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크스는 말년에 동료인 프리드리히 엥겔스에게 보낸 편지에서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나는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니라는 사실이네.”라고 고백한 바 있다. 50

 

1845, 마르크스는 이렇게 주장했다. “지금까지 철학자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세계를 해석해왔을 뿐이다. 중요한 것은 세계를 변화시키는 일이다.” 50

 

독일 이데올로기에서 자본주의를 대체할 대안적 용어를 제안한다. ‘공산주의는 지금까지의 생산과 유통의 모든 관계를 기초부터 전복한다는 점에서 이전의 활동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무엇보다 공산주의는 인간의 창조성을 기본 전제로 삼는다. 따라서 그것은 필수적으로 경제에 바탕한 조직이다.’ 52

 

제임슨에 따르면, 문화는 단순한 오인이상의 것이다. 문화는 이데올로기라는 말과 함께 고려되어야 하며, ‘불안정한 존재와 불확실한 상황을 유지하고자 하는 억압적 힘으로 인식되어야 한다. 57

 

알튀세르

 

이 도식은 다양한 방향으로 가지를 뻗으며, 문화나 법률 같은 사회적 측면이 경제에 의해 일방적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조직 혹은 구조의 일반적 법칙과 관계된 채 어떻게 준자율적이게 되는지를 보여준다....이러한 구조개념이야말로 이론적 혁명이라 부를 수 있을, 알튀세르주의의 이해할 수 없을 만큼 폭발적인 영향력과 지위 향상을 이해할 수 있게해준다고 단언한다. 알튀세르주의는 철학에서 정치학, 인류학, 법학, 경제학, 문화 연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강력하고 도전적인 새로운 흐름을 창출해왔다. 72

 

달의 뒷면을 보게하는변증법

 

마르크스주의와 형식의 아도르노 관련 장에서, 제임슨은 변증법이 무엇인지 설명한다. ‘변증법이란 바로 이처럼 분리된 추상적 부분들보다 구체적인 총체성을 선호하는 방법이다.’

 

변증법적 사유란 제곱된 사유, 즉 사유 자체에 대한 사고로서, 정신은 대상이 되는 자료뿐만이 아니라 자신의 사고 과정도 다루어야 한다.’ 더 나아가 변증법적 방법은 사막처럼 황폐화된 현대사회에서 벗어날 수 있는 탈출구를 제공한다. 102

 

사유는 자신의 고유한 법칙성 속에 머무르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사유는 자신을 포기하지 않고도 자신을 거역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 변증법에대한 정의가 만약 가능하다면 이런 식으로 정의해볼 수는 있다.’ 104

 

변증법은 자본주의적 삶의 동일성이 우리의 사유를 방해한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만든다. 또한 개념의 다른 측면, 즉 달의 뒷면처럼 직접 볼 수도 접근할 수도 없는 개념의 바깥 면을 사유하는 것이다.’

 

세상에 신과 같은 의미의 절대적 진실에 다가갈 수 있는 특별한 방도를 가진 사람은 없다. 제임슨과 나, 독자를 포함한 그 어떤 비평가도 자신을 둘러싼 특정한 문화적·정치적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리고 이 영향은 어떤 식으로든 주어진 쟁점을 그대로 이해할 수 없도록 하는 선입견을 만들어 낸다. 110

 

역사는 일종의 절대적인 것이지만, 절대적 기준이라기보다는 모든 해석을 감싸 안는 수평선 horizon’의 개념에 가깝다.

 

정치적 무의식의 서문은 비평가는 언제나 역사화해야 한다문제와 관련돼 있다. 어떤 비평가도 역사가 동시대의 문학을 틀짓는 방식을 무시할 수 없다. 이것은 셰익스피어의 희곡을 다룬 제임슨의 비평이 16세기말 17세기 초의 역사적 상황에 대한 이해를 수반한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제임슨은 셰익스피어의 희곡이 내용뿐만 아니라 형식을 통해, 셰익스피어가 살았던 시대의 역사적 실재를 구체화한 것이라고 본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신흥 상인계급이 구체제의 귀족계급의 지위를 대체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사회적·경제적 권력을 둘러싼 두 계급 사이의 투쟁을 구체화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투쟁은 셰익스피어가 쓴 희곡 속에 현전한다. 단순희 희곡 속에 등장하는 용어나 표면적 내용이 아니라 텍스트 속에 깊이 숨겨진, 제임슨이 정치적 무의식을 통해서 말이다. 113

 

프로이트와 라캉

 

프로이트는 기본적으로 개인에 집중했으며, 특히 어머니·아버지 등 제한적인 관계에 흥미를 보였다. 반면 마르크스는 개인이 사회 전체와 맺는 관계를 연구했다. 120

 

70-80년대의 변화 속에서도 여전히 중요성을 잃지 않은 계획을 제임슨이 실행에 옮겼기 때문이다. , 제임슨은 마르크스와 프로이트를, 정치학과 정신분석학을, 집단과 개인을 연결지으려는, 한창 논쟁 중인 이론적 틀을 선보였다...이를 제임슨의 용어로 표현하자면, ‘주인-서사 master-narratives’가 될 것이다. 123

 

제임슨은 비평가로서 내내 자본주의적 일상의 명백한 표층 밑에 감추어진 무언가를 발견하는 일에 매혹되었으며, 문화적 텍스트야말로 그처럼 심층에 감추어진 무의식적 실재로 다가가는 가장 확신한 통로라고 확신했다. 128

 

프로이트는 꿈을 꾼 사람이 기억하는 (명시적) 내용과 분석으로써 얻어지는 (내포적) 내용을 구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129

 

억압 개념은 그 단어가 던지는 인상처럼 결코 그렇게 극적이지 않다. 정신분석 이론에서 인성이 미치는 억압의 기원이나 효과가 무엇이건 간에 그 증상과 기제는 폭력적인 것과는 정반대이며, 단순한 회의, 망각, 무시, 흥미를 잃어버림 등이 반응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억압은 반영적인데, 의식 내에서 특정한 대상을 제거할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 그 억압의 흔적 자체를 억압하려는 의도라는 바로 그 생각 자체를 억압한다. 이것이 바로 좀 전에 제기했듯, 지루함이 유용한 해석학적 도구로 사용될 수 있는 이유이다. 133

 

프로이트의 의식 모델은 신경증 환자를 치료하는 과정에서 고안된 것이며, 그러한 치료에 사용되었다....환자들은 종종 악몽, 비합리적 폭력, 신경증적 강박 등의 명백한 신경증적 혹은 정신적 쇠약의 징후들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아프지 않으며 잘못된 것은 전혀 없다고 강하게 부인한다. 제임슨의 마르크스주의적 관점에서 보자면, 이것은 보편적 자본주의 사회의 모습이다. 자본주의는 널리 확산되는 가난과 억압, 불행 등 명백한 병리적 징후들에도 불구하고 건강한 상태를 유지하는 것으로 간주된다. 마르크즈주의 비평가는 현대사회의 고통스러운 문제들이 잠재되고 억압된 지점을 찾아내어 그것을 치료할 수 있어야 한다. 135

 

라캉에 따르면, 에고가 존재한다는 식으로 이야기해서는 안 된다. 의미화 과정을 거쳐 에고가 존재하게 되었다고 말해야 한다. 라캉에게 사람이 되는 것은 언어를 배우는 것과 유사하다. 138 ‘무의식은 언어처럼 구조화되어 있다.“ 상상계 Imaginary’, ‘상징계 Symbolic’, ‘실재 Real’라고 부른다. 139

 

세상에 나온 이후에도 아이는 여전히 실재적 세계를 깨닫지 못한 채 자신만의 개념적 세계 속에 살며 어디서부터가 자신이고 어디서부터가 엄마의 가슴인지를 전혀 분절하지 못하다가, 차츰 경험이 예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분절된다는 것을 알게 된다....라캉의 이론에 다르면, 모든 어른의 욕망은 일종의 결핍을 반영하고, 모든 결핍은 기본적으로 이러한 분절로 일체감의 기쁨이 깨지는 유아기 결핍의 아픔에서 유래한다....거울단계는 생후 6개월에서 18개월 사이의 인간 발달 단계를 일컫는다...나중에 아이가 성장하여 언어를 파악하게 되면, 의식은 다음 단계인 상징계로 이동한다...상징계는 문학 같은 문화가 발생하는 장소이며, 개인적 주체가 라는 자아 의식을 발달시키는 장소이다...궁극적으로 언어가 우리를 구성한다는 것이다. 언어가 없다면 에고의 발달도, 자아 의식도 불가능하다....개인은 타자를 욕망하지만 결코 실제적 만족을 얻을 수 없다...욕망은 고정된 의미(실체)에 대한 추구인데, 그 과정에서 욕망의 대상은 계속해서 특정 개인이나 물질적 소유 등의 기표로 미끄러진다...140-144

 

제임슨 같은 비평가에게 라캉은 주체를 육체의 성장과 함께 자연스럽게 동반 성장하는 유기체가 아니라 끊임없이 기입되고 재기입되는, 잦은 의미 변환을 겪고 손쉽게 깨질 수 있는 텍스트에 가깝다고 본다는 점이다... 또한 부드러우며 다루기 쉬운 통합적 정체성이라는 관점을 버리고, 대신 의미들의 갈등과 대립이라는 측면에서 주체를 바라보는 라캉적 견해는 가족·사회·문화 등이 인간을 구성하는힘을 날카롭게 풍요롭게 분석할 수 있게 해준다. 제임슨이 라캉에게 이끌리는 또 다른 이유는 실재로서의 역사라는 개념 때문이다. 그것은 직접적으로는 인식할 수 없으며 다만 그것의 상징적(그리고 아마도 상상적) 표상을 통해서만 감지할 수 있는 그런 것이다. 이러한 역사 인식은, 역사는 계급투쟁의 즉작적 반영이라고 간주하는 속류 마르크스주의자들보다 마르크스주의적 핵심 개념을 더 풍부하고 그럴듯하게 분석할 수 있도록 해준다. 145

 

이미지를 붙잡으로써만...이러한 방식으로, 상상계의 투명한 개인적 혹은 정신적 경험의 흔적처럼, 그 흔적은 바다의 이미지를 상징게로 변화시키는 작용을 하게 하는데, 이러한 종류의 비평만이 문학 텍스트와 살아있는 해석학적 관계를 회복할 수 있게 한다. 146

 

브레이트, 푸코, 들뢰즈 이러한 비평가들은 상징계를 거의 직접적으로 억압적 힘과 동일시하고, 상상계를 너무 쉽게 혁명적 자유와 동일시 한다. ...제임슨이 좋아하는 접근 방식은 이 문제에 좀 더 마르크스주의적이고 변증법적으로 다가가는 것이다. 이를 위해 그는 라캉의 실재 개념으로 되돌아오며, 마르크스주의적 결정론을 적용한다. ‘오직 실재만이 앞서 언급한 라캉의 두 체계가 계속해서 빠져온 함정을 극복하고, 상상계적 저항에 다다를 수 있다.’ 147

 

라캉에게 실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아내기란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것은 역사이다. 만일 정신분석가라면 여기서의 역사는 명백히 주체의 개인사에 해당할 것이다...제임슨에게 역사는 모든 올바른 비평이 기반으로 삼아야 할 기준점이다....비평적 분석은 그것이 정신분석학적이든 정치적이든지 간에, 우리 자신의 역사서사들 사이에서 실재를 구별해내는 과정을 거쳐야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그러한 실재는 우리의 서사가, 사선으로 기울어진 점근선적접근으로만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그리고 상징화에 절대적으로 저항하는그 무엇을 가리킨다. 148

 

19세기 리얼리즘의 서사 형식 배후에는 산업화의 부흥이 위치하며, 모더니즘의 형식 뒤에는 19세기말과 20세기 초에 걸친 제국주의적 자본주의가, 현대의 포스트모더니즘뒤에는 탈산업적 자본주의가 역사적 실재로 자리한다는 것이다. 149

 

프랑크푸르트 학파가 프로이트와 마르크스를 연결하려고 노력한 점은 인정하지만, 제임슨이 보기에 그것은 억압받고 상처받은 주체를 단순히 자본주의의 역동성 및 교환 과정이 낳은 직접적이고 즉각적인 폐해로 간주하는’, ‘일종의 사회심리학적 보충에 불과하다. 151

 

정치적 무의식

 

제임슨은 텍스트를 신경증 환자처럼 다룰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텍스트의 표면적 의미를 반드시 지시 대상이 되는 중요 사물에 의존하여 해석할 필요는 없으며, 오히려 표층 아래에서 진행되는 것과 관련하여 해석해야 한다는 것이다. 텍스트의 징후에 주목함으로써 비평가는 무의식적 실재에 다가갈 수 있다. ....‘표증에 드러나는 표면적 서사는 역사와 상호관련을 맺으며 텍스트의 무의식적 실재를 매개한다.“ 160-161

 

언제나 역사화하라! 모든 변증법적 사고의 상호역사적혹은 심지어 절대적이라고까지 말할 수 있는 의무인 이러한 슬로건은, 또한 정치적 무의식의 윤리이기도 하다....

 

 

셰익스피어의 연애시가 실제로는 역사를 다루고 있다는 사실은 텍스트의 표면이 아니라 무의식을 통해 드러나며, 따라서 이는 주의 깊은 비평가가 밝혀야 할 성질의 것이다....제임슨에게 매개는 예술 작품의 형식 분석과 그것의 사회적 기반, 혹은 정치체제의 내적 역동성과 그 경제적 토대 사이의 관계를 구축하게 해주는 고전적 변증법의 용어를 일컫는 것이다. 163 제임슨의 변증법적 매개는 단순히 특정 문학 텍스트의 독해 방식에만 머물지 않는다. 그에게 마르크스주의 비평그 자체는, 이미 한편으로 굴절되고 파편화된 개인들의 사회 인식과, 다른 한편으로 사회적 총체성인 실재 사이를 매개하는 가장 적절한 방식인 것이다......

 

리얼리즘이 아닌 작품들은 현실도피적이라고 비난받기 십상이었다...표층에서는 명백히 현실도피적이라 하더라도, 무의식 측면에서는 사회적·경제적 실재가 구체적으로 반영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제임슨은 마르크스주의와 로망스를 결합시키는 것은 마르크스주의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로망스의 지속성과 생명력을 마르크스주의로 설명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172-4 마술적 서사:장르비평의 변증법적 활용에서

 

장르는 필연적으로 사회-상징적 메시지다.다시 말해서, 형식은 내재적으로 그리고 본질적으로 당연히 이데올로기다.’ 비평가는 주어진 텍스트의 실질과 형식이 그 텍스트의 사회적·경제적 결정 요소들과, 즉 텍스트를 틀짓는 역사적 조건과 상호작용하는 방식을 이해해야 한다. 또한 형식이나 내용상의 일탈이 정치적 무의식 내의 불안을 반영하는 방식에도 주목해야 한다. 183

 

토대가 상부구조를 결정한다는 식의 단순 모형이 아니라, 더 알튀세르적 모형화에 가까운, 모든 이데올로기적 국면들의 상호작용에 관한 좀 더 복합적인 인식이다..제임슨의 말처럼, ‘모든 방법론은 텍스트의 형식에서 출발하여 텍스트와 실질 간의 상호작용쪽으로 진행되며, 보충적 용어를 통해 자신을 완성한다.’ 187

 

발자크

 

그 시대는 부르주아적 주체 및 거대한 사물화의 전능한 효과가 완전히 구축되기 이전에 위치한다. 그 시대에는 욕망, 탈중심화된 주체, 일종의 열린 역사가 상호 공존했다......‘상상적 관계에는 지역 유지이자 토리당 당원인 발자크 자신의 관점이 들어가 있을 뿐만 아니라, 귀족 계급 엘리트들의 이데올로기적 대변인으로 기능하며 갖게 된 그의 영향력이 자연스럽게 담겼다는 것이다. 189-190

 

모더니즘과 우화

 

유토피아적 사고가 위험한 이유는, 그것이 획일화와 순응주의를 조장하기 때문이다. 유토피아는 모든 사람이 동일한 방식으로 행복을 느끼고, 누구도 튀지 않기 때문에 서로 놀랄 만큼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곳으로 간주된다...., 반사회적 사고를 전적으로 몰아낸 세계는 완전한 억압으로 정의되는 세계이다. 219

 

포스트모더니즘, 혹은 후기 자본주의 문화 논리

 

이전의 이론가들이 포스트모던한 시나 예술 혹은 건축물을 하나의 또는 일련의 스타일로 보았다면, 제임슨은 처음으로 포스트모더니즘을 사회정치적인 환경, 즉 역사에 결부시켰다. 226

 

포스트모더니즘의 근본적 특징은 심미적인 동시에 정치적인 것이라고 주장한다. 241

 

우리가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문화 내부에 살기 때문에, 그것을 무턱대고 찬미하는 것이 자족적이거나 퇴폐적인 만큼 그것을 가볍게 부인하는 것 또한 불가능하다는 사실이다. 오늘날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이데올로기적인 판단은 필수적으로....우리가 만들어낸 가공품들에 대한 판단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에 대한 판단까지도 내포한다. 243

 

 

제임슨은 포스트모더니즘이 공적인 역사와 우리가 맺는 관계뿐만 아니라, 우리의 사적인 시간성의 새로운 형태들에도 나타나는 역사성의 빈곤영상이나 환영 등의 아주 새로운 문화와 동시대의 이론에까지 확장된 새로운 형태의 깊이 없음을 특징으로 한다고 보았다. 247

 

포스트모던적 주체는 이전과 마찬가지로 사회적 환경으로 결정되었다. 그러므로 그것은 필연적으로 후기 자본주의가 점차 구체화되고 파편화되는 양상을 반영했다. 제임슨은 우리가 통합된 자아-구성이라는 의미를 갖는 부르주아적인 자아의 종말을 목격하는 중이라고 말한다. 이제 사람들의 고유한 주체성이 탈중심화되거나 탈고정화된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이처럼 중심화된 주체에서의 해방은 불안에서의 해방일 뿐만 아니라, 온갖 종류의 느낌에서도 해방된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왜냐하면 감정을 느낄 자아가 더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248

 

제임슨이 정서의 퇴조라고 부른, 정서적인 내용물이 사라지는 현상이 매우 일반화된 사실이다. 포스트모던 예술은 유행처럼 모든 정서에서 이탈하는 아이러니와 냉소주의가 특징이다. 이러한 현상이 발생하는 이유는, 정서를 느끼기에 적합한 종류의 주체가 사라지기 때문이다....폭력적이고 노골적인 성적 표현이 난무하는 영화를 보면서도 어느 것에도 동요하지 않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우리는 발화 양식에서도 우리 자신의 감정에서 소외되었다. 움베르트 에코가 말했듯, 이제는 이제는 나를 미치도록 사랑해같은 표현을 직접 얼굴을 마주하고 이야기하는 것이 불가능해졌다....나 대신 다른 누군가가 말하게 만들어야 할 필요가 생겼다....혼성모방은 공허한 패러디, 보이지 않은 눈동자를 지닌 동상이 된다.....우리는 새로운 종류의 지루함이나 깊이 없음, 문자 그대로의 피상성의 출현을 목격한다. 아마도 이것이 모든 포스트모더니즘이 지닌 형식상의 최고 특징일 것이다....사람들은 각자 좋아하는 스타일 속에 거주할 뿐, 실제 역사의식을 갖지는 않는다.. 건축도 용적이나 부피없음을 느끼는 3차원적 경험을 포스트모던 그림과 문학을 설명할 때 사용한 깊이의 억압과 동일한 현상으로 여긴다. , 깊이 없음과 정서의 퇴조가 구체화되어 드러난다는 것이다. 252-262

 

제임슨과 영화 보이는 것의 날인, 지정학적 미학

 

의문에 싸인 총체성은 후기 자본주의의 전 지구적 확산에 대한 부정이다. 278

 

음모적 텍스트는 명시적이건 암시적이건 간에, 은폐와 관료적 비인간성 때문에 우리의 혐오감이 최고조에 달한 20세기 후반에 우리가 직면한 권력과 눈앞에 펼쳐진 광경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리고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밝히려고 노력하는 무의식적이고 집단적인 노력으로 간주되어야 한다. 280

 

인식의 지도 그리기는 주체가 자신의 존재 조건인 실재와 맺는 상상적 관계라고 하는 알튀세르적(그리고 라캉적) 이데올로기 정의를 이해할 수 잇게 한다. 일상생활 속에서 인식의 지도 그리기가 수행하는 작업은 정확히 이러한 작업이다. 281 인식의 지도 그리기는 개인적인 것과 사회적인 것 간의 교차점으로 작용한다.’....‘우리는 매일 동료들을 계급용어로 지도화하며, 최근의 사건들은 신화적 서사로써 이해한다...앞으로 내가 할 작업을 지정학적 무의식이라 부르겠다. 이것은 우리의 새로운 세계 내 존재를 이해하고자 국가적 알레고리를 새로운 개념적 도구로 수정하려는 시도이다. 282-283

 

포스트모더니티 혹은 후기 자본주의 시대라 불리는 위기의 시대에 우리가 지닌 가장 긴급한 책무는, 도전받지 않는 절대적 지배력을 행사하는 경제 형식에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다. 예컨대 고전적이고 전통적인 마르크스주의적 흐름에서는 부차적인 역할에 그쳤던 사물화와 상품화에 대한 문제제기가 이제는 더욱 중요한 지위에 올라, 우리의 분석과 투쟁의 가장 지배적인 책무가 된 것이다. 286

 

볕뉘. 저작을 바로 볼까 망설이다가 소개서를 먼저 본다. 마지막장 부근이 집중도가 떨어지는 것 같지만 전체적으로 양호한 듯싶다.  참고 삼아 텍스트를 번갈아 보고 있다. 총체성과 전체성 여러부분들이 겹쳐 읽힌다. 정리할 시간이 없었는데 이렇게 밑줄의 흔적을 남겨둔다. 밖은 흐리고 추위까지 덤으로 온 듯하다. 사월은 비와 슬픔이다. 잎새의 달이 아니라 애도의 달이라 더 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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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차이가 거리를 유지하는 힘을 잃지 않은 채 관계적이 되는 방식으로 생각하거나 인식하라
    from 木筆 2015-04-21 16:09 
    ‘차이가 거리를 유지하는 힘을 잃지 않은 채 관계적이 되는 방식으로 생각하거나 인식하라’는 하나의 정언 명령이 됩니다. ..낙인찍힌 개념들의 목록 중 총체성과 총체화라는 단어들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됩니다. 65 사회적 관계가 사물들 사이의 관계로 느껴지게 되었다는 맑스의 용어보다 훨씬 더 광범위한 범주이자 특히 루카치의 베버적 유산과 본격 맑스주의적 유산의 어떤 종합의 지점으로 해석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말은 근본적으로 전문화, 노동분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