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7 - 삶이 아니라 왜 삶들인가

 

 

1.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물음은 제한적이다.

2. 지평이 달라지는 일들을 해석학에서 말한다.입장차이에 따라 그 생각과 심연의 그늘은 넓고 깊다. 피해의식의 하늘에선 신뢰의 볕 한톨도 제대로 맛볼 수 없다. 계층의 높은 문턱 위에서는 그 삶의 밖 신음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악다구니 속에서는 구름위의 볕이 보이지 않는다.

3. 인식의 지평은 어쩌면 처지의 능선을 오르내리면서 확장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삶은 정상상태란 기준의 성공만 추구하므로 그 보다 낮은 수면아래는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간주한다.

4. 실무의 고통을 느끼지 않고는 실무를 건지는 기획이 나오지 않는다. 더딘 걸음 아픈 걸음의 속도를 상상(경험)하지 않고는 그 속력를 설계할 수 없다.

5. 삶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삶들을 섞지 않고 새 삶이 나올 수 없다.

6. 삶을 의심하고 싶다. 인문은 책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단한번인 삶, 아니 삶들 속에 있다. 내 삶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모자라도 그저 그만한 삶 만큼만 인문은 살아내는 것이다. 헤아리는 것이 아니라 부족한 한계만큼 살아내는 것일지도 ᆞᆞ

6.1 인문은 결코 잊혀질 수 없다. 병들고 아프고 상처가 나도 멈추지 않는다. 그래서 정상의 평균이 아니라 더 아프고 힘든 것을 지양해야 한다. 인문은 정상과 평균 과 미래에 살지 않는다.

6.2 인문은 사상과 정신을 추려내는 것이 아니라 그 시대의 삶들을 기억해내어 삶과 삶들을 잇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7. 이런 추상은 개뼈다귀같은 소리다. 잘 살자는 신음소리다. 나나 잘하자. 너나 잘살자.

 

  뱀발. 하루종일 활자를 본다. 눈이 침침하다. 도서관에 들러 대출을 하고, 목련도 올려 보았다. 기억들이 훅훅 지나가는데 생각이 그 기억을 다시 물고 왔다. 또 다른 이가 말을 걸었는데 왜 이제서야 이해되기 시작하는 것일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