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예술과 기술을 분리하는 것은 잘못이다 기계가 우리의 관심을 독차지하기 이전에는 한편으로는 양적 요구와 일의 효율이, 다른 한편으로는 인격을 반영하는 질적 가치와 목적이 끊임없이 상호작용하였다. 주관적 형태의 창조적 표현에 발명이라는 이름을 붙이지 않는 것은 유기체 자체의 통일성과 인격의 각인을 부정하는 것이다. ....디자인의 끝없는 흐름도 다른 예술의 특성을 만들고 평범한 항아리나 직물에까지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어떤 물건도, 매일 사용하는 그냥 그런 물건조차도, 그림으로나 스타일로나 모양으로나 인간 정신의 어떤 각인이 새겨지지 않은 한 완성된 것으로 여겨지지 않았다. 이 미적 발명의 양은 지난 수세기 동안에 이뤄낸 기계 발명의 총량에 견줄 만하다. 그러나 결코 오늘날처럼 경제가 예술을 억누르는 식으로 기술을 압박하지는 않았기에, 이들 두 발명 양식은 서로 영향을 주고 받았다. 462-463


화이트헤드는 수공예 절정기의 중요성을 잘 알았다. 그의 시대에 대한 성격규정은 서구 역사의 중요한 분기점, 곧 민주적 기술이 거대 기술의 권위, 권력, 그리고 양적 성공에 압도되었던 시점을 일깨워주었다. 그러나 역사를 마주보고 그 결과를 설명하기 이전에, 2000여 년동안 작동되어 왔던 그 반대의 힘 -주축 종교와 철학-을 고려해야 한다. 그것들은 모든 변화의 지향점을 환경이 아니라 개인 영혼의 변혁에 둠으로써 무거운 '문명'의 멍에에 도전하고 그것을 제거하려 했던, 종류는 다르지만 성질은 같은 가치 체계였다. 468


지배계급은 자기들이 무자비하게 독차지했던 재화와 쾌락에 싫증이 나 무기력하게 되었다. 수많은 거만한 지배자와 그 충복들이 인간에게 영락없는 원숭이 수준으로 타락하였다. 원숭이처럼, 그들이 먹거리를 저 혼자 차지하고 집단과 함께 나누려 하지 않았다. 원숭이처럼, 힘있는 자들은 자기 몫 이상으로 여자를 요구하였다. 역시 원숭이처럼, 잠재적인 라이벌에 대해서는 끊임없이 신경질적으로 공격하였다. 요컨대 그들은 분명한 인간적 잠재 능력에서 멀어졌고, 그런 의미에서 늘어난 권력과 부는 그들을 막다른 골목으로 이끌었다. 469


새로운 중추적 종교와 윤리 재정립은 기술에 깊은 영향을 줄 수밖에 없었다. 일례로, 그것은 노예의 불운을 덜어주었고, 나아가 노예제 자체를 점차 폐기토록 만들었다. 전쟁에서는 아닐지라도, 평화적 일에서는 거대기계의 권력 원천은 해체되어 버려졌다. 그리고 이러한 개혁은 인간을 사용하지 않는 대안적 동력 체계와 기계의 발명 속도를 빠르게 하였다. 이것이 긍정적 진보였음을 누구도 의심할 수 없다. 그러나 불행히도 유럽에서는 '문명'의 옛 유물론적 가치를 근본적으로 반대해온 주된 종교 조직이 로마의 관료제 행정제도를 물려받음으로써 그 자체가 권력으로 떠올랐다. 477


기계화의 선구자들


누르시아의 베네딕트가 6세기에 세운 베네딕트 수도회가 수많은 비슷한 다른 수도원 조직들과 구별된 것은, 끊임없이 기도하고 원장에게 복종하며 가난을 견디고 서로의 행동을 점검한다는 통상적 수준을 넘어서는 특별한 의무를 과한 데 있었다. 베네딕트수도회는 일상의 일을 기독교도의 의무로서 수행한다는 새로운 의무를 덧붙였다. 하루에 적어도 5시간씩 육체노동을 하도록 하였다. 또 인간기계의 원초적 조직처럼 수도승을 10명씩 조를 짜 주임사제의 감독 아래에 두었다. 483


수도승에게 자기 의지를 포기하도록 동의를 구한 것은 초기 거대기계가 인간 부품에 과한 것과 빼닮았다. 권위, 복종, 상급자 명령에 대한 예속이 영혼화되고 도덕화된 거대기계에서 꼭 필요한 부분이었다. 베네딕트 수도회는 24시간제였다는 점에서 후대의 기계화 단계를 내다보기까지 하였다. 483


직접적 이유가 무엇이든가 간에, 그 궁극적 결과는 초기 도시 문화에서 혜택 받은 계급이나 억압받는 노동자들 모두에게 없던 그 무언가를 안겨주었다는 것이다. 그것은 균형 잡힌 삶, 곧 지적으로 낮은 수준이었지만 기초적 마을 문화에서 보전되던 종류의 삶이었다. 수도원이 부과한 박탈과 절제는, 더 많은 재화나 권력을 지배계급의 처분에 맡기기 위한 것이 아니라 영적 헌신을 드높이기 위한 것이었다. 484


하루 동안 이런 일도 하고 저런 일도 하면서, 이 체제는 정통 '문명'의 가장 나쁘고 완결한 결함, 즉 평생을 한가지 일에 묶이고 하루 종일 완전히 지칠 정도의 일에만 전념하던 문제점을 극복하였다. 그런 적당함, 노력의 평등, 다양성 증진은 이전에는 더 풍부한 지적, 정신적 발달이라는 이점을 포기한 전통적이고 야심 없는 소규모 공동체에서만 가능하였다. 이제 그것은 최고의 문화 단계에서 협동적 노력을 위한 모델이 되었다. 485


불행하게도 수도원 조직의 성적 편벽성은 기계화에 왜곡된 공헌을 하였다. 그 후의 발달에서 한쪽에는 공장과 사무실, 라른 한쪽에는 가정이라는 식의 분리는, 전쟁과 노역을 위한 고대의 원형적 독신자 집단과 그들이 나왔던 혼성 농경 공동체 간의 분리처럼 뚜렷하게 되었다. 중성 생물이 전문화된 일을 가장 잘한다는 개미집의 교훈이 점점 인간 공동체에도 적용되어, 기계 자체가 비남성화와 비여성화 인자가 되었다. 그러한 반섹슈얼리즘은 자본주의에도 기술에도 그 흔적을 남겼다. ....똑같은 자연적 충동들이 머지 않아 수도원적 질서의 표면을 뚫고 나왔다. 힘에 대한 욕망도 욕망의 힘도 통제하기 어려웠다. 486


온종일 밭일을 하는 것이 가장 좋은 신경안정제이며 가장 양질의 수면제이기는 하지만, 모든 중노동 후에 정신의 높은 기능은 잠들게 된다. 실제로 날마다 일을 가혹하게 강요하는 데 대한 반항을 막는 데는, 독주나 야만적 압박보다도 육체적 피로가 더 효과적이다. 온화한 성품의 에머슨조차도 잎에 풀칠도 할 수 없는 돈을 받으며 하루 15~16시간씩 일하여 최초의 철도를 건설한 이민 노동자 부대에 대해 "질서를 유지하는 데는 그것이 경찰보다 나았다"고 말을 하였다. 488


[기술과 문명]에서 '원기술기'라 일컫던 이 단계에서 자유에너지 확산은 대규모 인간 집단에 집중하는 파라오식보다 기술 공학에 훨씬 더 크게 공헌하였다. 물이 빠르게 흐르고 바람이 부는 곳은 어디나 원동기를 설치하여 태양에너지나 지구의 회전을 인간에게 이익이 되는 쪽으로 돌릴 수 있었다. 자주 작은 마을이나 수도원도 가장 큰 도시만큼이나 새로운 기계가 많이 필요하였고, 그런 자연력을 점점 더 많이 이용하는 것이 눈에 띄었다. 이 혁신은 자유도시의 발생과 그 후의 번영에 직접적으로 공헌하였다. 자유도시에서의 자유노동자들은 이제 봉건적 권력이나 왕권에서부터 대체로 독립된 협동조합이나 동업조합으로 자립할 수 있게 되었다. 490


미뉴,[교부연구]-

"강은 수문 벽이 허용하는 만큼 대수도원으로 흘러들었다. 우선 제분공장으로 세차게 흘러가서 바퀴 무게로 곡물을 빻고 겨와 가루를 분리하는 가는 체를 흔드는 데 아주 효과적으로 이용되었다. 그러고는 다음 건물로 흘러들어가 보일러를 채우고, 그 물은 데워져서 수도승들이 마시는 맥주를 만드는 데 쓰인다. 포도 풍작이 포도주 양조업자의 노고에 보답하지 못할지라도 말이다. 그러나 강의 일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제는 제분 공장에 이어 모직물의 올을 촘촘하게 하는 축융기로 빨려 들어가기 때문이다. 제분 공장에서는 수도승의 음식을 마련했지만, 이번에는 수도승의 옷을 만드는 일을 한다. 강은 이 일을 그만두지도 않거니와 어떤 일을 부탁해도 거절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강은 무거운 망치와 메, 좀 더 정확하게는 축융기의 나무발을 번갈아 올렸다 내렸다 한다. 아주 빠르게 휘저어 모든 바퀴를 날래게 돌리면 강은 거품을 일으키면서 스스로를 가루로 만들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제 강은 무두질 공장으로 들어가, 그곳에서 수도승의 구두를 만드는 데 필요한 재료들을 준비하는데 열과 성을 다한다. 그러고는 많은 작은 갈래로 나뉘어 여러부서들은 바쁘게 통과하면서 취사, 회전, 분쇄, 급수, 세탁, 연마 등 무슨 목적이든 물이 필요한 곳은 어디든 찾아가서 언제나 도와주며 거절하는 법이 없다. 마지막에는 크게 감사를 받으며 모든 일을 마치고 나서, 쓰레기를 휩쓸어가면서 모든 것을 깨끗이 하고 떠난다." 491-492


노동의 해방이 어느 정도였는지는 중세 노동자들이 누린 휴일 수로 알 수 있다. 낙후된 광산촌에서조차 16세기까지도 기로된 날들의 절반 이상이 휴일이었다. 유럽 전체로 보면 일요일을 포함하여 휴일은 모두 189일에 이르렀다. 이것은 로마제국  때보다도 많을 정도이다. ...페르시아의 발명품인 풍차가 12세기에 수입되면서, 이 에너지원을 기댈 수 있는 지역의 동력 공급이 크게 늘었다. 15세기에 이르러서는 죽 늘어선 풍차들이 선진적 주거지역이라면 어디든 에워싸고 있었다..492

 

기독교의 검약과 절제, 규칙성은 반드시 세속의 성공으로 이어지리라는 지적이었다. 막스 베버가 16세기 칼빈주의 프로테스탄티즘의 특질로서 잘못 취급했던 습관이 중세의 시토 수도원에서 대부분 효과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다.....길드는 가난하고 훈련을 못 받은 탓에 불리한 입장에 있는 늘어나는 임시직 노동자들에 대해서는 배려하지 않았다. 따라서 생산력과 창조력에서 생긴 이득은 공평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전환점이 되는 16세기까지의 전체적 성과는 괄목할 만하였다. ...17세기에 이르러 많은 분야에서 농촌과 도시, 유기적인 것과 기계적인 것, 정적 요소와 동적 요소 간의 균형이 훌륭하게 잡혔다. 이 체제는 힘으로 부족한 것을 시간으로 메웠다. 평범한 물건조차도 오래갈 수 있도록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그 위대한 건축물들은 수백 년에 걸쳐 지어졌을 뿐만 아니라 수백 년이라도 견딜 수 있도록 계획되었다 495-497


수도원 제도가 원래 개인의 구원을 추구한다는 단 한가지 목적에 바쳐진 것인데 반하여, 정통적 자본주의는 이윤과 자본의 축적, 과시적 소비의 기회 확대에 의한 물욕 신의 찬미와 더 실질적인 구원의 성취에 바쳐졌다. 그런 것들을 집중적으로 추구함으로써 자본주의는 필연적으로 모든 중추적 종교의 삼가고 절제하는 관행을 뒤엎는 쪽으로 나아갔다. 칼 마르크스는 놀라지 않았을지 모르지만, 포기와 자기희생이라는 원래의 수도원적 명제가 탐욕과 소유욕이라는 자본주의적 반명제를 낳았다는 것은, 심술궂은 역사 전환으로 남아 있다. 498


토마스 아퀴나스가 지적했듯이, 돈에 대한 욕망은 한계를 모르는 반면에 음식, 옷, 가구, 집, 정원, 밭이라는 구체적 형태로 표현되는 모든 자연적인 부에는 그런 물자의 성질 및 사용자의 생물적 욕구와 능력에 의해 정해지는 생산과 소비의 한계가 분명히 있었다. 인간의 기능에 한계가 없다는 생각은 불합리하다. 생명은 모두 아주 좁은 온도, 공기, 물, 음식의 한계 속에 존재한다. 그리고 금전만이 또는 다른 사람을 부려먹을 수 있는 권력이, 그런 분명한 한계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생각은 정신착란이다. 502


수백 년 사이에 새로운 자본자 정신은 그리스도교의 기본적 윤리에 도전하게 되었다. 자본주의의 가치 구도는 사실상 그리스도교에서 말하는 7가지 큰 죄중 다섯 가지 죄 - 교만, 시기, 과식, 탐욕, 정욕 - 를 모든 경제 사업에 필요한 자극으로 보고 긍정적인 사회적 덕목으로 바꾸었다. 반면에 사랑과 겸손을 위시한 기본 덕목은, 노동계급이 냉혹한 착취에 더 순종하고 받아들이게 하는 정도 이외에는 '사업에 나쁜 것'으로서 배척당하였다. 504


자본주의가 번영한 곳에서는 성공적인 경제 기업을 위한 3개의 주된 규준이 확립되었다. 곧 수량의 계산, 시간의 관측과 통제, 그리고 추상적인 금전적 보수에의 전심전력이다. 자본주의의 궁극적 가치 - 힘, 이윤, 위세 - 는 이들 원천에서 나왔고, 빤히 들여다보이는 위장 아래의 그 모든 것은 피라미드시대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첫번째 규준은 이윤과 손실의 보편적 셈법을 만들어냈고, 두 번째 규준은 기계와 아울러 인간의 생산효율도 확보하였으며, 세 번째 규준은 기본적으로는 수도승이 추구한 천국에서의 영원한 보상과 같은, 일 할 동기를 일상생활에 끌어들였다. 돈의 추구는 정열과 집념이 되었고, 다른 모든 목적을 수단화하는 목적이 되었다. 508


자본주의는 원시사회에서는 훌륭한 인간적 이유 때문에 건드린 적이 없던 강력한 긍정적 동기를 착취하고 보편화하였다. 자본가는 수백 년 동안 노동자들을 고분고분하게 만들기 위해 보상보다는 처벌이라는 부정적 방식을 계속 써온 반면에, 자기나 동료 경영자, 투자가들에게는 제멋대로 보상하였다...사업체의 목적론에서는, 이윤이 생활의 최종 목적이었다. 이것과 비교한다면, '생명, 건강, 번영'을 추구한 고대 파라오 체제가 유기체의 현실에 더 잘 뿌리박은 것이었다.  510


캄파넬라(16세기인물)는 그의 이상향 [태양의 도시]에서 "노 젓는 사람이나 바람의 힘없이, 놀랄 만한 장치에 의해 물 위를 가는" 배를 그렸다. 그리고 그 이야기 말미에서, 나라를 다스리는 대영주님이 말씀하신다. "가가올 대에 대해 점성가들이 이야기한 것, 곧 지난 4,000년 동안 세상에 있었던 모든 일보다 더 많은 일들이 앞으로 100년 사이에 일어나리라는 것을 너희들이 아느냐." 514


일련의 최초 발명들은 유리를 제조한 덕분에 탄생하였다. 로저 베이컨의 기록에 따르면, 과학적 광학 지식이 증대하면서 안경용의 맑은 유리가 만들어져 시력장애, 특히 나이 들어 생기는 시력장애를 교정할 수 있게 되었다. 안경의 발명으로 성인의 정신생활은 평균 15년 연장되고 풍요롭게 되었다. 45세에 기대 수명이 60세라면 그렇다는 셈인데, 근시가 더 일찍 시작되는 경우 정신활동이 연장되는 기간은 더 길어질 것이다. '문예 부흥'을 설명하기 위해 밝혀진 요인들 중에서도, 확실히 안경의 영향은 적지 않았다. 516


시계는 자동 장치의 본보기였다. 우리가 자동 장치에서 이룰 수 있고 기대할 수 있는 모든 것이, 우선 시계에서 해결되었다. 16세기의 거대한 성당 시계에서부터 달력과 알림 기능을 갖춘 '자동으로 태엽이 감기는' 조그마한 팔목시계에 이르는 과정에서도, 우리는 오늘날 전자공학 기술이 당연하게도 아주 자랑스럽게 여기는 소형화 과정의 최초의 예를 볼 수 있다. 시계에서의 시간 자동화는 더 큰 모든 자동화 체계의 원형이다. 519


발명가이자 기술자인 레오나르도를 평가하면서, 학자들은 그가 기계의 환상 때문에 얼마나 마음이 어지러웠는지를 놓치곤 한다. 로저 베이컨처럼 그도 역시 평소의 불가사의한 방식(꿈이라 이름 붙인)으로 "인간은 움직이지 않고도 걸을 것이고(자동차), 눈앞에 없는 사람과 이야기할 것이며(전화), 이야기하지 않는 사람의 소리를 들을 것이다.(축음기)"라고 예견하였다. 그러나 편지 형식으로 쓴 다른 환상에서, 레오나르도는 인류를 공격하고 파괴할 무시무시한 괴물의 모습을 그렀다. 레오나르도는 그 괴물에 실체적이고 거대한, 인간과 비슷한 모습을 부여했지만, 그가 실제로 묘사한 것은 우리 시대가 목격하고 있는 과학이 저지르는 무시무시한 몰살 행위에 아주 가깝다.


" 아아, 이 미친 듯이 날뛰는 악마에게 얼마나 숱하게 공격을 퍼부었던가. 어떤 공격도 통하지 않았어. 오, 가엾는 사람들아, 당신들에게는 난공불락의 요새도, 도시의 높은 성벽도, 크게 무리 지을 사람들도, 집도, 궁전도 없었어! 게나 귀뚜라미처럼 안전하게 피할 곳을 찾아도 작은 구멍이나 땅 밑의 굴 말고는 어떤 곳도 남아 있지를 않았어. 오 얼마나 많은 가엾은 어머니와 아버지가 자식을 빼앗겼든가! 얼마나 많은 불행한 여인들이 짝을 잃었든가...사실 그건 곤경에 빠졌을 때 인간이라는 종은 다른 생물종을 부러워해야 할 필요가 있다네..우리 가엾는 인간에게는 도망갈 길이 없어. 이 괴물은 천천히 움직일 때라도 제일 날랜 준마보다도 훨씬 빠르기 때문이야." 521-522


아무리 순화되고 정화되었다 한들, 지성만으로 생명의 필요성과 목적에 적절히 대응할 수 있는 주체가 될 수 있는가하는 의문이다.  522


레오나르도는 기계적 세계의 그림에 없는 무언가를 어렴풋이나마 알았다. 그는 자기가 해부하여 정확하게 그린 사람이 인간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살아 있는 인간을 묘사하는 데 필수적인 것은 눈으로 볼 수 있는 해부용 메스로 드러낼 수도 없었다. 인간의 역사, 문화, 희망과 기대를 통찰하지 않고서는 인간 존재의 본질 그 자체는 설명되지 않았다. 그러므로 그는 자신의 해부학적 묘사와 기계 발명의 한계를 알았다. 그의 그림에서 표현된 가시적 세계는 내장을 제거한 미라에 지나지 않았다 그의 무의식 세계의 억압된 부분이 마침내 오늘날 모든 인류에 떨어지 않는 것과 똑같은 악몽으로 폭발하리라는 것을 자신의 경험에서도 드러내었다. 523


"하늘이 다시 찢어지고, 거리서 쏟아내린 불길이 날아다니다 사라지는 공포 속에서 보리라. 인간이 만든 모든 것들이 인간의 언어를 말하는 것을 들으리라. 가만히 있어도 눈 깜짝할 사이에 세계의 여러 곳으로 이동하리라. 어둠 속에서 가장 밝게 빛나는 것을 보리라. 경탄할 만한 인간이여! 어떤 열광이 당신네들을 이처럼 몰아 부쳤는가!" 526

 

볕뉘.  도서 반납일이 다가왔다는 문자가 왔다.  그의 책을 겹쳐 읽으면서 몸에 착 달라붙은 선입견이 쉽게 증발할 수 없다는 것을 느낀다. 관성과 복원력을 지닌 앎들은 쉽게 그 틀을 바꾸려하지 않는다. 빌린 책들의 3/4정도는 읽어낸 지금 그는 역사를 다시 읽어내고 있음을 느낀다. 막스 베버가 이야기한 자본주의의 프로테스탄트는 이미 중세부터 시작되고 있으며, 중세의 여러과정을 되새겨보지 않으면 안된다고 설명한다. 이는 도구의 발명으로 너무 손쉽게 설명하는 역사관과 배치된다. 그의 책 참고문헌에서 보이는 방대한 신석기시대의 사례와 중세의 저작은 그저 놀랍기만 하다.  르네상스의 관점도 마찬가지인 듯싶다. 레오나르도가 잠수함을 발명하고 내놓을 수 있음에도 그는 숨겼다고 한다. 기술과 기계에대한 발명과 함께 그가 숱한 꿈에서 그 기술이 가져올 악몽을 의식했는지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중세의 수도원을 중심으로 한 기술, 기계의 발명, 발달은 수력과 풍력을 다양하게 이용하고, 노동력을 기계로 줄인 시간을 인간을 위해 썼던 사례도 보여주고 있다. 화석연료가 아닌 자연에너지를 이용하여 돌아가는 마을의 묘사에는 뭉클하기도 하다. 성적인 감금과 분류가 낳은 수도원의 이분법은 여전히 자본주의의 가사와 일의 구별로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고 한다. 지성과 감성은 분리는 필연적으로 문제를 심화시킬 수밖에 없을 것이다. 개인은 물론 사회가 의도하는 의식의 분리 역시 사회적 문제를 낳는다. 무의식을 의식하지 않는 하루하루는 시간의 지층에서 자신을 왜곡하게 만든다.

 

그의 역사인식은 따로따로 끊어져있지 않다. 외부와 내부는 긴장하며 영역을 넓히고 있으며, 여러 학문의 고리를 끊임없이 되물고 있는 것 같다. 주문한 책들이 오고 읽어야 할 여분의 책들도 많지 않다.  온전하게 인간의 모습, 사람과 사회, 기술, 예술의 관계를 한번 더 다른 시각으로 느껴보고 싶은 분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어쩌면 지나쳤을지 모르겠다. 먼저 알았거나 이런 저런 다른 이력을 갖지 않았다면 이리 오래 머물지 못했을 것이다. 다행이고 올해 가을에 불쑥 마음에 들어와 고맙다 싶다. 그의 통찰의 여진은 오래도록 가시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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