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반항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어떤 현실도 전적으로 합리적인 것은 아니며, 어떤 합리도 전적으로 현실적인 것은 아니다. 현실에는 어느정도의 비합리가 개재됨을 인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을 부인하는 것이야말로 또 하나의 종교이며, 또 하나의 전체주의이다.

내가 말하는 '부조리 인간', 즉 '부조리를 의식하는 인간'은 늘 익숙하던 세계가 돌연 나의 고향, 나의 왕국이 아니라는 느낌, 이 느낌을 획득하는 자이다. 그러면 선험적 조건으로 부과된 부조리 앞에서 인간은 과연 '어떻게' 살 것인가? 반항은 이 물음에 대한 대답이다. 하지만 반항은 원한과 다르다. 반항은 소유하고 있는 것을 타자로 하여금 인정케 하려는 반면, 원한은 질투와 더불어 소유하고 있지 않는 것을 탐낸다.

나라는 '존재'는 육체의 덩어리라는 '실존'을 가지고 있고, 다른 사물, 다른 사람과 구분되는 '본질'을 가지고 있다.

부조리한 삶에 대한 있을 수 있는 대책으로는 '자살' '희망' '반항'이다. 이 가운데 자살이 해결책이 못 되는 것은 부조리의 한쪽 항인 '인간의 의식'을 삭제하는 것이기 때문이며, 희망, 즉 종교가 해결책이 못되는 것은 부조리의 다른 쪽 항인 '있는 그대로의 세계'를 삭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살과 종교는 문제의 해결이 아니라 문제의 회피일 뿐이다. 그렇다면 가장 존귀한 것은 의식의 끊임없는 유지라는 것인데, 반항이란 세계의 모순을 살아있는 의식으로 바라보며 정면으로 맞서 싸운다는 것이다.

<알베르 카뮈>, 살림 2004. <자살>, <종교>,/ <반항> . [부조리(를 인식하는)인간]은 시지프스처럼 끊임없이  현실을 반항하며 고쳐나가는 존재이지 않는가? 비록 다시 시작하더라도... ...연민과 아름다움과 시대정신을 뭍혀가야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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