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견(애완견)의 시대

 

사람은 사람대접을 받을 수 없다. 사회는 사람을 존중하지 않는다. 사회는 사람을 밀치고, 밀쳐진 사람은 사람과 부딪힌다. 사람은 사람이 싫다. 사회는 사람의 기대를 받아 안지 못한다. 사회는 사람을 뱉어내고, 뱉어낸 사람은 기를 쓰고 사람을 누르고 눌러야지만 사회에 발을 한쪽이라도 담근다. 사회는 가정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다. 가정의 구성원은 가족의 기대에 부합하지 못한다. 사람의 기대는 어김없이 무너진다. 사람은 사람에게 기댈 수 없다. 사람보다 더 사람같아진 반려견은 사람 마음을 읽는다. 버림받고 치인 마음의 상처를 달랜다. 기대를 꿀꺽 삼키지도 않는다.

 

가족독립 국가 또는 1인 독립국가


무릎이 좋지 않아 살찌지 않게 케어한다. 털빛이 좋지 않고 몸에 좋지 않아 유기농을 먹여야 한다. 행여 다치지 않을까 하루 종일 마음 졸인다. 네겐 싼 것을 먹일 수 없다. 애지중지 너에게 빠질 수밖에 없다. 열자식 소용없다. 전부다.

 

노숙자 또는 사람


오늘도 역앞에 길게 줄이 늘어서있다. 초췌한 몰골에 노숙자들은 한끼의 일용한 양식으로 주린 배를 움켜쥔다. 욕설과 싸움, 술, 냄새 난 사람을 좋아할 수 없다. 사람은 사람을 피할 수밖에 없다. 유기농인지 친환경인지 궁금할 수 없다. 끼니를 채울 수 있다는 건만으로 온몸은 순간 따듯해진다.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지 도저히 용납도 되지 않고 용서할 수 없다. 까스통에 불신지옥이라. 누구누구의 부모이나 아버지라는 것이 말이 된다고 생각하는가 어떻게 세상의 쓰레기만 쳐바르고 사는지 만난다는 것이 끔찍스럽다.

 

반려견 또는 애완견


난 문밖에 없다. 난 문안의 식구다. 난 사람이라고도 할 수 있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살면서 대부분을 사람 품을 벗어난 적이 없다. 어떻게 보아도 난 사람이다. 사람의 마음을 받아줄 수 있는 사람이다.

 

 


 

 

사람은 문밖을 나서자 사람마음을 잃어버린다. 사람은 문밖을 나서자 사람에 치인다. 사람은 사람을 뱉어내고, 사람은 사람으로 가는 길조차 잊어버린다. 사람에게서 사람에게로 흐르는 마음길도 놓쳐버렸다. 사람으로 살아있다는 건 참 견디기 힘든 일이다. 상팔자다. 사람이 사람을 어루만지지도 다가서지도 다가설줄도 다가가게 하는 법도 몰라 위무의 공간에 머무른다. 더 사람같은 사람을 만나 건강도, 돈도, 마음도 잃지 않으려 애쓴다.

 

돈은 사람도 삶도 가린다. 삶은 삐죽빼족 돈의 온기를 나눠갖지 못하게 한다. 일렬로 늘어서 백수에서 비정규직의 굴곡을 거쳐 장애인과 세모녀와 시집장가 못가는 처녀총각 병들어 마음가눌 수 없는 사람과 삶들은 신기하게 보이지도 않는다. 볼 수도 없다. 섞이지도 못한다. 안부조차 물을 수 없다. 사회는 가둬져있고 세상은 격막에 분리되어 있다.  아프다. 받은 상처는 그렇게 갈지자로 뿔뿔이 돌아가 사람같은 사람을 만난다. 

 

 

볕뉘.  저울 양쪽에 올려놓는다. 사람과 반려견을 찬찬히 놓는다. 눈을 꼬옥 감는다. 그리고 실눈을 뜬다. 안개처럼 보이도록 찬찬히 마음으로 본다. 어디로 기울고 있는 것일까  오르락내리락 중심을 잡으려고 하는가? 어느쪽이 시야에 사라져버렸는가?  옛날 사람들은 이런 상황을 개판 오분전이라고 불렀다. 그런데 조심스럽다. 개도 사람도 화낼 일이기때문이다. 말 조심해야 한다. 개 고양이 취급한다는 말은 새로 생겨야 할 말이다. 하지만 그래도 비루하지 않은가? 말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이나 기분을 헤아려야 한다는 사실이 비극이지 않는가? 생물이 이렇게 사람들의 삶을 밀어내고 있다는 사실 말이다. 동물을 사랑하는 만큼, 아파하는 만큼 사람을 사랑하고 아낄 수 있다는 것은 일면은 맞고 일면은 틀리다.  사람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동물을 사랑하는 방법과 기술만으로는 부족한 것이 너무도 많은 것 같다. 당분간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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