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사인

 

"나의 모든 수단은 정상적이지만 나의 동기와 목적은 미친 것이다." 186


 

공감과 감정 이입, 상상력과 사랑을 가지고 타인의 삶에 참여하는 능력은 후사적 방법론에서는 존재할 수 없다. 후사 문화는 모든 인간을 물건으로 취급하도록 요구하기 때문이다. 인간적으로 말하자면, 후사인은 적극적으로 움직이는 자가 아니라 해도 결함을 지닌 인간이며 궁극적으로는 잠재적 괴물이 된다. 그 결함의 병리적 본성은 그의 높은 지능 지수에 의해 지금까지 은폐돼 왔다. 이러한 괴물은 평범한 기성복으로 위장하고 평범하게 실제 의견을 말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미 현대 사회에서 활동하고 있다. 191


자연과 의미깊은 교류에 참여하는 대신, 그는 기계가 제공하는 제품과 대용품이 만족스럽기만 하다면 노력 없는 안락의 삶을 택하고는 자신을 폄하한다. 아니 도리어, 기계가 강요하는 상품에 아무리 싫증이 나도 그것을 소비해야 한다는 의무만 없다면, 그 안락은 그를 전혀 힘들게 하지 않는다. 사고하게 하는 자극, 감정과 행위를 낳는 자극, 즉 삶을 낳는 자극은 곧 사라지게 되리라. 198


 

세계 문화


맥스웰의 특이점 - 이러한 학설은 역사 속에서의 인간 개성의 직접적 충격이라는 것을 인정한다. 그 충격이란 대중 운동에 의한 충격만이 아니라, 적시 적소에서 적절한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 개입하고자 충분히 정신을 차리고 있는 개인과 소집단에 의한 충격이기도 하다. 그러한 순간(부처,예수,마호메트) 단 한 사람의 인격이, 명백하게 저항할 수 없는 제도의 관성을 극복할 수 있다. 맥스웰이 지적했듯 다행히도 시스템이 고차원적이고 복잡할수록 그 속에서 특이점이 생기는 빈도는 높아진다. 즉 물질계보다 생물계에서 특이점이 더 많이 생기고, 개미의 생활보다 인간의 생활에서 더 많이 생겨난다. 따라서 지금 무엇이 가능한가에 대한 우리의 감각은, 지금까지 알려진 전형적이고 예상할 수 있는 것에 근거해 절대로 불가능하다고밖에 생각되지 않는 것에 대해서도 정당하게 고려하지 않는다면, 참으로 건전하다고 할 수 없다. 208


인간이 지금까지 계속 이룩한 자기 전환을 개관해 보면, 인간 공동체의 기초를 확대한 것이 설령 단속적이고 산만한 것일지라도 그것은 분명 인간 역사의 누적적 성과의 하나가 된다. 이러한 통일은 여러 민족과 지역을 그 개별적 능력을 넘는 교섭과 처리의 측면에서 통일하는 하나의 세계 정부라는 것으로 정치적으로 표현되는 시점까지 왔다. 이는 인간의 발전이라는 공통의 이상에 의한 정치 경제적 통일이라는 어려운 과제로 박차를 가하게 되리라. "그것은 필요하다. 따라서 그것은 가능하다."라고 말한 것은, 지금 세계 문화를 수립하는 과제 전체에도 적용되리라. 나아가 우리는 만일 그것이 쉬운 일이라면 필요하지 않은 것이라고 덧붙일 수 있다. 211

 

지금까지의 역사적 분석에 대한 결과로서, 인간 과거의 어떤 측면도 실제로 버릴 수 없다고 생각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생각에서 우리는 신세계 이데올로기가 그 유토피아적이고 공리주의적이면 낭만적 철학에서 범한 중대한 과실을 수정한다. 설명 우리가 역사의 저장된 가치를 이용하지 않는 쪽으로 의식적으로 선택한다고 해도, 살아 있는 과거는 지표 아래에 여전히 존재하면서 자율적으로 내리는 결정으로 보이는 것을 왜곡하며, 새로운 전진을 후퇴시켜 우리가 그러한 압력을 의식하지 못한다면 더욱더 유효하게 작용한다. 가령 과거 사회가 식인과 근친상간의 관행을 근절했듯이, 우리는 정당한 이유에 의해 전쟁이라는 제도를 일소하는 계획을 세울 수 있다. 그러나 만일 인간 기록의 좀더 즐거운 측면에만 중점을 두고자 전쟁이라는 사실을 망각하는 쪽을 선택한다면, 우리는 우리의 무지 자체가 이러한 악을 새로운 가장으로 재현하는 것을 복돋우는 날을 예고하게 되리라. 나아가 우리의 평화를 위한 교육에 군인의 헌신과 규율, 그리고 고통을 이겨 내고 죽음에 직면할 각오를 포함시키지 못한다면, 우리는 세계 문화를 위해 필요 불가결한 고상한 성격의 가장 중요한 측면 하나를 상실하리다. 212-213


다른 모든 새로운 통합과 마찬가지로, 각 부분이 거대한 전체 속에서 새롭게 태어나고, 새로운 자아와 우리가 전진시키는 새로운 문화에 의해 실행할 수 있는 것이 되기 위해서는, 지금까지의 낡은 형태로서의 그것은 죽어야 한다. 이러한 재생을 감내하지 못한 결과 이집트인, 유대인, 중국인은 그들에게 너무나도 큰 짐이된 고색창연한 역사적 선례에 훨씬 일찍부터 매달려야 했다...과거를 그 미래의 더 큰 발전을 통해 선택하고 재평가하며 재고하는 능력이야말로, 모든 참된 문화적 르네상스에 생명력을 부여했다. 213


세계 문화와 통합된 자아 사이의 관계는 상호 작용적이다. 전체주의적 노예화와 자동화와는 다른 수단에 의해 세계 질서를 수립할 수 있는 가능성은, 통일된 인격, 즉 자신의 모든 부분을 비롯해 인류라는 가족 전체와도 편한 관계를 갖는 인격이 그 거대한 모든 다양성 속에서 얼마나 많은 것을 창조하는가에 달려 있다. 통합된 인간은 이드에 우위를 두지 않고 이드를 수용해야 한다. 즉 자신의 더욱 완전한 표현을 위해 필요한 에너지를 초자아가 억압하지 않게 하면서 초자아를 강화해야 한다. 이러한 자기 통찰과 균형 및 창조성을 강화하지 않고서는, 세계 문화란 강제적 악몽으로 쉽게 퇴화하리라.  214


과거의 세계 정부나 세계 교회에 의해 추구된 순환적이고 자기 제한적인 역정도 슬플 정도로 어리석게 보인다. 따라서 지금까지 가장 강력한 문명조차 빈곤하고 반쯤 깨인 삶을 살았을 뿐이다. 그러한 문명의 구성원들 중에 자신들의 협소한 동물적 역할을 넘어 발전할 기회를 부여받은 사람들은 그야말로 일부에 불과했다. 그리고 그런 혜택을 받은 엘리트조차 그들이 상상할 수 있는 자연적 한계에 이르기 훨씬 전에 비틀거리고 멈춰 섰다. 나아가 더 큰 장애는 거대한 문명이 섬들에 불과했다는 점이었다. 그 섬들은 공간적으로 직접적인 이웃과 격리됐고, 시간적으로는 더 넓은 간극으로 그들 자신의 과거의 부 또는 인류의 다른 부분의 부에서 단절됐다.  216


인간의 모든 역사는 지금까지 이러한 목표를 향해, 지그재그로 전진하면서 가끔 멈추어야 했으며 심지어 의도적으로 숙고되지도 못했다. 무엇이 발생하고 있고 앞으로 무엇이 발생할지에 대한 의식의 결여야말로 발전에 중요한 장애가 됐다. 실제적인 것이든 정신적인 것이든 모든 건설적 노력은, 의사소통과 공유와 협력을 실현하는 수단의 확대, 그리고 더 많은 사람이 함께 의 있고 목적적인 결합을 만들 수 있는 과거에는 제국이나 교회, 지금은 대도시라는 공통의 제도 수립을 포함해 왔다.  217


진보 학설과 창발적 진화 학설이 함께 보여 주는 일면적인 해석을 시정하기 위해, 우리는 당연히 사회의 섬유적 구조에 주목해야 한다. 즉 인간 삶의 여러 부분은 그 실을 움직여서 그것들을 모든 시간의 층 속에 관통하게 하고, 새로운 단계를 각각 유기체와 사회적 기억으로 짜는 섬유로 장식한다는 사실이다. 220


우리는 과거의 유용한 기여를 이용해야 하고, 그것들을 새롭게 재생시켜야 한다. 이러한 안정된 사회 구조는 인간적인 개성 형성의 여러 재료를 낳았기 때문이다. 심지어 단편적인 상징과 기념물만을 남긴 그러한 인간적 모험도 화학적 미량 원소가 생리적 성장에 중요한 것과 마찬가지로, 심리적 발전에도 중요한 것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221


연령, 성별, 인생 경험을 달리하는 사람들의 혼합에서 나오는 공동체 집단은 그 다양성으로 말미암아 인류를 대표한다. 이는 한정된 목적을 위해 형성되거나 단일한 직업 또는 연령에 근거한 어떤 특수화된 결합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신석기 문화가 초래한 마을과 가족 집단의 패턴은 지금도 여전히 기본적인 것이고 오히려 과거보다 더 필요한 것이다. 인간의 성장에 필요한 친밀감, 연대감, 기본적 이해, 의견 일치를 낳을 수 있는 것은 가족과 이웃, 노동 동료와 유희 동료로 구성된 폐쇄적 혼성 사회뿐이다. 223


우리는 앞으로 결코 보지 않을 사람들과 지속적인 거래를 해야 하기 때문에,  또한 일상생활의 너무 많은 부분이 간접적인 사람들 또는 너무 멀리 떨어진 사람들의 손에 의존해야 하기 때문에, 직접적인 '나와 너의 관계'를 소생 시킬 필요가 있다. 이러한 친밀한 관계가 없다면 인간은 조만간 개체로서 존재하지 못하고 한낱 물건이 될 수밖에 없다. 우리는 특히 어린 시절에, 우리를 이해와 사랑으로 감싸 주고 우리의 자발적인 충성의 대상이 되는 눈에 보이는 공동체를 필요로 한다. 이 친밀한 집단이라는 확실한 존재는 우리에게 인류의 여타 부분을 참조하는 준거이자 목표가 되어 주기 때문이다. 224


유대인 공동체 - 바빌론 유수 이후 반복된 이주와 박해의 타격에 저항한 그 능력의 비밀은 아마도, 나이가 젊거나 늙거나 학식이 있거나 없거나 가난하거나 부자거나 모두 적어도 주 1회는 얼굴을 마주보며 모인 시너고그 Synagogue에 있을 것이다. 유대인들은 이 작은 일차공동체를 기반으로 삼았기 때문에 모든 문명의 해체기에 대도시 주변에서 목적 없이 떠돈 인간의 먼지가 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225

 

비행사는 처음 보는 공항에서 착륙 활주로를 찾을 때, 다른 곳의 익숙한 활주로 배치와 국제 신호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데 감사한다. 무의미한 차이를 유지하는 것은, 의미 있는 차이를 일소하는 것과 거의 마찬가지 정도로 삶을 억압한다. 따라서 우리는 걱정없이 그러한 획일화의 지속적 확장을 기대해도 좋다. 획일화는 문명이 최초 단계에서 엄청난 대가를 지불하고 도입한 예측 가능한 행동과 공통 이해의 영역을 더욱 확대하기 때문이다.  227


기축 종교가 유지해 온 무한한 의미와 무한한 가능성의 감각이 없다면 세계 문화를 향한 길은 그것이 요구하는 노력의 가치를 지불할 만한 가치가 없게 되리라. 평화, 질서, 권력, 안전, 부, 지식이라는 한정된 목표가 삶의 궁극적 완성이라고 한다면, 그러한 목표들은 영혼의 갈증을 그대로 내버려 두는 희망없는 신기루가 될 뿐이기 때문이다. 230


모험은 우리가 피상적으로밖에 접할 수 없었던 많은 문제를 집중적으로 취급해야 한다. 이러한 관심의 집중과 강화 속에서, 신세계 이데올로기는 그 자체가 변화하고, 그럼으로써 그 이데올로기의 최초 비전과 기술의 천박함에서 구출되리라. 확장과 정복이 아니라 집중적인 경작, '무엇에서의 자유'가 아니라  '무엇을 위한 자유', 권력, 이윤, 생산성, 특권을 위한 전반적 기계화가 아니라 인간적 필요에 따라 측정되고 활기찬 규범으로 제한된 기계화라는 방향 설정이 경제적, 사회적 사업의 성질이 되리라. 이는 화폐 경제에서 삶의 경제로의 일반적 변화를 뜻한다 231


사람들의 재정주, 자원의 재풍부화, 풍경의 재개발이 이루어진다. 요컨대 생물적 환경과 원시민족 문화 모두에 가해진 맹목적 공격, 그리고 도시 생활을 향수하게 해 주는 전원 풍경을 분별없는 도시 확대로 말살한 이 문명의 현재를 전반적으로 원상으로 되돌리는 것이다. 결국 그간의 풍부한 지식을 이용하여, 끈질긴 탐욕의 결과를 시정하고 기계 일변도의 계획에 대한 기술자의 과신으로 황폐화된 환경을 재건하게 되리라. 233


하나의 세계는 정의상 개방된 사회일 것이다. 밀접한 결합이 달성되는 것은 과거와 같이 성벽 안에서의 고립과 적대적인 배타성에서가 아니라, 공통의 목적에 대한 집중, 공통의 중심을 향한 인력, 공통의 행위를 향한 동원에 의한 것이고, 이는 일단 목표가 달성되면 긴장에서의 해방과 힘의 재분배를 수반하게 되리라. 더 명확한 경계나 더 항상적인 강제에 길들여진 사람들은 이러한 개방된 사회의 환대와 자유를 경험할 때의 편안함을 도리어 불편하게 느끼리라. 현재와 같은 정치적 반동과 무감동 속에서는, 개방된 사회가 의미하는 바가 공허한 꿈으로 보일 수 있다. 237


지구 자원의 충분한 활용을 위한 시책으로 세계 문명은 각국이 지불 의무를 지는 누진적 세계 소득세를 도입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자연의 맹목적인 편애를 시정하고 모든 사람에게 최저한의 생활필수품을 제공하기 위한 좋은 방법이다. 달리 말하면 세계 경제란, 위기 시에 반란의 기선을 제압하기 위해 그 힘을 빌리는 단순한 시혜와 같은 타산적인 박애주의 차원이 아니라, 정의 차원에서 점진적인 평등화와 역동적인 균형을 추구함을 뜻한다. 239


하나의 세계 원칙과 조화된 새로운 정치 경제 활동의 틀이 창조되기 전에, 고전적 자본주의와 획일적 공산주의에 잔존하고 있는 많은 미신이 제거돼야 한다. 인류의 발전이라는 관점에서 고려되는 실제성과 유익성에 대한 새로운 기준을 도입해야 한다. 가령 산업의 추진력으로서는, 좋은 good 삶이 상품 goods의 삶을 대체해야 한다. 240

 

 

볕뉘. 이 책은 1956년에 발행된 것이다. 토마 피케티가 말한 세계 소득세를 주장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재분배의 방향과  삶의 설계, 방향, 문화의 향유에 대해서도 꼼꼼하게 챙기고 있다.  후사인은 역사 이후의 인간, 지금 현대인을 지칭한다. 소비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며 끊임없이 다른 소비만 탐할 뿐이라는 지적 속에 이후 나아가야 할 인류 문화를 말하고 있다. 정치, 조직, 경제, 문화, 예술, 삶의 전반에 걸쳐 총체적인 그림을 그려주며 일말의 자신감을 불어 넣어주고 있다. 그런면에서 보면 각자 갇힌 쇠로된 방에서 닫혀있다고 여긴 문을 과감히 열어야 할 듯 싶다.  "필요하다고 느끼는 것은 가능한 것이다" 다른 세상은 가능하다. 나만이 아니라 너가 있고, 너무도 많은 것을 알고 있고 할 수 있다. 생산, 소비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당신은 삶의 창작자이자 또 다른 세계를 만드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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