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량생산과 인간자동화

 

금전적 이익의 확대를 통한 무제한의권력에서 쾌락적 탐욕까지, 이 권력 복합체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인간의 필요, 규범, 목표에 대해서는 세심한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말해 생태적, 문화적, 개인적 월사막들이 태양풍에 의해 쓸려버리면, 권력 복합체는 가장 잘 작동된다. 229

 

자동화는 단지 동일한 제품이 대량 시장에서 더 쿤 아윤울 넘가도록 팔리는 것을 가능케 한다. 자동화된 빵 제조의 증가는 수천 명의 지방 제빵업자를 몰아냈다. 그러나 그 결과는 더 싼 빵도, 더 우수한 품질의 빵도 아니었다. 자동화가 이룩한 것은 지방 에너지 경제를 장거리 수송, 높은 임금과 이윤, 그리고 공장 확대에 더 많은 투자가 이루어지도록 한 것이었다. 이러한 마술이 희망했던 보상은 풍요뿐만 아니라 절대적 통제였다. 산업이 충분히 잘 조직된 곳에서는, 결과는 이러한 대규모 통제 체계를 가짜 민주주의 자치정부 아래에서 노동조합까지 확대하는 것이었다. 242

 

자동 통제가 한번 구축된면, 어던 누구도 자동 통제의 지시를 받아들이거나 새로운 지시를 삽입하는 것을 거부할 수 없다. 이론적으로 기계는 그 자신의 완전한 기준에서 어는 누구도 이탈하는 것을 허용할 수 없다. 이것은 모든 자동 체계에서 가장 급격한 결점이 된다. 자동 시스템의 원활한 작동을 위해, 규격에 맞는 체계는 규격에 맞는 인간을 똑같이 필요로 한다. 그 사람의 가치는 작동과 시스템 자체의 확대를 계속하기 위해 필요하다. 조건이 주어진 마음은 어떤 다른 방도를 생각할 수 없다. 자동화를 선택했을 때, 자동화는 모든 주관적인 반응을 업신여기고 인간의 자율성-또는 체계의 특정 한계를 받아들이지 않는 어떤 유기적 관정 을 완전히 없애는 데 기여한다. 249

 

인간성에 대한 억압은 이미 자동화된 경제에서 완벽하다. 거대 조직의 우두머리는 가장 낮은 문서 정리원과 마찬가지로 조직의 목표를 변경시킬 수 없다. 한번 구축되면, 질서를 부여하는 것은 시스템 그 자체다. 모든 사람들이 직면하는 것으로, 자동화의 기관들은, 프란츠 카프카가 그의 정확한 예언적 악몽인 [심판]에서 그린 권위만큼 모호하고 얻기 어렵다. 인간적으로 말하면, 자동화의 적절한 이름은 자초된 무기력이다. ‘전체 통제의 다른 측면이다. 250

 

기술의 핵심 문제는 재진술되어야 한다. 창조된 인류는 인류 자신의 속성을 충분히 통제할 정도로 이해할 수 있어야 하며, 억제할 필요가 있을 때, 세력과 메커니즘이 있어야 한다. 어떠한 자동 경보 시스템도 우리를 위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그러나 이 강압적인 고취의 기초를 발견하기 위해 가장 깊은 곳을 더 깊이 파야 한다.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물어야 한다. 왜 모든 허가가 강제로 바뀌었는가? 왜 권력 지향적인 사회의 비미코토가 당신은 할 수 있으므로 해도 된다가 아니고 당신은 해도 되니까로 바뀌었는가? 그것은 과학이 약속한 자유인가? 이러한 과학결정론의 표면 아래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은 더 죄스러운 모습이다. 그것은 주관적으로 지어진 원초적 운명주의다. 254

 

인간을 직접 통제하는 영역으로의 컴퓨터 작동 확대에 따른 집단적인 결과-많은 경우 사회적으로 파괴적인데-를 새로운 거대기계를 시험하는 시기에 다룰 것이다. 여기서는 기계시계와 함께 시작된 공정이 가져다준 결론에 대해 즉각적인 영향만을 고려한다. 깨달아야 할 중요한 것은 자동화가 최종적으로는 기계적 공정 자체뿐만 아니라 기계적 공정을 지배하는 인간도 통제하려는 시도라는 것이다. 인간을 능동적인 주체에서 수동적인 주체로 바꾸는 것, 그리고 마침내 인간을 모조리 제거하는 것이다. 256

 

인간 능력을 확장시키기 위해 기계를 사용하는 것과, 인간 기능들을 축소시키고 제거하고 대체하기 위해 기계를 사용하는 것 같에는 차이점이 있다. 첫 번쩨 방법에서 인간은 여전히 자신을 위해 권위를 행사한다 두 번째 방법에서는 기계가 일을 떠맡고 인간은 임시 고용원이 된다. 이는 버클러로 하여금 그가 열렬히 피해왔던 문제를 다시 거론하게 했다. 즉 인간의 창조물인 기계에 대한 인간의 통제를 회복하고 확립시키기 위해 반드시 요구되는 변화는 무엇인지에 대한 의문이다.....과학과 기술에서 오는날 모든 대부분의 진보적인사고는 인간의 구성 요소로서 기계를 더욱 살찌우는 방향으로 향해 있다. 그리고 만약 이 같은 과정이 무한히 지속되면 인간의 삶에서 남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관심은 없다. 264-265

 

사물을 뒤집어 보라! 옹기장이가 진흙에 의해 판단되어야 하는가? 작품이 작자에게 말한다. 그는 나를 만들지 않았다. 만들어진 것이 그것을 만든 사람에게 말한다. 그는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한다?”

 

볕뉘.  책갈피 해놓은 것은 20여일이 지난 지금에서야 옮겨놓는다.  언과 시슬로 아직도 불편하다. 모셔진 과학기술은 생각을 얽어매여 벗어날 줄 모른다. 모든 것이 신으로 통하듯이 모든 일이 과학기술로 답을 구하고 해결을 요구하는 습속은 그치지를 않는다.  발라낸 과학기술이 아니라 붙어있는 사람과 사회로 느끼는 훈련이 되지 않느면 영원한 속박에서 헤어날 길이 없다. 식량문제와 세상의 굶주림과 노동시간 단축을 약속하던 해방의 무기인 과학기술이 일자리와 생명과 삶을 호시탐탐 노리는 애물단지로 전락하고만 시점이다. 애초의 초심과 '처음으로 돌아가라'란 인문의 처럼을 되짚지 않으면 이미 죽어버린, 괴물이 되어버린 과학기술을 살릴 길조차 없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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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즉각적인 정보는 즉각적인 위기를 부른다
    from 木筆 2015-02-05 12:59 
    공상과학소설 같은 진보 하비 윌러가 언급한 대로 “즉각적인 정보는 즉각적인 위기를 부른다” 이 실질적인 승리가 공상 자체를 공상의 희생자들에게 더 혼란스럽게 만든다. 즉 인류의 일부분이 공상에 의해 위험해지고 노예화되었다. 인류 역사에 유례없는 상황이다. 과거에는 모든 발명이 그것의 공상에서 최초 등장과, 구성과 발명의 중간 단계 그리고 작동 장치나 기계로서의 최종 물질화 사이에서 오랜 검증 기간을 거쳤다. 종종 필수적인 도구나 중간재가 우선 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