와 그간의 축적물이란 아이를 같이 버린 것이 아닌가 싶다. 지적자산과 저력같은 것이 느껴진다.  연구가 아니라 실천의 방편이자 무기로서 이론작업에 얼마나 천착했는지 말이다. 마르크스주의와 문화 앞부분에 용어설명을 읽다. 문화, 언어, 이데올로기....역사의 맥락을 짚어준다. 하나의 관점이 아니라 자장 속에 용어가 살아움직이게끔 하는 것 같다. 전체를 보려는 노력 또한 읽힌다. 1961년 저작인데 낯설지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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