훌륭한 선생은 학생과 직접적이고 신속하게 소통할 수 있는 방식을 찾고자 하며, 종종 최선의 방식은 더 빨리라든가 저런!” “나쁘지 않군같은 단순한 말을 건네는 것임을 깨닫는다. 문제는 학생과 선생이 공유할 수 있는 지시적인 언어를 찾아 조금이라도 진저할 수 있는 행동을 이끌어내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음악적 재능을 개발하는 것은 비서가 속기를 배우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비서는 어린 친구들에게 무엇을 해야 할지를 보여준 반면, 젊은 의사는 그들이 어떤 인물이 되어야 하는지를 늘어놓았던 것이다. 57

 

애덤 스미스는 유명한 구절에서 동정심이란 종종 다른 사람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으로 오인하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나는 자신과 타인 사이의 혼동이야말로 무엇이 상호 존중의 톱니바퀴에 윤활유가 되는지를 이해하는 데 핵심적인 실마리임을 깨닫게 되었다. 그것은 하나의 오해로 시작된다. 다시 말해, 상호 동일시와 동정심에 관한 애덤 스미스의 오류를 통해 우리는 협력을 가로막는 차이들을 극복하는 것이다. 68

 

존중의 제로섬 게임 자신의 가치를 주장하기 위해 흑인들에 대한 존중을 부정하는 게임 70

 

두 사람에게 인성은 한 개인이 만인이 공유하는 사회적 악기’-음악 텍스트들에 해당하는 사회적 동류어는 법률, 의식, 언론, 종교적 신념의 규범, 정치적 교의 등이다-를 통해 타인과 소통하는 것을 뜻한다. 76 예술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사회적 삶에서 상호성은 표현적인 노동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상호성은 연기되고 연주되어야만 85

 

적어도 능력에 대한 시험이 그들의 미래를 예측하는 준엄한 예언자는 아닌 것이다. 거칠게 말하자면, 재능의 불평등은 존중의 실천을 결정하는 데 있어서 단 하나의 제한된 요인에 불과할 수 있다. 능력과 존중 사이의 관계에 대한 이러한 친절한 견해가 현실적이지 않은 이유를 이해하려면, 인성에 대한 지각을 형성하는 능력이라는 현상 자체를 더 깊이 파고들 필요가 있다. 112

 

시기심의 유혹에 대항하여 루소는 자기애와 숙련, 어떤 일을 그 자체를 위해 잘하는 것으로 이루어지는 자기 존중의 미덕을 주장했다. 그렇지만 루소는 유혹의 역학이 자기 존중의 그것보다 더욱 강력하다는 이유로 이해 비관주의의 어조로 글을 끝맺고 있다. 타인들은 너무 진지하게 다뤄진 반면 자기 자신은 충분히 진지하게 다뤄지지 않은 것이다. 126

 

모든 일상 생활의 관행 속에서 능력주의는 유대에 대한 위협을 상징하며 잠재적인 승자와 패자 모두 이를 느낀다. 사회적 유동성은 사회적 대가를 수반하는 것이다. 132

 

역사학자 요한 호이징가가 상기시켜주듯이, 노동에 두어지는 절대적인 도덕적 가치, 여가에 대한 노동의 우월성, 시간을 낭비하는 것에 대한, 비생산적인 존재가 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 이 모두는 19세기에 사회 전체를, 빈자뿐만 아니라 부자들까지도 사로잡았던 가치이다. 자유주의에서는 노동하는 성인을 존중했던 것이다. 145

 

이해의 평등, 투명한 평등과는 달리, 자율은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타인에게 인정함을 뜻하는 것으로서 불투명한 평등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타인의 자율성이라는 사실을 자기 자신의 자율성과 동등한 것으로 간주한다. 그러나 거장의 지배를 피하기 위해 자율성의 부여는 상호적인 것이어야 한다. 161

 

자유주의적 주장이 갖는 활기의 어떤 측면은 인간의 특성에 관한 종종 순진하고 일차원적인 가정으로 인해 약화되었다. 자유주의의 전통은 사적 영역에서 배운 인성의 교훈을 어떻게 공적 영역으로 이어갈 수 있는지, 그 과정에서 진정한 심리학적 무게를 갖도록 정치학을 풍부하게 만들 수 있는지를 결코 이해할 수 없었다. 165

 

우리가 보아온 자율은 단지 하나의 행동이 아니다. 이를 위해서는 한쪽이 상대방에 관해 이해하지 못하는 무언가가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관계 역시 필요하다. 상대방에 관해 이해하지 못하는 점이 있다는 사실에 대한 인정은 관계에 지속성과 평등을 제공한다. 자율성은 연결과 낯설음, 친밀감과 비개인성을 동시에 가정하는 것이다. 225

 

경직된 관료제에 관한 빅 브라더식의 설명은 이러한 맹목성을 설명하는 데 필요하지 않다. 경제의 경우에 그러하듯이 복지에서도 관료적 피라미드는 자본주의 사회 내부의 질서를 향한 모색으로서 생겨났다. 이 카르텔을 추진한 것은 권력이지만, 음식과 주거, 의료 보호의 부족은 복지 국가의 질서를 향한 모색을 추진했다. 226

 

평평하고 짧은 관료제 역시 중앙 처리 장치를 갖고 있다. 소수의 관리자들이 결정을 내리고 직무를 설정하고 결과를 판정하는 등 지배할 수 있는 것이다. 디스크 위의 여러 요소들은 신속하게 다시 정리되고 프로그램될 수 있다. 정보 혁명은 전체 조직을 즉각 판독할 수 있는 힘을 중앙 처리 장치에 부여했다. 234

 

유연한 조직은 미세하게 등급이 매겨지는 불평등 대신에 엘리트와 대중 사이에 더 날카로운 구별을 가능케 한다. 유연한 조직은 효율적인 지휘권이 상층부에 있기 때문에 전통적인 관료적 피라미드보다 더욱 전체주의적인 기관으로 기능할 수 있다. 235

 

경쟁에 대한 두려움, 파산에 대한 두려움, 실패에 대한 두려움, 패배에 대한 두려움 등이 모두 강력한 동인 될 수 있다. 우리는 어떻게 우리 직원들에게 패배에 대한 두려움을 심어줄 것인가? 우리 스스로 그러한 두려움을 느낄 때만이 직원들도 그렇게 될 수 있다. 240

 

평평하고 짧은 노동 형태는 노동자들 사이 우애의 결속력을 약화시키는 경향이 있다. 가령 사회 분석가 로버트 퍼트넘은 미국인들의 우정 관계에서 동료 노동자는 10퍼센트 이하를 차지한다는 사실을 밝혀낸 바 있다. 중요한 문제를 논의하고 싶을 때 누구와 이야기를 나누는가 하는 질문을 받은 사람 가운데 동료 노동자라고 답한 응답자는 절반 이하였다. 동료애의 약화는 6개월 내지 8개월 마다 순환되는 팀 체제의 경우처럼 특히 노동자들이 함께 보내는 시간이 줄어든 일자리가 낳은 필연적인 사회적 결과이다. 이제 사람들은 서로를 알 필요가 업슨것이다. 241

 

파리와 마찬가지로 시카고에서도 훌륭한 거리 선도 활동을 통해 마약 중독은 아니더라도 범죄로부터 손을 떼도록 하는 데는 계획된 서사가 필요하다. 외부인의 눈에 시카고 지역 프로젝트는 아주 관료적인 것으로 비치는데, 그 이유는 이 오랜 교정 과정에 의사들의 지원과 법률 부조, 범죄자 자신을 위한 그리고 때로는 그들의 가정을 위한 경제적 지원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거리에서 활동하면서 형식적인 관료주의를 삼가는 도움을 가정한다는 것은 거의 도움을 주지 않겠다는 뜻이다. 무릇 진지한 보살핌이란 유연성의 시간 틀을 넘어서는 것을 뜻한다. 245

 

자원 봉사는 낯선 사람들을 한데 결속시키거나 사회의 복잡성에 대처하기에는 허약한 치유책이다. 자원 봉사에는 동정심의 건축학이라 부를 수 있는 무언가 즉 자기가 아는 개인과 동일시하는 것으로부터 전혀 모르는 개인과도 동일시하는 것에까지 이르는 점진적인 운동-가 빠져 있다. 자율성의 필요 조건 역시 빠져 있다. 어떤 사회적 관계에서 서로 상대방을 전혀 모르는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는 마음가짐이다. 254

 

유용한 노동의 숙련 기술에 초점을 맞추는 것은 이러한 종류의 돌봄을 동정심으로부터 분리시킨다. 이는 곤궁한 사람들에 대한 연민에 호소하지 않는다. 유용한 노동의 숙련 기술적 차원은 선행에는 반드시 자기 희생이 수반된다고 믿는 오류에 대한 일종의 경고로 기능한다. 반대로 유용성은 구체적인 대상에 초점을 맞춘다는 고유한 가치를 갖고 있으며, 이는 그러한 일을 하는 사람에게 만족감을 제공한다. 257

 

친구가 병에 걸리거나 연애에 실패하거나 경제적인 파탄을 맞았을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기 때문에, 흔히 우리가 해주는 조언은 약병을 나눠주는 공작 부인과 비슷하다. 건전한 토론이 이루어지는 경우에는 언제나 이와 동일한 차별과 포섭이라는 연극이 벌어진다. 265

 

식당에서 계산서가 나오면 누군가가 각자 음식과 술을 얼마만큼 먹었는지를 계산해서 각자가 얼마를 부담해야 할지를 결정한다. 그 순간 저녁 식사의 즐거움은 눈 녹듯 사라진다. 오히려 그런 계산을 하지 않고 돈을 낼 때, 즉 공연한 법석을 떨지 않고 일행 가운데 가난한 사람을 감춰줄 때 우리는 상대방에게 친구로서 행동하게 된다. 273

 

경제적 교환은 짧은 거래이다. 자본주의의 새로운 제도적 형태들은 특히 단기적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의례적 교환, 특히 이와 같이 비대칭적인 경우의 교환은 보다 지속적인 관계를 창출한다. 호혜적인 발화 행위는 옷으로 자여진 실과 같은 것이 된다. 모스가 프랑스에서 상상한 복지 국가는 부르디외가 북아프리카 고지대에서 연구한 의례들처럼 모호하기 때문에 계속해서 진행되는, 완결될 수 없는 사회적 기획이라는 특징을 갖는다. 277

 

의례적인 교환은 상호 존중을 구축한다. - 트로브리안드 제도에서건, 프랑스 농촌의 대저태게서건, 음악가들 사이에서건, 아니면 도시 빈민가의 거리에서건 말이다. 표현적인 교환이 갖는 이러한 힘은 너무나도 심대해서 완전히 반대쪽 방향으로 돌려질 수도 있다. 불평등이 좋게 느껴질 수도 있고 또 가난이 자연스럽게 보일 수도 있는 것이다. 표현적인 존중의 기술은 모든 표현적인 행위가 그러하듯이 정의나 진실, 선을 함축하지는 않는다...상호 존중의 기술은 그것을 실천하는 사람들에게 어떤 결과를 가져다 준다. 교환은 사람들을 외부지향적으로 만든다. 이것이야말로 인성의 발달에 필요한 자세이다. 284

 

사람은 가지고 있던 것을 갑자기 내려놓음으로써 다시 자극을 얻게 된다 진부해지는 것을 두려워한 거장인 마티스의 경우에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이러한 활동을 표현하는 상식적인 방식은 자기 시험이다. 이 경우데도 역시 표현은 단순한 동시에 복잡하다. 저항에 맞선다는 점에서는 단순하지만 시험을 계획한다는 점에서는 단순하지 않다. ‘소유의 포기라는 표현은 어떤 습관을 버리는 것, 그러면서도 외부 세계에 의해 패배한 인간이 아니라 적극적인 인간으로서 새롭고 어려운 무언가를 의식적으로 탐험하는 것을 전달하고자 함이다. 300

 

나는 이해의 조건뿐만 아니라 인성의 조건까지도, 즉 종교에 담긴 것과 같은 공유된 상징에 대한 새로운 관계만이 아니라 타인에 대한 새로운 관계까지도 구체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외부로 전환하는 행위를 선택했다. 이러한 전환이 이루어지려면 개인의 내면 깊숙한 곳에서 뭔가가 일어나야 한다. ‘외부로의 전환은 죄수가 교정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교정하는 것을 의미한다. 죄수에게 단순하게 다른 보다 나은 일련의 사회적 실천을 처방할 수는 없는 것이다. 302

 

이상적인 세계에서라면 집단들은 예기치 않은 쾌락인 호기심이나 생각지 않은 고통의 교훈을 예시하는 개인 인성의 변화에 의존함으로써 변화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이상은 멀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그 과정에서 존중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이러한 표현적인 실행이야말로 집단적인 이미지의 힘을, 사회와 우리 자신에 대한 지각을 마비시키는 암묵적인 지식의 힘을 깨뜨릴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다. 309

 

큰아버지는 쓰라린 경험을 통해 그의 시대의 조직된 좌파가 동지들 사이의 상호 존중을 가로막고 있음을 알아냈다. 큰아버지가 급진적인 동시에 인도적인 보통 사람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러한 본능적인 감정 덕분이었다. 316

 

어떤 특정한 측면에서 보면, 큰아버지가 겪은 혼란과 브로드스키가 당한 고통 모두 마르크스주의의 직접적인 탓으로 돌릴 수 있다. 이는 마르크스주의의 계급 의식에 관한 구상과 관련이 있다. 인류학자 프랭크 핸더슨 스튜어트는 이렇게 쓰고 있다. “서구에서 명예는 보통 계급 체계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계급은 의식을 수평적이 아니라 수직적으로, 즉 자신보다 위나 아래에 있는 사람을 향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마르크스주의의 공식화에서도 위나 아래에 있는 사람들에 대한 지각이 자신과 비슷한 사람에 대한 의식보다 먼저 온다. 즉 불평등이 우애보다 앞선다. 혁명의 과제는 우애를 중요하게 만드는 것이다. 319

 

계급적 명예에 대한 주장은 억압받는 집단들이 그렇게 하기 위한, 자신들의 집단적인 자아 관념에 대한 통제권을 되찾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계급 의식은 마르크주으에서 고유하게 호전적인 성격을 갖고 잇다. 다른 사람들이 자신이 서 있는 자리를 실제로 알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계급 투쟁 없이는 계급 의식이란 있을 수 없다. 계급의 적과 친구들은 파업이나 거리에서의 폭력적인 전투 와중에 진정한 색깔을 드러내게 된다. 세계 속에서 어느 개인의 실제 위치는 전투를 통해서 보다 분명하게 규정될 것이다. 319

 

계급 의식에 관한 적대적인 모델은 보로로족이 직면했던 것과 똑같은 문제, 즉 자아와 세계 사이의 관계가 마비되는 문제에 맞닥뜨린다. 암묵적인 가정과 행동을 보다 탐험적인 타인과의 관계로 양도하는 것은 어렵게 된다. 혁명적인 의지를 꺾을 위험이 있는 것이다. 욕구의 모호함, 자아의 혼란, 자신과는 다른 타인들에게 의지하는 것 이 정치학에는 이와 같은 인성의 속성들이 자리잡을 여지가 없다. 이런 속성들 또한 저항의 의지를 약화시키기 때문이다. 320

 

공산주의 운동의 역사에서 일종의 정신 분열증이 요구되었는바, 타인들에 대해 공격적이고 호전적인 동시에 동지들에게는 관대하고 서로를 의식하는 행동이 그것이다. 스페인에서 큰아버지는 개인이 정치적인 정신 분열증을 계속 유지할 수 없음을 깨닫기 시작했다. 그의 이야기는 오웰이 카탈류냐찬가에서 말한 이야기에서 한 사람의 입장이다. ‘유대를 위해서는 어쨌든 무정부주의자들과 평범한 농민들이, 심지어 견해가 다른 사제와 적군의 보병들까지도 인간적으로 연결되어야 했던 것이다. 320

 

고정된 관료제의 해체가 사람들 간에 보다 강력한 사회적 연결을 증진시키기를 기대했다. 우리의 믿음은 즉흥 연주에, 즉 클래식 음악보다는 재즈를 닮은 사회적 관계에 놓여 있었다. 결국 드러난 것처럼, 사교 재즈가 보다 많은 사교성을 가져다 주지는 않았다. 326

 

현대의 세 가지 존중의 규범 ( 성공하라, 스스로를 돌보라, 타인을 도우라 )을 퇴색시키는 불평등을 고려함에 있어 사회적인 해결책은 더욱 분명해 보인다. 잠재적인 재능에 특권을 주기보다는 서로 다른 실제 업적을 존경함으로써, 성인의 의존에 대한 주장을 받아들임으로써, 사람들로 하여금 그들 자신의 보살핌의 조건에 보다 적극적으로 참여하도록 허용함으로써 이러한 퇴색을 어느 정도 제거할 수 있다. 327

 

자율은 이해의 평등이라기보다는 누군가가 타인에 관해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타인들의 자율성이라는 사실은 자기 자신의 자율성과 동등한 것으로 간주된다. 자율성의 부여는 약자나 외부자를 존엄한 존재로 만든다. 타인에게 자율성을 부여함으로써 이번에는 자기 자신의 인성도 강화된다. 329

 

기능에 토대를 둔 자기 존중만으로는 상호 존중을 낳을 수 없다는 점이다. 사회라는 차원에서 보자면, 불평등의 해악을 공격하는 것만으로는 상호 존중을 낳을 수 없다. 사회에서 그리고 특히 복지국가에서 우리가 직면하는 문제의 핵심은 어떻게 강자들이 약자로 남을 수밖에 없는 이들에 대해 존중을 실천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음악과 같은 공연 예술은 상호 존중의 표현적 실천에서 협력적인 요소들을 드러내준다. 분할이라는 완고한 사실은 여전히 사회의 문제로 남는다. 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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