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매체나 특히 냉전의 개시이후 어마어마하게 확대되어온 광고·선전이 구사하는 은폐기술을 통해 계급구조를 점점 더 심하게 은폐해왔다. 실존주의식으로 말하자면 이는 곧 우리의 경험이 이제 전체성을 상실했다는 이야기다. 이제 우리는 풍요사회의 벽과 한계 안에서 나름의 논리에 따라 영위되는 개인적 삶의 관심사와, 신식민주의·억압·반혁명전쟁 등의 형태로 바깥세계에 투사된 이 체제의 구조적 결과물들 사이의 연관을 피부로 느끼지 못하게 된 것이다. 심리학적으로 말하자면 서비스경제로서 우리 사회는 이제 세계에서 행해지는 생산과 노동의 현실에서 너무나 멀어졌고, 그 결과 인공적인 자극과 TV로 전송되는 경험들로 이루어진 꿈속 세상을 살고 있는 것이다. 중대한 형이상학적 관심사들, 즉 존재라든가 삶의 의미같은 근본적 문제들이 이처럼 전혀 상관없는 무의미한 이야기처럼 여겨진 경우는 과거의 그 어떤 문명에서도 없었던 일이다. 15

 

시가전의 전사나 도시게릴라가 현대국가의 무기나 테크놀로지와 싸워 이길 수 있느냐 없느냐가 아니라, 오히려 초국가에서 거리 street가 어디에 존재하는지, 경영과 자동생산의 물샐틈없는 망으로 이루어진 새로운 국가에 구식 거리라는 게 과연 아직도 존재하는지, 오늘날 맑스주의의 이론적 문제는 바로 이런 것들이다. 16

 

T. W. 아도르노, 혹은 역사적 비유들

 

아도르노에 따르면 예술작품은 사회적인 것을 거부하는 정도만큼 사회를 반영하며 역사적이다. 또한 예술작품은 개인적 주관성이 그것을 분쇄하려 드는 역사적 힘들을 피하는 마지막 피난처를 나타낸다. 아도르노의 가장 빛나는 평론의 하나인 서정시와 사회에 관한 강연이 취하는 입장도 바로 이것이다. 이처럼 사회경제적인 것이 작품 속에 새겨져 있되, 그것은 볼록면에 대한 오목면, 양화에 대한 음화로서 새겨지는 것이다. 불안 없는 삶, 이것이야말로 아도르노가 보기에 음악의 가장 깊고도 가장 기본적인 약속이며, 음악은 가장 퇴행적인 경우에도 그 핵심에는 이런 약속이 담겨 있다. 57

 

변증법적 사유란 두제곱된 사고, 즉 사유 자체에 대한 사고로서, 정신은 대상이 되는 자료뿐만 아니라 자신의 사고과정도 다뤄야 하며, 관련된 특정 내용과 그에 부합하는 사유양식 모두가 동시에 정신 속에 포함되어야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어떤 수학문제를 변증법적으로 사유한다 함은 문제를 그 자체의 견지에서 인식함과 더불어, 정신이 수학적 처리를 행하면서 느끼는 방식과 그와 전혀 다른 과학적·비과학적 조작을 할 때 갖는 느낌을 암암리에 비교하는 작업도 동시에 수반하는 것이다. 따라서 변증법적 사고는 그 구조 자체에서,심지어 개별적이고 고립적인 종류의 대상을 사유할 때에도, 근본적으로 비교하는 작업이다. 68

 

아도르노는 오늘날 우리가 반물질이라고 부르는 것과 같은 의미에서 헤겔의 텍스트는 반텍스트다라고 말한다. 이런 구조는 전체에 비추어야 이해되지만, 실제로는 단편들로밖에 읽을 수 없는 한 철학자가 제기하는 독특한 어려움을 설명해준다. 71

 

아도르노는 독일에서 에세이가 발달하지 못한 이유를 다음에서 찾았다. 즉 독일 문필가들은 에세이의 전제가 되는 거의 변덕스럽고 비논리적이기까지 한 자유를 감수하거나, 덧없고 단편적인 것들의 와중에서 지적 생활의 힘든 수련을 쌓거나, 걸작이나 기념비적 저작이 주는 존재론적 위안에 저항하면서 바로 역사 자체의 강물 속에 서서 자신의 잠정적 구성물들을 사상이 시간 속에서 겪게 마련인 끊임없는 변신에 내맡기기를 꺼린다는 것이다. 73

 

변증법적 문필가의 근본적인 형식적 문제는 바로 연속성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역사 자체의 거대한 연속성을 절감하는 사람은 마치 언어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너무나 육체적인 지각에 압도당할 때처럼, 바로 그 인식에 의해 마비되고 만다. 역사의 모든 차원이 공시적 형태로 응집될 때, 과거 역사가들처럼 단순명료한 순차적 이야기를 하기란 불가능해진다. 이제 다름 아닌 통시성과 연속성이 문제성을 띠며 단순한 작업가설이 되어버린다. 74

 

변증법적으로 사유한다는 것은 곧 변증법적인 문장을 쓰는 것과 다름없다. 이것은 예술작품 자체를 지배하는 것과 유사한 일종의 문체적 복종 같은 것인데, 예술작품에서 소재의 선택을 결정짓는 것은 모든 의식적 성찰을 넘어서는, 문장 자체의 생김새다. 따라서 이 경우데도 사상의 질은 그것을 표현하는 문장의 유형에 의해 판단된다. 변증법적 사유란 사고에 대한 사고, 두제곱된 사고, 즉 대상에 대한 구체적 사고인 동시에 사유행위 자체 속에서 자신의 지적 작동을 의식하는 사고인 만큼, 이런 자의식이 문장 자체 속에 새겨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76

 

부정변증법의 핵심적 주장이자 아도르노의 궁극적인 철학적 입장은 이전의 미학 에세이와 평론 들에서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작동한 바 있는 그 방법론의 이론적 명료화이다. 이 글들에서 우리는 예술작품의 내용이 궁극적으로 그 형식에 의해 판단되는다는 것과, 예술작품을 낳은 특정한 사회적 계기의 핵심적 가능성들을 이해하는 데 가장 확실한 열쇠는 바로 작품의 구현된 형식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바로 이 방법론적 발견이 이제 철학적 사고의 영역에서도 타당한 것으로 드러난다. 그리고 부정변증법의 실천은 어떤 관념의 공식적 내용, 예컨대 사물 자체로서 자유 및 사회의 진정한성격 등에서 물러나서 그 관념이 취해온 다양한 규정적이고 모순적인 형식들 쪽으로 나아가는 지속적인 운동을 수반한다. 이 형식들의 개념적 한계와 부적합성이야 말로 구체적인 사회상황 자체의 한계에 대해 직접적인 비유 내지 징후구실을 하는 것이다. 78

 

부정변증법은 궁극적 종합 앞에 제시되는 모든 구체적 사례에서 그 종합의 가능성과 현실성을 부정하면서도, 또 한편 종합이라는 관념과 가치는 긍정할 도리밖에 없다. 79

 

사후 출판된 미학이론역시 예술적 실천세계의 역사적 사실들과 이 실천을 반영하는 것이자 인지하는 매개물인 추상적인 개념적 범주들 사이를 끊임없이 옮겨다니면서 미학의 전통적 기반들을 비판하는 동시에 새로이 정당화한다. 그러므로 부정변증법이란 철학 자체를, 혹은 철학함의 이념 자체를 시간적 물신화, 즉 항상성과 영구성의 환각으로부터 구해내려는 시도를 뜻한다고 할 수 있다. ....그의 구체적인 연구들은 역시 변증법적 과정의 빼어난 모범이며, 특별한 계기에 의해 씌여진 것이면서도 체계적인 에세이들로서, 특정 계기와 의식이 결합해 역사의 이해가능성에 대한 순간적이나마 가장 빛나는 형상 내지 비유를 형성하는 글들이다. “앎은 그 대상과 마찬가지로 규정적 모순에 속박된다.” 82

 

볕뉘.  글이 쉽지 않다. 강연의 마무리말을 듣지 않으면 그 이전의 방향이나 설명들이 정리되지 않듯이, 마지막 한마디로 강연의 전체적인 의미가 선명히 다가오기도 한다. 저자가 반복하는 용어나 틀은 이렇게 작가들의 분석과 해석에 녹아있다. 아도르노 편에서는 두 제곱의 사유, 변증법적 사유에 대한 친절한 설명과 함께, 형식을 왜 주목해야 되는지 재삼재사 강조하고 있다. 언제나 역사화하라는 것은 보는 눈의 개수를 늘리므로 맥락과 전체성에 다가서는 것일 것이다. 특히 형식, 그리고 사회경제적 시선을 놓치지 말고, 생산과 노동에 분리된 그 지점들을... ... 책의 끝장을 덮으면서 충격적인...느낌들이 서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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