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너'의 고민을 듣고 싶어하지 않는다.

 

 

'나'의 고민을 말하고 싶을 뿐이다. 그렇게 대부분 시간이 지나도 '고민'은 자라지 않는다.  그때 한 이야기나, 그때 사로잡힌 고민에서 맴돌아 벗어나지 못한다. '너'에 귀기울이지 못하고, '너'로 향하고 있지 않으니 늘 잘나간 '한때'에 머물러있다. '나'를 푸념하고 싶기만 하다.  고민도 일상도 삶마저 저당잡혀있다. 그래서 아무 것도 줄 수도 나눌 수 없다. 너에게 가는 길은 보이지 않는다. 또 너에게 귀기울이고 몇년전에 했던 얘기를 또 기억해내야 하고, 십년도 더 우려먹던 이야기를 챙겨줘야 한다. 너에게 마음을 기울인다. 쫑긋 너로 빨려들어가고 싶다. '한때'에 사로잡힌 쇠스랑을 끊어주고 싶다. '나'의 우울도 '너'의 우울도 이해하지만 '과거'를 사는 '너'가 더 자라지 않으려는 것을 보면 때로 분노가 치민다. 앎도 지혜도 삶도 아무것도 소화시키지 못해  머리만, 몸만커져 남보다 낫다는 '너'를 끊고 싶다.

 

'너'는 오늘도 너'만' 말하고 싶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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