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재구성의 키워드 #06 – 소셜 플랫폼, 문화헤게모니, 거버넌스, 소셜 라이프, 도시성/장소성, 지역혁신
01 소셜 플랫폼 – “지역은 없다. 그러므로 다시 재구성해야 한다.”, “지역이란 말 대신 현장이란 말을 써서 자유로운 에너지가 넘치는 창의기반의 조성을 담아야 한다.”.....공동체 혹은 마을은 무엇일까? ‘지리적 근접성으로 묶이는 어떤 단위’라기 보다는 “생각을 공유하고 같이 느끼고 안 봐도 알고” 그러는 것들이 공동체의 기반을 이룬다. 198
“일상인들로부터 ‘같이 한번 해보고 싶다’는 욕망을 불러일으키는 데로 나아가야 한다.“ 199
02 문화헤게모니 – 집단적인 삶의 양식을 보고, 이를 ‘소셜 라이프’라 정의 한다. 이 개념은 ‘소셜 라이프 – 문화헤게모니 – 플랫폼의 형성’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연속체적 개념의 한 구성요소로서 여겨져야 한다. 202 제도의 획일화도 경계해야 한다. 제도를 만든다는 게 결국 획일화시키는 건데 그런 제도의 틀에서 사람들이 많이 튕겨져 나간다. 그러므로 우리는 제도를 만들기 위해 노력할 게 아니라, 제도가 커버하지 못하는 걸 서로의 연결망 속에서 어떻게 메워가야 할 것인가에 주력해야 한다. 203
03 거버넌스 - ‘욕망에 이끌려 홍대앞으로 들어와 그걸 창조에너지 삼아 홍대앞을 바꿀 수 있겠다고 생각하고 오랜 세월을 지나왔는데, 지나고 보니 욕망이란 건 “알라딘의 램프에서 지니라는 거인을 불러낸 거와 똑같았다.”는 것. 욕망을 불러일으키긴 했으나 통제불가의 상태에 빠진 것이다. ...그에 벗어나기 위해 다양한 외부의 공적관계, 사회적 관계를 통해서 새 가치를 세워가야했다.’
‘정치가 가치의 배분이라면, 그 배분된 가치의 전달경로, 즉 행정의 혁신이 없이는 사회혁신이 거의 불가능하다. 그런데 그러려면 면 단위 행정기구를 공무원에서 다른 뭔가로 대체한다든지, 공무원 숫자를 절반으로 줄이고, 공무원과 민간인 사이의 유동적 집단이 많이 존재할 수 있게 한다든지, 등의 정치적 결단 혹은 보다 큰 사회적 의사결정이 필요하다.’ 207
04 소셜 라이프와 도시성/장소성 – 공간이 그 안에서 삶들이 교환되고 살아내면 ‘장소’가 되는 것이라면 이야기가 담기는 과정처럼 삶의 희노애락과 갈등이 담길 것이다...‘오히려 상처 받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아무리 거세도, 내부에 어떤 마을을 만들고 싶은가에 대한 비전, 그 궁극적 목표를 위해 함께 만든 규칙들 등이 있다면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는 문제다.’ 소셜 라이프는 하나의 생태계이다. 백수 같으면서도 뭘 좀 아는 대도 있어야 하고, 사회적인 거 고민하면서도 개인적으로 아주 리버럴한 애도 있어야 할 테고, 돈 있는 투자자도 있어야 하고, 그렇게 섞이는 게 마땅하다 208-209 삶을 매뉴얼화하는 옳다/그르다의 이분법에서 ‘서로 다르다’는 연속체 상의 어떤 지점으로 옮겨져야 한다. 자기 삶이나 주변 삶에 대해 느끼고 살필 수 있는 여백을 가지고, 서로서로가 이런 여백들을 품어주고 인정해주는 것이 궁극적인 모습이다....210 전주 남부시장, ‘적당히 벌어 잘 살자’가 지향하는 가치를 공유한다면 삶의 연속성으로 인해 100세 시대 한달 100만원으로도 노후가 보장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수혜나 도움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의 창발성, 자율성과 훨씬 긴밀하게 관련되는 문제다. 212
05 지역혁신 – 사회적 경제, 사회적 기업, 사회혁신 등을 거론하는데 결국에는 기업도, 경제도, 지역도 핵심이 아니라는 거다. ‘삶을 같이해 나가면서 혁신이라는 게 만들어진다.’ 그것을 바탕으로 사회적이라는 하이폰이 붙어야 하는 것이다. ...기존 활동가가 이슈나, 신념, 지배적 가치 중심이었다면, 좀 더 크리에이티브해져야 한다. 즉 현장도 읽을 수 있어야 하고, 현장과 매개될 상황들이 뭘까에 대한 연출자로서의 고민에도 익숙해야 한다. 삶을 총체적으로 바라보고, 그런 생각의 틀 속에서 수를 둘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창조적 에너지를 염두에 두되, 사람들과의 갈등, 봉합, 공감, 확장, 그런 과정을 어떻게 거칠 것인지를 고민하며 풀어놓는 게 관건이 된다고 본다. 215-216
지역의 주체적 삶은 존재하는가? 단지 그곳에서 살뿐인가? .....어쨌든 “지역은 없다”라는 진단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혁신은 메카니즘에 관한 것이고, 에너지에 대한 발상이자, 새로운 파격 혹은 욕망의 분출구를 마련하는 작업인데, 노무현정권의 혁신은 그 이름을 내걸고 단순한 토목적 발상, 양적으로만 그쳤다. 217
지역의 재구성 이전에 ‘지역의 재발견’이 있어야 함을 얘기한다. 지역의 재발견은 주민들에게 무언가를 할 수 있도록 장을 깔아주는 것이다. “어 우리 동네에 이런 것도 있었네?” “이런 사람들도 있었구나···” 그런 발견이 이뤄지도록 말이다. 220
홍대의 놀이터 쓰임새에 대한 경험을 두고 삶의 결이 나아가는 방향성이 행정이 어떻게 쫓아가야 할지에 대해 많은 시사점을 준다고 해석한다. 일상을 뒤짚는 행정, 또 일상이 스며 있는 삶의 결을 잘 쫓아가는 행정, 이 둘이 서로 잘 조화를 이뤄야 한다는 지적이다. 223
책이나 텍스트를 읽듯 지역을 읽는 것도 필요한데, 즉 연구하고 답사하는 것도 좋은데, 어떤 행위에서 교환되는 에너지의 경험들을 읽어내는 것도 지역을 읽는 데서 계속 주목해야 할 프로그램이라는 것이다. 224
볕뉘.
1. 홍대, 인사동, 북촌한옥마을, 전주 한옥마을,전주남부시장, 문래동예술촌, 옥상텃밭 또 다른 중심을 만들어버린 기획자들 3인방의 이야기를 잘 풀어낸 글이다. 실패의 경험이라고 한다.하지만 그 좋은 말들 가운데 한마디만 거들고 싶기도 하다. 지역에 또 다른 서울을 만들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이질적이면서도 다기한 있는 삶들, 살아가는 결들을 섞으려 선주민들의 삶을 기획 속에 넣으려고 한 것인지. 홍대에는 홍대동네사람이, 북촌에는 북촌동네사람이, 전주에는 토박이들의 안부는 어떠한지 묻고 싶다. 또 다른 중심으로 욕망하는 순간 전국에 있는 사람들은 쏟아지지만...그곳의 삶의 결은 읽힐 수 없는 것은 아닐까? 높아지려는 것이 아니라 퍼지거나 번지려는 기획이 가슴 속에 들어앉아 있는 것인가?어쩌면 자랑삼아 하는 또 다른 실패 소식을 들어야 할지도 모른다는 우려도 든다. 곳곳에 새길 말들은 많지만 3인방의 삶 속에는 지역이 머릿 속에만 모시고 있는 것은 아닐까라는 물음이 우문이길 바란다.
2. 용어들은 왜 이리 어려운겐지. 쉬운 말들을 알면서도 이리 쓴 것도 봐주고 싶지 않다는 말을 거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