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유기체는 가장 약하고 보잘 것 없는 부분이 없다. 모두가 소중하고 귀중하다.
하나의 작은 가시가 박히더라도 온몸이 전율한다. 그 아픔을 공유한다.”
“유기농이란 무엇인가? 자연에 귀의해 혼자서 자족하는 삶이 유기농인가? 어지럽고 복잡다단한 사회를 내치고 혼자만 잘 사는 것이 유기농인가? 사람에 시달려서 사람이 힘들어서 모든 인연을 끊고 자연과 더불어 농사지어 자급하며 그렇게 자족하며 살겠다는 것이 유기농인가? 아니면 유기농 인증 딱지 붙여가면서 엄청난 자부심을 갖고 독보적인 존재를 구가하며 선진 엘리트 농인이 되겠다는 것이 유기농인가? 아니면 그도 아닌 이 시대에 돈이 되기 때문에 조류의 흐름에 편승해 하나의 방법적인 돈 되는 농사가 바로 유기농인가?
권단 선생님은 유기농이란 수사에 치우치는 현실을 이렇게 지적하며 순환과 공생의 공동체를 지향할 것을 말하고 있다. 아래 서두의 편집위원장의 글과 같이 한국사회의 친환경농업은 유기농과 친환경이란 개념이 혼재되면서 진행되어 온 현실과 관계가 깊다. 2010년부터 저농약 인증은 전면 중단되었지만 농약과 비료 사용을 인정하면서 온 절름발이의 유기농의 역사와 정책이 고스란히 묻어 있다.
“유기농은 친환경농산물이 맞지만, 친환경농산물을 유기농농산물이라고 생각해서는 틀린다. 풀어 말하면, 한국에서 친환경농산물은 유기, 무농약, 저농약 농산물 모두를 포함한다. 한국사회에서는 이런 농산물들을 친환경농산물이라고 부르기로 약속한 것이다. 농약과 화학비료를 써도 되는 양의 반만 뿌리고 준 농산물을 저농약농산물이라고 분류하며, 이것은 친환경농산물에 포함되는 것이 현실이다. 이렇게 길러진 농산물을 유통업자가 친환경농산물이라고 홍보하면서, 판매를 촉진했을 때, 전혀 위법이 아니다.“
2.
이러한 문제는 정부정책의 추진 과정에서 살펴볼 수 있다. 유럽 미국의 시스템과 달리 일본과 중국과 유사한 관리시스템을 도입하여 운영하면서 일반 소비자들이 인식에 있어 기본적인 왜곡을 불러 일으킬 수밖에 없도록 하고 있다.
“친환경농산물의 인증제도와 관련하여 국제식품규격위원회는 물론이고 오스트리아와 스위스 등 유럽 국가와 미국 등 대부분의 국가는 전환기를 포함한 유기농산물만을 인증대상으로 관리하고 있다. 우리나라와 중국 및 일본은 유기재배 외에도 저투입재배 농산물인 무농약농산물 및 저농약농산물을 친환경농산물의 범주에 포함시켜 친환경농산물 인증농산물로 관리하고 있다.”
정부의 환경농업육성법은 UR이후 농산물 시장개방과 WTO체제 출범으로 인해 환경보전형 농업을 지원하기 위해 시작하였다. 유기농업을 중심으로 법령을 준비한 것이 아니라 유기농을 포함한 일반친환경 농산물, 전환기유기, 무농약, 저농약까지 친환경으로 묶어 시작한 것이다. 2001년이 들어서야 환경농업의 명칭을 친환경 농업으로 바꾸고 표시제는 인증제로 친환경농산물 종류의 간소화(2006년 5종에서 3종으로)단계를 거쳐 저농산물을 폐지(2009년)하게 된다. 그리고 2012년에서야 유기가공식품과 친환경수산물을 포함하여 ‘친환경농어업 육성 및 유기식품 등의 관리지원에 관한 법률’로 친환경농식품인증제도를 통합 일원화하게 되었으며 인증영역을 비식용유기가공품, 유기농업자재로 확대하게 된다. 정부는 2017년까지 무농약이상의 친환경농산물 재배면적을 15%로 질적인 친환경농업을 육성하게 공표하면서 추진중이다.
친환경, 유기농의 개념의 혼란시키는 정부정책 속에 소비자들은 저농약 농산물을 유기농산물과 비슷하다고 여기고 구매하고 무농약이 유기농보다 더 낫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다른 나라에서는 저농약이나, 무농약 인증이 거의 없다. 유기농 중심의 친환경농업으로 질적인 전환이 필요한 현 시점에서 생산자 현실은 보기보다 암담하다.
친환경농산물 인증추이를 살펴보면 농가호수와 출하면적이 2009년까지 비약적으로 증가하다가 2009년 이후 신규 저농약농산물 인증이 중단되면서 점차 감소하는 추세이다. 2013년도의 친환경 농가는 전년대비 11% 감소한 126,746호로 전체농가의 11%정도이고, 재배면적은 전년대비 14%감소한 141,651ha로 전체재배면적의 12%이다. 이중 유기인증 농가는 13,957(11%), 무농약 89,992호(71%), 저농약 22,797호(18%)이다. 2009년 최고점을 기록한 이후 4년째 내리막길이다. 전체 농가 중에서 유기인증농가는 전체 농가 수나 전체 농경지를 기준으로 1.2%에 불과하다는 지표가 한국사회의 유기농업이 처한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측면은 생산자의 고충을 들어볼 때 더 가슴에 닿는다고 할 수 있다.
"배농사를 지으면서 농약을 줄이는 연습과정을 거쳐 무농약에 뛰어들었는데 생각지 못한 여러 문제가 나오는 거예요. 이래도 안되고, 저래도 안되고, 무농약을 시작하고 5년간 한 톨도 건지지 못했습니다. 배나무는 봄에 꽃이 피는데 가을에 꽃이 또 피었죠. 그렇게 두 번씩 꽃이 펴서 5년이 지나고, 꽃이 필 때부터 병이 생기기 때문에 한 달 만에 농사가 안된 게 표시가 나는 거예요....그렇게 해서 터득한 게 있습니다. 한국역사가 5천년인데 농약, 비료가 나온 건 50년이 채 안돼요. 4950년동안에는 유기농만 먹고 살았는데 불과 농약비료 몇 년 먹고 돌아가려니까 안 되는 거 아닙니까? 그 이유가 품종 때문이라는 거죠."
"저는 종자 문제를 2000년 무렵에 심각하게 느끼게 되었어요. 그래서 우리가 구입해서 농사하는 작물들과 씨앗들이 많은 문제가 있는데 가급적이면 내가 키울 수 있는 것 위주로 해보자 해서 재래 종자, 토종 종자 쪽으로 방법을 찾아가고 있는데요. 품종문제가 정말 중요했던 것 같아요. 유기농하면서 자재도 그렇지만 씨앗을 제대로 심지 못하면 유기농업은 참 어렵겠다는 생각이 많이 들고요. 그 문제가 결국 농사 방식하고 연결돼서 토종 종자로 농사를 하니까 아무리 시설을 잘 갖춰도 농사가 잘 안되는데 제철, 제 기온에는 작물들이 아주 잘 자라고 제철에 심어놓으니까 병해충도 자연천적, 자연의 힘만으로도 많이 억제가 되더라고요. 토종작물을 제철에 심게 되니까 그런 것들이 극복이 되어라는 것이죠.“
현실에서 수십년동안 실험적이고 연구수준의 노력이 있어야 아주 조금씩 뿌리를 내릴 수 있다는 사실이라는 것이다.
다음으로 소비자의 소비실태를 확인해보자.
“2012년도 국내 친환경농산물의 인증단계별 시장규모를 살펴보면 유기농이 13.2%인 4,081억원, 무농약이 55.7%인 1조 7175억원, 저농약이 31%인 9,175억원으로 추정된다.”
“친환경농산물을 소비하고 있는 소비자 계층을 분류해 보면 지속적 소비계층(1개월에 4회 이상 구입)이 45.1%, 보통 소비 계층(1개월에 4회 미만 구입)이 46.3%, 친환경농산물 관심계층(6개월에 1회 이상 구입)은 8.6%로 나타나 91.4%가 보통 이상의 친환경농산물 소비계층인 것으로 나타났다.”
“친환경농산물 구입 장소로 대형할인점이 40.0%, 농협계통(하나로클럽, 하나로마트) 15.3%, 친환경농산물 전문매장 13.6%, 직거래 단체 11.8%, 백화점 7.2%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친환경농산물의 구입처를 선택한 이유로는 '구입의 편리성' 31.1%, '판매처나 판매자에 대한 신뢰' 23.5%, '다양한 품목단위와 지속적인 공급' 20.6%, '타 판매처에 비해 저렴한 가격' 16.7% 등으로 나타났다.”
“친환경농산물의 가격에 대해서는 일반농산물 대비 가격수준의 경우 '비싼 편' 75.8%, '매우 비싼 편' 17.1%로 나타나 비싸다고 인식하는 비중이 92.9%로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고 잇다. 소득과 비교한 가격수준의 경우 '비싼 편'이 66.3%, '매우 비싼 편' 12.8%로 나타나 비싸다고 인식하는 비중이 79.1%로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친환경농산물 구입 경험자의 친환경농산물 구입 시 애로사항과 관련하여 '가격이 비싸서'가 54.6%, '적당한 구입처를 찾기 어려워서'가 16.6%, 친환경농산물 인증에 대한 이해와 신뢰가 부족하기 때문'이 12.0%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소비자들은 대부분이 친환경 농산물 소비계층인 것으로 판단되며 친환경 농산물을 대형할인점 농협계통의 매장에서 주로 구입하고 있다. 일반농산물에 대비해서 가격이 비싼 편이라는 것이 대다수의 의견이다. 적절한 구입처와 농산물 인증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지는 것이 큰 문제점인 것을 확인할 수 있다.
3.
정부의 정책을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안타깝게도 친환경농업 예산이 지속적으로 줄어들고 있다. 편성된 예산의 경우 60%가 넘는 것이 친환경농자재 지원사업 등 하드웨어 중심이자 건물과 시설물을 건립하는 위주의 사업들이다. 병행되어온 친환경 인증 역시 현장중심이자 과정중심이 아니라 실험실에서 나온 결과만으로 판별하는 인증시스템이어서 얼마든지 피해갈 수 있도록 되어 있는 것이 현실이다. 친환경농업은 농자재를 가급적 사용하지 않고 흙을 살려 농사를 짓는 저투입 순환 농업인데 유기농업자재 목록공시제와 품질인증제는 품질인증품만 써야 인증받기가 편하므로 친환경농업이 고비용이 될 수밖에 없다. 유기가공식품 역시 국산 원재료를 사용한 시장이 약 10%에 불과한 정도로 수입의존도가 높으며 상호동등성 인정제도로 GMO 원자재에 대한 안정성의 우려도 커지고 있는 것이다.
생산자의 현실은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유기농으로 생산하는 부분의 전체 농가 수나 농가면적의 1.2%에 불과하다. 친환경농업의 정책기조와 성장이라는 부분에서 보면 너무도 허약하기 그지없는 숫자이다. 생산자의 수준에서 보면 유기농의 하기에는 비용도 많이 들면서 관련 기술을 개발하기까지는 숱한 경험과 노하우의 공유와 소통, 지원이 절실하게 필요한 실정이다.
대부분의 소비자역시 친환경농산물을 구매하지만 친환경농산물 인증시스템에 대해 불신하고 있으며, 일반 농산물과 비교해서 상당히 비싼 지불을 하면서 구입하고 있는 실정이다. 구매 패턴도 대형할인마트와 농협이 절반을 넘어서고 있다. 또한 유기농, 무농약, 저농약, 친환경의 개념 구분이 모호하여 어떤 농산물을 구매하고 있는지 정확한 인식도 없는 상황이라고 할 수 있겠다.
지금 여기 한국사회의 유기농업의 현실을 냉정히 말하자면 외부 상황에 맞서 대응하고 개선해나가는 본질적인 마인드가 없다고 할 수 있겠다. 정부의 정책도 상황에 맞춰 임기응변했고, 환경농업에서 유기농업을 적극적으로 살리겠다는 의지가 없었다. 무상급식, 공공급식, 생산자 지원제도, 도농교류 등 근본적이고도 장기적인 정책기조를 이어오지 못하고 있다. 이런 정책에 있어서 가장 큰 피해자는 소비자이자 생산자라 할 수 있겠다. 소비자는 믿고 의지하고 안정된 가격으로 공급을 받을 수 없으며 생산자는 생산자대로 유기농업을 계속 이어나가야 하는 것인지 확신할 수가 없는 것이다.
생협의 인증시스템은 내부의 몇차례 사건이 생기면서 정부 정책과 생산자, 소비자가 안심하지 못하는 부분을 체계화시켜 제도화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생협은 이런 현실을 토대로 사회단체와 정부정책의 문제점을 지속적으로 제기하며 표피적인 지원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이땅의 생산자인 농민들이 규모의 혜택을 받고 공공급식을 통해 생산자립을 확대할 수 있도록 지원의 깊이를 헤아릴 줄 알아야 할 것이다. 사회단체 역시 지금의 현실을 얼마나 뿌리내리기 허약한지 인식하고 지자체나 학교급식, 군대급식 등 여건을 변화시킬 수 있도록 생협들과 합심하여 노력해야 한다. 생협은 제도상의 허점이나 맹점들을 짚어내고 안전과 안심이 뿌리내릴 수 있도록 생산인증시스템, 독자인증시스템을 철저히 구현해내야 한다. 이런활동을 바탕으로 해서 비싸고 믿고 구매하기 어렵다는 유기농산물을 조금 더 안정된 가격으로 보다 많은 소비자들이 혜택을 받고 소비와 생산의 선순환이 자리잡을 수 있을 것이다.
유기농업을 한다는 것은 소비하고 먹는 일 외에 사회를 만드는 일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소비를 하는 데 국한 한다면 나와, 내가족에 국한 되는 일이지만, 지속적으로 먹을거리에 관심을 갖는다는 일은 지역과 사회에 관심을 갖는 일이다. 지역과 사회에 관심을 갖게 되어야지만 나와 내가족이 더 건강하게 살게 되는 것이다. 새끼 손가락을 깨물면 아프다. 내아이들이 아프면 부모의 마음은 늘 아프다. 사회의 아픔이라는 통증을 느끼고 어느 한구석 마음길을 소홀히 하지 않을 때야 우리는 소비자, 생산자, 정부의 정책담당자를 넘어설 수 있다. 농사를 지구별의 노래로 바라보는 다음 말을 마음에 새겨야 할 것이다.
“친환경이라는 말은 어정쩡한 말이다. 환경에 친하다는 말은 환경과 하나가 되지 못하고 친한 척하는 말에 불과한 것이다. 과도기적 용어에 불과하다. 정말 우리가 유기농을 사유하고 성찰하려면 더 깊고 불온하게 근원의 본질까지 쉴 새 없이 파고들어야 한다. 농(農)은 자연과 사람이 사는 사회를 이어주는 중요한 단어이다. 농이란 단어를 요즘에는 다 떼어내고 생명공학이다 바이오다 별 이름을 다 붙이고 난리들이지만 농이란 말은 얼마나 아름다운 말이던가? 새벽의 노래이고 이 지구별의 노래 아니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