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가지의 3대용법 - 도덕적 우월감. 매우 무례한 인간을 대할 때 화가 나긴 하지만, 그게 그리 오래가진 않는다. 그 사람을 '천하의 몹쓸 놈'이라고 진단을 내리고 나면, 모든 문제가 간단히 풀리기 때문이다. 그런데 도덕적 우월감을 과시하는 사람은 좀 다르다. 상대편이 제법 예의바른 태도를 취한다 하더라도 나에 비해 도덕적으로 우월한 것처럼 전제하고 말을 하면, 기분이 나쁠 뿐만 아니라 그 감정이 오래간다. 무례하게 도덕적 우월감을 과시하는 사람도 있는데, 이런 사람은 정말이지 한 대 패주고 싶을 정도로 얄밉다. 아니 두고두고 패주고 싶다는 생각을 오래 간직하게 된다. 39


김규항의 '불공정게임' -김규항의 글을 좋아하는 독자의 입장에서, 나는 그가 비판의 논리구조상 '새누리당과 민주당'의 관계가 '민주당과 좌파'의 관계와 닮은꼴일 수 있다는 점에 눈을 돌려 좌파가 스스로 잘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하는 데에 자신의 탁견을 발휘해주면 좋겠다. 좌파 쪽에서 그런 변화가 있어야 '싸가지 없는 진보'의 가능성도 열린다고 보기 때문이다. 43


'싸가지 없음'의 원조 좌파진보 - 노동당 당원 남종석. "좌파들 중에 논쟁으로 정파 싸움하면서 허송세월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많아요. 조금 차이 나면 싸우고 논쟁하고 상대를 기회주의자라고 규정하고, 가치를 위한 운동을 하니까 그래요. 그러면서 민주노총도 갈라졌지요....이제 진보는 새정치민주연합 욕만 하고 사는 존재 같아요." 45

 

정의당 당원 이창우. "진보에 대한 사회적 요구는 존재하는데, 정작 원조 진보정당들은 전멸했습니다. 이것이 마치 유권자들이 진보에 의지하려고 하면서도 진보정당에게 '너희가 제대로 된 진보냐?'고 되묻는 것과 같아요. 과격하기만 한 진보, 자기 잘난 맛에 사는 진보가 아니라 혁명보다 어렵다는 개혁을 책임있게 추진할 수 있는 진보를 원하는 겁니다. 진보정당이 분열과 반목을 일삼으면서 국민들 눈에 함량 미달로 보이는 거죠." 45 강기갑. '진보라는 본질의 항아리를 끌어안고 그들만의 논쟁과 다툼으로 아까운 세월 보내는 진보, 자기주장만 하는 강직성과 진보라는 우월성에 갇혀 대중성과 민심에 다가가지 못하는 진보는 이 시대적 요구와 국민적 갈망을 채워줄 수 없습니다." 46


'싸가지 없는 진보'는 단기적으로 '남는 장사' - 싸가지 없는 언행은 한 정당 내에서도 나와 우리편의 승리에 도움이 안 되는 사람들을 향한 것이지, 우리 편을 향한 게 아니다. 반대편에 대한 싸가지 없는 언행은 지지자들을 열광시키는 동시에 단합의 대열로 이끌 수 있다. 51 진보의 내부 헤게모니 쟁탈을 위해선 가장 강력하고 효율적인 정치 양식이다. 좋건 나쁘건 정치의 동력은 증오다.


왜 '악마의 변호인'이 필요한가 - 피터 드러커는 반대 의견의 필요성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경영자는 칭찬을 받으면 좋은 결정을 내리지 못한다. 오히려 상반된 의견을 듣고 토론을 나누고 여러 대안을 모두 고려해야 제대로 결정을 내릴 수 있다. 의사결정의 첫 번째 규칙은 반대 의견이 없으면 결정을 내려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56


불관용을 관용할 수 있는가 - 진보의 진보 비판에 대한 비판은 진보 진영 내에선 그 어떤 비판도 존재할 수 없으며 존재해선 안 된다는 논리. ....진보의 진보 비판에 대해선 포괄적 원칙이나 이론으로 접근할 것이 아니라, 비판의 사안별 적합성이나 정당성을 따지는 것이 옳다. 즉, 어떤 비판이 내 마음에 안 들면 그냥 내 마음에 안 든다고 말하거나 그 이유를 자신의 입장에서 논하면 되는 것이지, 무슨 법칙을 만들겠다는 식으로 상대편이 '비겁함' 또는 '무지'를 들먹거려선 안 된다는 것이다. 62


진중권의 '가증스러운 이중잣대'란 표현 - 진짜 문제는 내부 비판이 아니다. 비판이 문제라기보다는 비판의 방식이 문제다. '싸가지 있는 비판'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앞선 비판들은 너무 거칠다. 비판이라기보다는 인신공격성 비난에 가깝다. 다름을 인정하는 선에서의 소통, 즉 싸가지 있는 소통이 필요하지만, 우리는 논쟁을 '싸가지 없기 경연대회'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63


진보의 진보 비판은 진보의 숙명 - '빠' 네티즌들이 "상대 정파에 내뱉는 경멸적 언사들은 매우 파쇼적"이라는 고종석의 개탄에 동의할 수 없는가? 원래 인터넷이나 SNS는 그런 매체이니, 쿨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그렇지 않다. 그렇게 형성된 의식과 태도는 진보 정치에 그대로 반영되기 마련이다. 같은 맥락에서 비판의 '동기 분석'도 다시 생각해볼 일이다. '동기 분석'은 충분한 근거가 수반될 때에 한해서 타당할 수 있지만, 그냥 자기 짐작을 일방적으로 내지르는 건 곤란하다. 그건 감정싸움으로 나아가자는 신호탄과 다름없다. 68


민주당의 '5대 뻔한' 신드롬 - 뻔한 인물(불로장생 원로, 꽉 틀어쥔 486, 진보의 이준석부재), 뻔한 노선(아직도 반새누리당이면 모든 노선이 정당화되고 철학이 없음), 뻔한 체질(계파 갈등, 노숙 및 단식 투쟁, SNS 환청, 환각현상), 뻔한 전략(편 가르기, 안 되면 단일화 등), 뻔한 우군들(야당 외곽 세력은 그들만으 언론, 학자, 시민단체들) 71


왜 강남좌파는 '왕싸가지'가 되었나 - '지식 엘리트'의 속성은 자신의 비교우위가 지식,지성,비전에 있다는 걸 거의 본능 비슷하게 갖고 있기 때문에 타인과 세상에 대한 '계몽 욕망'으로 충만해있다. 미국 정치에서 늘 진보적 지식 엘리트가 일반 서민의 거센 반감의 대상이 되는 등 뜨거운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 한국에선 그들의 계몽 욕망이 해소되기 어려운 내부 분란을 낳은 건 물론이고 외부적으로 자주 싸가지의 문제로 비화된다. "우리가 모든 걸 다 알고 있으니 우리를 따르라"는 식이니 말이다. 83


 

"보수는 인간에게, 진보는 사물에게 말한다" -노명우가 잘 지적했듯이, "상업주의와 보수주의자들이 대중의 상식을 기막하게 이용하는 능력을 갖추었다면, 지식인과 진보주의자는 상식을 대체할 양식을 훈계의 어투로 늘어놓는 능력만을 갖고 있을 뿐이다." 그는 가끔 인용되는 말이라며, "우익은 거짓을 말하고 있지만 인간에게 말하고 있고, 좌파는 진실을 말하고 있지만 사물에게 말하고 있다고 했는데, 진실이건 거짓이건 진보의 기본자세는 인간지향적이라기보다는 사물지향적이다.  88-89


유권자의 '확증편향' - 자신의 신념과 일치하는 정보는 받아들이고 신념과 일치하지 않는 정보는 무시하는 경향. 한국 정치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주로 정치인들만 욕할 뿐 대중은 늘 피해자라는 식으로 말하지만, 정치인들은 대중의 확증 편향에 영합할 뿐이라고 보는 게 진실에 더 가깝다. 이 세상에 숱한 음모론이 성황을 누리는 것도 바로 '확증 편향'때문이다. 어떤 정치적 이슈나 사안에 대해 편을 갈라 치열하게 싸우더라도 그 싸움이 '확증 편향' 간의 싸움이라는 것만큼은 인정하는 게 좋지 않을까? 95


박유림. " 김어준은 대중이 궁금해할 만한 사안들을 정확히 짚어낸다. 사람들이 감정이입을 하고 움직일 만한 것들을 이슈화하는 동물적 감각을 지녔다. 논리적으로 수긍이 가는 지점이 아니라 마음이 움직이는 지점을 알고 있다. 감정의 영역에서 결정되는 것이 비단 정치만일까. 인간계에서 결정되는 일들 가운데 논리적이거나 합리적으로 결정되는 것이 얼마나 있나. 그런 점에서 '감정'은 중요하다. 그리고 그 중요성이 사회에 만연하게 된 지금은 바야흐로 '감정의 시대'" 97


나꼼수를 덮친 승자의 저주 - "좌의 취약점이 뭐냐. 좌는 스스로 지적으로 우월하고 도덕적으로 정당하다고 생각한다는 거. 그게 왜 문제냐면, 좌가 지적으로나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게 아니라, 그렇게 스스로 생각하다보니 부지불식간 드러나는 지적 오만이 대중들로부터 좌를 유리시키는 결정적 역할을 한다는 거. 자기들만의 언어로, 자기들끼리만 대단하고 자기들끼리만 정당하지. 그러고는 자신들의 언어로 거대한 담론을 설법하려 하지. 예를 들어 우리 좌파가 입에 달고 사는 "신자유주의"라는 용어만 해도 그래. 그 언어로 대중을 설득하려는 시도 자체가 어리석은 거라는 걸 인정하지 않고선, 자기들끼리의 리그에서 자기들끼리의 언어로 자기들끼리만 잔치를 하고 만다고. 자기들끼리 거룩한 순교자가 되는 거지." 99 김어준뿐만 아니다. 대중에게 감정으로 접근해 그들을 매료시키는 진보 논객은 많다. 늘 문제는 우리 편이 아닌 사람들의 감정은 아예 고려의 대상으로 삼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런데 이런 딜레마가 있다. 우리 편이 아닌 사람들의 감정까지 고려하는 어법으론 우리 편 사람들을 열광시킬 수 없다. 이게 바로 우리가 직면해 있는, 정치담론의 시장 논리다. 100


우리는 모두 이중개념주의자다 - 진보는 자신만이 옳고 보수는 몹쓸 집단이라는 식의 태도를 보일 때가 많은 것 같다. 자신과 상대를 '선과 악'으로 구분하고 과도한 적대의식을 보이면서, 국민들에게 양자택일을 종용하는 것이다. 그래서 부담스럽다. 종교적 폐쇄성이 강한 기독교에 사람들이 거부감을 느끼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 몇년 전에는 진보라고 생각했던 유권자. 108


인격없는 이념은 쓰레기 - 우리가 정치 분야에서 인격을 홀대하는 데는 한 세대에 걸친 독재와 반독재투쟁의 상흔이 자리 잡고 있다. 독재정권이 반독재투쟁을 비난한 수법 중의 하나가 '수신제가' 이데올로기였다. 제 앞가림도 못하는 데다 인간적 흠이 많은 주제에 무슨 민주화운동을 하느냐는 선전 공세를 핀 것이다. 그 좋은 말이 그런 용도로 오, 남용되었다는 게 기가 막히지만, 더욱 비극적인 건 그런 공세에 대한 반작용으로 인해 생겨난 이념과 인격의 분리 현상이다. 이념과 인격에 모두 충실한 사람도 많겠지만, 이념에 투철할 수록 인격은 엉망인 사람도 많다. 부실한 인격을 이념적 전투성으로 보완하려는 탓이다. 125


'있는그대로의 세상'과 '원하는 세상' - 알린스키는 '사물의 양면성을 분리시켜 파악하는 인습적 사고방식'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는 "지적으로 우리는 모든 것이 기능적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행동할 때의 우리는 모든 가치와 문제들을 분할하고 고립시킨다.", "문제가 극단적으로 나누어져야만 사람들은 행동할 수 있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주장이 100% 천사의 편에 있으며 그 반대는 100% 악마의 편에 있다고 확신할 때 행동할 것이다. 조직가는 문제들이 이 정도로 양극화되기 전까지는 어떠한 행동도 가능하지 않을 것이라고 알고 있다." "내가 말하고 있는 것은 조직가라면 자신을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의 한 부분은 행동의 장에 있으며, 그는 문제를 100대 0으로 양분해서 자신의 힘을 투쟁에 쏟아붓도록 힘을 보탠다. 한편 그의 다른 부분은 협상의 시간이 되면 이는 사실상 단지 10%의 차이일 뿐이라는 점을 알고 있다.", "타협은 언제나 실질적인 활동 속에 존재한다. 타협은 거래를 하는 것이다. 거래는 절대적으로 필요한 숨 고르기, 보통 승리를 의미하며, 타협은 그것을 획득하는 것이다. 당신이 무에서 출발한다면, 100%를 요구하고 그 뒤에 30% 선에서 타협을 하라. 당신은 30%를 번 것이다....타협이 전혀 없는 사회는 전체주의 사회이다. 자유롭고 개방적인 사회를 하나의 단어로 정의해야 한다면, 그 단어는 '타협'일 것이다." 158-160


'증오 마케팅'은 진보에 불리하다 - "진보주의자가 대중에게서 감정이입을 더 많이 활성화할수록, 그들은 더 많이 지지를 받고 보수주의자는 더 많이 손해를 볼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보수주의자가 대중에게서 더 많은 공포심을 생성할수록, 그들은 더 많이 지지를 받고 진보주의자는 더 많이 억압을 받을 것이다. 진보주의자는 공포에 근거한 프레임을 수용하기보다는 오히려 당연히 자신의 도덕적 세계관, 즉 감정이입과 책임, 희망에 대해 더 많은 이야기를 해야 한다." 조지 레이코프. 166


'진정성'을 버리고 '성실성'을 보여라 - 패터슨은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갖고 있느냐의 문제는 사람들이 어떻게 행동하느냐의 문제보다 덜 중요하다고 말한다. "나는 이웃과 직장 동료들이 진정한 성차별주의자인지, 노인차별주의자인지 신경 쓰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정중하고 사회성 있으며 성실한가 하는 점입니다. 성실성의 기준은 명확합니다. 그들이 약속을 지킬 것인가? 우리가 암묵적으로 타결한 합의를 그들이 존중할 것인가? 그들의 따듯한 표현이 의도적인 선의에서 나오는 것인가" - 진정성이 집단사고를 강화할 수도 있다고 말하면서. 173


 

인간의 도덕은 하나가 아니다. - 문화권마다 다른 도덕 체계가 있다. 뉴욕대학 조너선 하이트는 대학생은 거의 자율성의 윤리만을 도덕성의 언어로 삼아 이야기한 반면, 다른 집단(특히 노동자 계층 집단) 사람들은 공동체의 윤리를 그보다 훨씬 더 많이 사용하고 있었고, 신성함의 윤리도 좀더 이용하고 있었다고 말한다. 최근 연구에선 개인, 공동체, 신성이라는 도덕의 세 차원 가운데 진보적인 사람들은 개인을 특히 더 중시하는 반면에 보수적인 사람들은 셋 다 비슷하게 중시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184

 

친소관계가 정치의 본질인 정당. NL은 PD를 공격하고, NL과 PD가 연합해서 비운동권을 공격한다. 기어코 '나와' 다른 점을 찾아 배척하는 버릇이 몸에 뱄다. 남 탓하고 반사 이익에 익숙한 정치는 이런 습성에서 비롯됐다. 당 대표보다 계파 수장이 더 잘 챙겨주니, 당 대표보다 계파 수장 의견을 더 따르는 정치문화도 필연적이다. - 구혜영.

 

보수와 진보의 다른 도덕시스템 - "진보주의자들이 정치에서 도덕과 신화와 감정적인 측면을 무시하는 한, 정책과 관심을 가진 그룹과 사안별 논쟁에만 집착하는 한, 그들이 이 나라를 뒤덮은 정치적 변화의 본질을 이해하게 될 희망은 전무하다." 197


"진보세력이 저소득층의 삶을 향상할 유일한 대안임을 확실히 인식시키기만 하면 문제가 저절로 다 해결되리라는 대선분석은 이런점에서 한계가 있다. 진보세력은 보수적인 국민들이 그들에게 품는 생래적인 거부감, 곧 국가안보와 사회질서를 흔드는 '비도덕적인' 정당이라는 시선을 어떻게 바꿀지 궁리할 필요가 있다." 전중환.  198  똑같이 과오를 저질러도 진보가 더 욕먹게 되어 있다. 세상 민심이 그런 걸 어이하랴. 199


풀뿌리 건설만이 살길이다 - 초기엔 정치적 풀뿌리가 아니라 사회적 풀뿌리를 건설해야 한다. "우리의 정치는 기실 '과잉대표' 되어 있다. 몸집에 비해 머리가 너무나 큰 기형적 가분수 형태다. 수준과 실력에 비해 목표와 기대가 너무 높고 비현실적이다. 인간의 욕망에 대한 이해도 부족한다 그러다 보니 열망과 기대에 비해 결과는 늘 실망스러우며, 이는 정치불신과 정치혐오증으로 이어진다. 언론의 탓도 크다고 생각한다. 정치, 중요하다 골백번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렇지만 한 사회를 바꾸는 결정적인 힘은 정치에만 있는 게 아니다. 오히려 우리가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할, 지금까지 한 표현을 원용하자면 '정을 붙여야 할' 곳은 '사회' 또는 '사회적인 것'이다....내 이웃과 함께 내 삶의 방식이 어떻게 바뀔 때 사회 전체가 더 좋아지는지를 이해하고 행동하는 것, 그리고 그것을 위해 '사회권력' 이 어떻게 형성되어야 하는가 등을 고민할 때 비로소 정당도, 정치도 제대로 작동한다고 본다."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장 이창곤.

 

 

볕뉘. "적을 업신여기면 반드시 패한다 " ㅡ '품위있는 진보는 가능한가', '이념과 인격이 함께갈 수 없는가' 되물으며 이말로 끝맺고 있다. 유행은 덧없지만 이리 빨리 숨죽는 것일 수 있을까? '싸가지' 논점은 수면 아래로 내려간 듯 싶다. 대안논쟁으로 씨끌벅적해야 할 것 같은데 논점을 받고 있는 지역도 흐름도 없는 듯싶다. 그런면에서 진보의 치명점은 남보다 낫다는 선민의식이다.엘리트주의다. 강준만교수의 시선은 계파나 모둠의 시선으로 굴절되어 이미 폐기된지도 모르겠다. 유효기간이 점차 짧아진다. 안타까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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