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의 입구

 

여자는 바다를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습니다
혼자입니다. 그러나 완벽하게 혼자일 수는 없는 것입니다

생각해보면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바람은 불어오고

또다른 국면에서는 미늘에 걸린 물고기들이

죽음을 향해 튀어오르고 있습니다

 

당신은 수동 카메라로 여자의 여름을 함께 들여다본 사람

불가능을 사랑했던 시간과 풍랑이 잦았던 마음

잠시 핑, 눈물이 반짝입니다

 

수면 위로 튀어오르는 물고기의 비늘도 반짝입니다

모든 오해는 이해의 다른 비늘입니다

아픈 이마에선 눈물의 비린내가 납니다

생각해보면 천국이 직장이라면 그곳이 천국이겠습니까?

또다른 국면에서는 사랑도 직장처럼 변해갑니다

 

사, 라, 합, 니, 다

이응이 빠진 건 눈물을 빠뜨렸기 때문입니다

여자가 하염없이 바다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우리는 누군가의 첫사랑을 빌려 읽기도 합니다

 

 

 


흑국보고기

 태백

               

쓸쓸하고 퇴락한 나라
서럽고 황폐한 나라
걸인조차 돌아오지 않는
유령의 나라
진폐증을 앓는 검은 뼈들이
화광(火光)아파트 베란다에서
검은 해바라기 꽃으로 피는 나라
아버지의 청춘이 묻힌 나라
어머니가 늙어가는 나라
방문을 향해 놓인
주인 없는 신발들만 사는 나라
주인 없는 신발들만 우는 나라
내 아버지는 대한석탄공사 장성광업소 주항항 광부였고
내 어머니는 대한석탄공사 장성광업소 합숙 밥해주는 아줌마였지만
내 아버지와 어머니의 삶은 한번도 대한석탄공사 연탄처럼 활할 타오른 적도 없는

막장 같은 나라
뼈만 아픈 나라
천제단도 있고
발원수도 샘솟지만
무저갱의 검은 피만 쏟아지는 나라
서럽고 황폐한 나라
(태백이 아니라
태백이 아니라)

 

 

 

볕뉘.

 

어느 날, 마음에 먼지가 날 즈음이 되면, 지인들에게 몇권의 책추천을 건네받는다. 한 시인에게서 받은 문자에는 [사랑은 어느 날 수리된다]라고 찍혀있었다. 마음에 아마 먼지가 폴폴 날린 날 서점에 들러 시집에 대한 갈증에 허겁지겁 챙겨왔다. 하지만 아주 조금씩 조금씩 마셨다. 그러다가 가을도 허겁지겁 도망가는 날, 그 시의 집을 건네들었고 옹알거렸다.

 

시인도 시인의 고향도 잘 몰랐다. 하지만  공간을 공유한 느낌에 참 마음은 묵직해지는 것이었다. 아직도 부친이 군인으로 그곳에서 만나 결혼을 한 어머니의 외가 소식을 다 알지는 못한다. 당신들은 말하셨고, 많은 아픈 얘기를 감추셨고, 아직도 다 귀기울여 듣지 못하고 들었던 이야기는 서로 섞이거나 잊혀진 것도 있다. 어린시절이 증명사진처럼 마음에 남아있는 그곳은 지금쯤 함백산 정상은 벌써 눈으로 뒤덮일 것이고, 가을 키큰 해바라기와 낮은 집들 사이 아이들의 소리와 동선을 따라 고추잠자리가 지천으로 돌아다니는 곳이었다. 거슬러 올라가 여름은 멱감기 좋은 곳들, 하루종일 산으로 돌아다니던 그곳에서 부모님의 삶은 없었다. 시인의 시집에는 마지막 두 구절이 없었다. (태백이 아니라, 태백이 아니라는 빠졌고 제목의 부제로 올라와 있는 것 같다.) 부모님의 삶을 자꾸 담지 못하고 있다. 그러고 보니... ...

 

그리고 눈물의 입구라는 시도 소리내어 읽어 보았다. 사,라, 합, 니, 다 하지만 이렇게 이응이라는 눈물이 빠진 곳은 천국도 직장처럼 되어버린다고 한다. '사랑합니다'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곳, 눈물을 채울 수 있도록 애틋한 곳이 많이 늘었으면 싶다. 가을은 눈물의 습기가 너무 말라 하늘이 지나치게 푸르른 날이다. [사랑은 어느 날 수리된다]라는 제목의 시도 시집안에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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