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 조류 속에서 본 아도르노

 

역사논쟁은 지금까지 암묵적으로 통용되어 오던 시대구분 자체를 문제삼을 때 진정으로 생산적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시대구분의 문제는, 스스로를 지극히 역사와 무관한 것으로 이해하면서도 온갖 종류의 역사적인 서사와 서사적인 재해석을 열망하는 시대에는 중심적인 이론적 이슈 중의 하나일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심은 어느 정도 최근의 역사학을 포함한 포스트구조주의적인 왈가왈부에 대한 흥미로서 이러한 흥미는 역사의 무게로부터 새털처럼 가벼운 일탈을 기도하는 흐름에 대한 일종의 보상이 될 것이다. 52

 

그의 철학적 저서나 미학적 저서가 갖는 독창성은 후기자본주의를 총체성-우리의 개념들이나 예술작품 자체의 형식적 속성에 있어서-으로 파악하는 기발함에 있다. 다른 어떤 마르크스주의 이론가도 보편과 특수, 전체와 부분의 관계를 아도르노처럼 치밀하면서도 포괄적으로 분석하지는 못했다. 극소수의 당대 사상가들만이 복잡한 철학 개념을 다룰 수 있는 세련된 능력을 적절한 심미적 감수성과 결합시킬 수 있었다. 그러한 사람으로서 크로체나 사르트르를 떠올릴 수 있을 터인데, 반면 루카치는 여러 면에서 훨씬 큰 역사적 인물이겠지만, 이런 면에서는 희극배우에 가깝다. 63

 

아도르노의 개념 중 자연, 또는 소위 비동일적인 것이라는 개념으로 보면 프랑크푸르트 학파가 취하고 있는 태도에 관한 우리의 진부한 상식을 바로잡아줄 것이며, 또한 지배의 모티브를 강조하는 푸코와 깊은 유사성을 지니고 있다는 착각도 없애줄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자연사의 관념 자체가 푸코의 권력개념이 지니고 있는 인류학적이고 이데올로기적인 측면 모두를 제거해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65

 

이 책은 마르크스주의도 여타의 문화현상들처럼 사회경제적 문맥에 따라 변화한다는 사실을 날카롭게 부각시킬 것이기 때문에 유용할 것이다. ..아도르노의 마르크스주의나, 지금 우리의 독특한 후기자본주의 또는 제3단계에 들어선 자본주의를 해석할 수 있는 그의 독특한 능력이 갖는 각별한 중요성을 다루고자 한다. 여기에 담긴 의미로서 아예 없는 것보다는 나중에라도 better late than never라는 여전히 항상 타탕한 모토보다 더 극적인 것은 없을 것이다. 68

 

개념의 곤혹스러운 매력

 

동일성과 반동일성

 

사유는 자신의 고유한 법칙성 속에 머물러 있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사유는 자신을 포기하지 않고도 자신을 거역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 변증법에 대한 정의가 만약 가능하다면 이러한 식으로 정의해보는 것은 해볼 만하다. 76

 

초점은 한편으로, 겉보기에는 태양계처럼 중심을 싸고도는 안정된 단자같은 문장들을 텍스트 내의 좀더 큰 구문이나 시간관계에 연결시켜주는 역할을 하는 비자율적 접사나 연결사에 맞추어지며, 다른 한편으로는 분리된 문장들을 필사적으로 좀더 큰 시간성 속으로 묶어주는 역할을 하는 요소들, 즉 앞에 나온 것들을 환기시키거나 주제를 반복하는 요소들에 집중된. 아도르노의 텍스트 독해는 그리고와 같은 그러한 연결사들의 평정한 논리보다는 문장에 굴레를 씌우는 폭력 또는 그러나’, ‘그렇지만’, 휠덜린의 말하자면과 같은, 보통 같으면 단순한 기능어에 머물 만한 단어들의 의미가 갖는 서사적 비논리에 주목한다....79

 

동일성의 기능은 지배와 억압의 계기를 통해 특징지워진다는 상황에 의해, 동일성이라는 개념 자체로부터 동일성에서 배제된 것들을 소극적으로 암시하는 대안적 내지 보충적 묘사가 생겨난다. 고전적 변증법조차-여전히 동일성을 중심으로 조직되어 있기 때문에-“의심할 여지없이 경험의 질적 다양성을 희생한다는 쓰디쓴 대가를 치러야만 한다.” 헤겔은 여전히 낡은 동일성철학의 전통 위에서 플라톤 이래 무상하고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폐기처분당하고 헤겔 자신 게으른 존재라는 딱지를 붙인, 개념 없고 개별적이고 특수한 것에 대해 무관심하다. 이 인용이 암시하고 있는 것은 개념성에 들어 있는 금욕적 자체나 체념 그리고 바로 이러한 체념에 대한 원한감정으로서, 이러한 태도는 아도르노의-동일성의 억압적 기능에 국한되지 않는-전형적인 특징일 것이다. 다른 곳에서는 언어의 육체를 죄악시하는전통철학자들의 수사학에 대한 혐오감을 드러낸다. 욕망과 억압의 언어가 가느다란 고음으로 새어나오듯, ‘비동일성의 특징을 통해 동일성의 본질에 접근하는 이러한 계기를 갖는다. 85

 

교환관계는 아도르노의 저서 전반에 걸친 또 다른 중심동기로서 지금까지 추적해온 동일성이라는 이름을 가진 철학적 중심동기와 엄격한 의미에서 동일한것이다. 동일화하는 개념에 내재된 지배의 의지를 철학적으로나 인류학적으로 환기시키는 것은 동일성의 모든 표현형식 속에 감추어져 있는 경제적 체계(상품 생산 돈 노동력)의 제약성에 대한 예민한 촉수에 자리를 양보하며, 다른 한편 경제적 제약성이라는 동일성 개념의 하부구조는 왜 자신의 효과가 더 나은 사상이나 새로운 방식의 철학함이나 좀더 적절한(좀더 유토피아) 개념에 의해 가볍게 극복될 수 없는가를 인식시켜준다. 역사는 이미 사유하는 주체를 생각하고 있으며 우리의 사유가 벗어날 수 없는 사유의 틀 속에 이미 각인되어 있는 것이다. 88

 

사회는 주체보다 선행한다는 명제에서 보듯 사유의 범주들은 집합적이며 사회적이다. 동일성은 선택사항이 아니라 운명이다. 이성이나 이성의 범주들은 문명이나 자본주의의 발생과 하나이며, 후자가 변화되지 않는 한 거의 변화될 수 없는 것들이다....그러나 오성에 대한 비타협적인 비판도 비합리주의에 떨어질 위험이 있다. 88

 

볕뉘. 최근의 아도르노 책들을 함께 구입했지만 겉넘을 것 같아 입문서 겸 흡인력있는 제임슨의 책을 보고 있다. 온전하게 보지 못하면 아도르노로 들어가는 길, 그의 시선을 편취하고 말 것 같은 느낌때문이다.  마음이 온통 책 속에 가 있지만 책만 펼쳐놓고 한자도 읽지 않는다. 메타비평이라기 보다는 자신을 바꾸어내지 않으면 읽을 수 없는, 본질적인 의도는 무엇일까, 겉넘으면서 읽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불안감에 걸려있기도 한 것 같다. 제일 중요한 모두를 다시 옮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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