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라르메의 시를 읽는다는 것은, 어떤 능력의 습득을 전제로 한다. 그 능력이란 어떤 숙달된 기술을 갖게 하여, 이를 통해 어떤 권리를 가질 수 있게 해주는 능력을 말한다. 또한 모든 반론을 제거하고 축소하는 제도에 [아니다!]라고 맞설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또한 우리를 옭아매어 꼼짝 못하게 하기 위해서 고의적으로 만들어낸 말들이 가지고 있는 위험을 고발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그러나 대중들은 모으고 더욱 복종시키기 위해서, 권력을 가진 자들은 사고하는 데 필요한 힘들고 위험한 연습을 하지 못하도록 우리의 의식구조를 다른 곳으로 돌린다. 그리고 대중들은 더욱 손쉽게 다루기 위해서 문제의 정확성에 접근하지 못하게 하며, 연구하지도 못하게 한다. 133 기관총은 방정식은 그대로 두고 식에 사용된 항만 바꾸는 일이다. 말라르메는 기관총이다.


다소 느리고 노골적으로, 비극적으로 막다른 골목을 향해 가고 있는 제도들은, 말라르메의 시를 읽는 눈에 띄지 않는 독자들이 많을수록 더욱 위협을 느낄 것이고, 그들의 지배력도 그만큼 제한을 받게 될 것이다. 권력층은 그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에, 그 문제에 관한 한 실패하는 법이 없다. 그들은 어디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지를 아주 잘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독재체재가 강요된다면, 그들이 우선 본능적으로 찾아내서 추방하거나 제거하는 대상은 바로 말라르메의 독자일 것이다. 이들을 지지하는 자들이 아무리 적다고 해도 말이다. 131


사고만큼 모든 것을 전복시킬 수 있는 행동은 없다. 사고보다 더 두려움을 줄 수 있는 것도 없다. 또한 그보다 더 부끄러운 것도 없는데, 이 사실은 결코 대수롭지 않게 넘길 일이 아니다. 사고한다는 것은 정치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정치적인 사고만 그런 것이 아니다. 사고한다는 그 [행동] 자체가 정치적인것이다. 오늘날에는 그 어느때보다 사고하지 못하게 하고, 사고하는 능력을 갖지 못하게 하려는 음모가 은밀하게 번지고 있다. 그리고 은밀한 만큼 더 큰 효과를 얻고 있다.  127


먼저 사고란 엄격한 것, 까다로운 것, 진저리나는 것, 맥빠지는 것, 엘리트만의 것, 사람을 마비시키는 것, 그리고 끝없이 권태로운 것이라고 표현하는 이 형용사들을 모두 잊어버리는 연습이 우선적으로 필요하다. 126


그들은 호사스럽게 누릴 수 있는 유일한 것, 즉 남아도는 [자유로운] 시간을 과연 무엇으로 메울 수 있을지에 대해서 배운 것이 하나도 없다. 그 시간은 말 그대로 자유로울 수도 있고, 그들을 활동하게 만들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러나 대개는 그들을 숨막히게 하고, 혼란스럽게 만들며, 결국 그들의 적이 되고 만다. 아마도 가장 분노스러운 것은 오늘날에 와서 금지된 가치들, 즉 문화의 가치, 지성의 가치 같은 것을 완전히 압수해 버렸다는 데 있을 것이다. 이는 그 가치들이 그다지 [잘 팔리는 상품]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가치들이, 죽기전에나 볼 수 있는 깊은 혼수상태로 젊은이들을 몰고 가는 이 사회제도를 흔들리게 할 위험 요소들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115


허구적인 해결책이 없어졌을 때, 그때 비로소 우리를 헷갈리게 하지 않는 진정한 문제들을 인식할 기회가 올 것이다. 간교한 허상을 끊고 출발할 때, 그때 비로소 우리가 속해 있는 상황에 접근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때 드디어 그 사건에 조명을 비추고, 확신은 없지만 그래도 그것을 해결해 보려는 시도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적어도 문제가 무엇인지, 특히 피해야 할 함정들이 무엇인지만은 틀림없이 밝혀낼 수 있을 것이다. 바로 여기에서부터, 반드시 여기에서부터 출발해야만 우리의 운명에 대항해서, 또 우리의 운명을 위해서 싸울 수 있다. 그리고 이 운명을 이끌어가는 능력을 얻게 되고, 다시 건강을 되찾는 일도 가능해진다. 비록 그 운명을 겪지 않을 수 없다 할지라도.. 아무리 끔찍한 것이라 할지라도.. 102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것보다 더 절실하게 사느냐 죽느냐의 문제가 달려 있는 최근의 현상들, 즉 노동이 없어졌는데도 아직까지 우리의 삶을 노동이 지배하고 있는 것처럼 속이는 현상들이 이처럼 계속될 때, 엉뚱한 곳에 관심을 두고 있는 우리의 방관적인 태도의 습관은 점점 악화될 것이다. 문제가 잘못 제기되었음을 지적할 것. 피해진 본질적인 질문들을 다시 거론할 것. 가리워진 질문들을 숨김없이 드러내 놓을 것. 더 이상 문제될 것도 아닌데도 의도적으로 중요한 것으로 간주하여 아직까지 거론되고 있는 질문들을 삭제할 것. 이렇게 하는 것만이 눈에 보이지 않아도 본질적이고도 시급한 온갖 질문들을 밝혀낼 수 있게 한다. 101


우리의 삶이 달려 있는 문제 앞에서, 마치 온 몸이 마비된 환자처럼 이렇듯 수동적인 태도로만 머물러 있는 것은 너무 끔찍한 일이 아닌가? 진정으로 우리가 해야 할 질문들 중의 하나는, 과연 우리가 살아남도록 그들의 프로그램 안에 입력되어 있기나 한 것인지, 그것부터 물어보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치는 이런 질문에서 벗어나 있을 뿐만 아니라, 아예 우리가 이런 질문을 하지도 못하게 하고 있다. 100


해결책은 없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해결책이 없다는 것은, 문제가 잘못 제기되었으며, 진짜 문제는 우리가 주목하고 있는 곳이 아닌 다른 곳에 있을 수도 있음을 의미한다....어설픈 해결책이 아니라 처음부터 문제 해결이 불가능할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더라면, 오히려 지금의 상황에 더욱 진지한 관심을 집중하게 되었을 것이다...최소한 해결책이 있다고 믿는 데서 오는 이득에 마음을 빼앗기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99


정치가들은 그 해결책의 인질이 되고 만다. 유권자들은 항상 신속한 해결에 대한 약속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치가들로서는 신빙성 없는 약속일지라도 남발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고, 국민들은 절대로 그 임무를 그들로부터 면제해 주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정치가들은 진짜 근본 문제를 직시하려고 하지 않고, 지엽적인 사소한 문제에만 성급하게 달려들고 있다. 97


아직 일자리를 갖고 있는 사람, 비록 봉급은 얼마 안되지만 그래도 실직을 하지 않고 일을 하러 다니는 사람을 보면, 그를 일종의 특혜자로 여긴다. 남의 이익을 가로챈 자가 바로 그자라고 여기는 것이다. 이 경우, 실직이라는 학대의 사건을 기준으로 보고 있음이 분명하다.....하지만 그들에게 요구하는 연대감을 재산의 분배, 이익의 분배로까지 확장시켜 보는 일은 결코 없다. 왜냐하면 이익의 분배, 재산의 분배가 우리 시대에는 말도 안 되는 것, 생각할 수도 없는 것, 그야말로 돼먹지 않는 생각으로 간주될 것이기 때문이다. 89


길바닥에 나앉는 것이, 어쩌면 우리의 사회제도에 적응하는 것보다 힘이 덜 드는 일인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우리의 제도는 길바닥보다 더 냉랭하니까.... 88


정체를 알 수 없는 두려움이 싹트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두려움을 느끼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공포의 근원이 무엇인지를 모르고 있다. 대개의 경우 그 총체성의 부차적인 결과, 예를 들면 실업문제같은 것만 문제삼을 뿐이지, 총체성을 안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점까지 거슬러 올라가서,그 방식 가지고 있는 지배력을 비난하는 일은 절대로 없다. 그저 운명이라고 받아들일 분이다. 79


하나의 제도를 만드는 데 있어서 국민들로부터 무관심을 얻어냈다는 것은, 부분적인 동의를 얻는 것보다 훨씬 더 큰 승리를 거두었음을 뜻한다. 사실 어떤 체제가 대중적인 동의를 얻게 되는 것은, 다름아닌 대중들의 무관심에 의해서이다....무관심은 무엇보다도 해롭고 불가결한 것인, 권력의 남용과 탈선을 허용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20세기가 바로 그 비극적인 증인이다. 75

 

볕뉘.  글은 답을 주지 않는다. 끊임없이 질문하고 질문한다. 결론 역시 답은 없다. 해결책이 없다는 것을 응시할 때 그것이 지금길일지 모른다고 한다. 심연을 들여다 보는 연습...어쩌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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