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류 - 신자유주의적 노동에 의해 공격받는 인간성

 

경영 컨설팅의 권위자인 제임스 참피는 "사람들이 변화를 갈망하는 것은 역사상 유례없이 소비자가 시장을 주도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이 같은 견해에 의하면 시장은 너무나 역동적이어서 매년 똑같은 방식으로 똑같은 일을 되풀이하도록 용납하지 않는다. 경제학자 베넷 해리슨은  이 같은 변화욕의 원천은 급속한 이익 실현을 바라는 이른바 '조급한 자본'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예컨대 지난 15년 동안 미국과 영국 증권거래소에서 평균 주식 보유 기간이 60퍼센트나 줄었다. 시장은 급속한 이익 실현이 급속한 변화가 만들어내는 최상의 결과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것이다. 27


리코는 내가 대학 교수를 일생의 천직으로 생각한다고 말하자 그는 약간 아니꼽다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컨설턴트로서 숙련된 팀 플레이어인 그는 불확실성과 모험을 도전으로 여기고 있다. 그러나 그의 이 같은 유연한 근무 태도는 아버지나 공동체 일원으로서의 역할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는 사회에서나 가정에서나 지속적 인간 관계를 맺고 싶었던 것이다. 직장에서의 인간 관계 단절, 이웃들의 의도적 건망증, 자식들의 방과 후 길거리 배회 등의 현상은 그가 강조하는 영속적인 가치의 개념과는 완전히 상반되는 것이다. 그래서 리코는 덫에 걸려버린 셈이다. 35


확실히 그는 성인이 된 이후 과거를 지킨다는 의미에서의 보수주의 경험이 별로 없다. 예컨대 그가 이사를 할 때마다 새 이웃과 동료들은 마치 그가 인생을 새로 시작하는 것처럼 대해줬고, 따라서 그의 과거는 자연스럽게 망각 속에 묻혔다. 그가 말하는 문화적 보수주의는 과거를 답습하자는 게 아니라 자신이 살아가면서 잃어버리고 있다고 느끼는 일관성을 유지하자는 것뿐이다.  35


리코는 지금까지 냉혹한 생존 경쟁 과정에서 잘 처신해왔지만 그렇다고 해서 슘페터적 인간으로 살고 싶은 생각은 없다. 리코에게 변화는 표류를 의미할 뿐이다. 리코는 자식들이 윤리적로나 정서적으로 표류하지 않을까 걱정한다. 그러나 직장 상사들에게처럼 자식들에게도 평생 교훈이 될 편지 한 장 써줄 수 없다. 그가 자식들에게 가르치고 싶은 교훈은 자신의 사리 판단과 마찬가지로 시간 제한이 있을 없는 것이다. 이는 자신의 윤리적 교훈이 모든 경우에 적용된다는 의미라고도 할 수 있다. 39

 

일상 - 구자본주의의 문제점


아담 스미스 국부론에서 - 분업이 더욱 진전되면 노동자 채용은 거의 대부분 몇 가지 매우 단순한 작업으로 국한되게 된다. 몇 가지 단순 작업을 하는데 인생을 소모한 사람은 일반적으로 인간이 저럴 수 있을까 할 정도로 우둔하고 무식해진다. 48 리코의 도덕적 중심은 단호한 의지력에 있었다. 그러나 스미스는 자발적인 동정심의 분출은 어느 날 갑자기 사회 낙오자들의 처지를 이해하고 겁쟁이와 상습적 거짓말쟁이를 측은하게 여기는 것처럼 사람을 걷잡을 수 없는 감정 상태로 몰아넣어 의지력의 둑을 넘어서게 된다고 생각했다. 동정심의 분출은 사람을 정상적인 도덕심의 경계 밖으로 몰아낸다는 것이다. 동정심과 관련해서는 예측 가능하고 일상적인 것이 없다. 스미스가 이 같은 감정 분출의 윤리적 중요성을 강조했다는 것은 당시 동시대인 중에서는 드문 탁견이었다. 49

 

유연성 - 새롭게 구조 조정되는 시간


데이비드 흄도 인간본성론에서 "내가 이른 바 '나 자신' 속으로 아주 가깝게 접근해 들어가면 언제나 열기나 냉기, 빛이나 그늘, 사랑이나 미움, 고통이나 기쁨 등 특정한 감각을 인식하지 않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런 감각은 자아를 때로는 이쪽으로 때로는 저쪽으로 구부러지게 하는 외부 세계의 자극에서 비롯된다. 애덤 스미스의 도덕 감정 이론은 이 같은 외부의 변화하는 자극을 기초로 한 것이다. 61


신자유주의라는 상표(자유주의적이라는 용어는 국가의 구속에서 벗어난다는 의식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는 종종 앵글로-아메리칸 모델에 적용되고, 반면에 '국가 자본주의'는 라인 강 모델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 71


앵글로-아메리칸 체제에서는 정치적 제한이 부의 불평등을 제한할 정도의 역할을 하지는 못했지만 완전 고용을 이루게 했고, 반면에 라인 강 체제를 적용한 국가들에서 일반 근로자들에게 보다 유리한 복지 제도를 마련하느라 새로운 일자리 창출은 뒷전으로 물러났다. 그 사회가 어떤 이득을 추구하느냐에 따라 반대로 어떤 불리함을 견뎌내야 하는지 결정된다고 볼 수 있다. '체제'라는 단어를 사용하게 된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 체제는 시장과 생산 활동이 이루어지게 하는 근원적 힘을 지칭하는 말이다. 73


해리슨은 이러한 불평등하고 불안정한 관계의 네트워크를 일컬어 '중앙 집중이 없는 힘의 결집'이라 부른다. 이러한 힘의 결집으로 조직의 위아래를 네트워크 내 여러 부분과 연결하여 재조직하는 힘이 부여된다. 이 경우 기업체 조직 내의 다양한 부서들마다 수익 목표나 생산 계획을 설정해주는 것으로 그 조종이 시작되고, 조직의 각 부서들에 적합한 업종이 지정되고 나면 각 부서들은 그 목표를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에 대해 자유롭게 결정을 내릴 수 있다. 이러한 자유가 이론적으로는 그럴듯해 보이지만, 실제로 유연한 구조의 이상을 실현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75


조직체와 개인의 시간이 과거의 철창에서 해방되었으나, 위에서 아래로의 새로운 통제와 감독의 휘하로 들어가게 되었다. 유연한 시간은 새로운 힘을 지닌 시간이 되었다. 유연성은 무질서한 듯 보이지만, 제약으로부터 벗어나는 자유는 아니다. 80


자신의 과거와 단절하는 능력과 분열을 받아들이는 자신감, 이것이 다보스의 신자유주의에 진짜 정통한 인물들에게서 나타난 두 가지의 인간성의 특성이다. 물론 그것들은 자발성을 고무시키는 특징이긴 하지만, 그러한 자발성이 윤리적인 측면에서는 반드시 훌륭한 것이라고 할 수는 없다. 자발성을 고무시키는 그러한 인간성은 유연한 체제 내의 하위층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는 오히려 자기 파괴적인 원인이 될 수도 있다. 85

 

이해 불가능성 - 현대적 형태의 노동을 이해하기 어려운 이유


유럽인들은 경제적인 면을 기준으로 계급을 나누지만, 미국인들은 종족이나 민족성을 위주로 객관적인 사회적 지위를 측정한다. ..당시 인터뷰한 제빵사들은 의사나 변호사, 교수 그리고 그 외 특권층 백인 등 엘리트들이 열심히 일하는 중산층의 독립적인 미국인들을 배려하기보다는 소위 게으로고 복지 혜택에만 의존하는 흑인들을 훨씬 더 동정하는 데 격분하고 있었다. 이러한 격분은 상류층과 하류층 모두에게로 향한 적개심이었다. 인종적인 적개심 때문에 불명료하기는 했지만 하여튼 계급 의식으로 발전할 가능성마저 무산되었다. 88


계급에 관한 옛 마르크스주의적 개념으로 본다면, 근로자들이 이러한 기능의 상실로 인해 스스로 소외감을 느끼고, 너무나 놀랍도록 변화된 작업장의 환경에 분개하는 것도 당연해 보인다. 이러한 설명에 딱 들어맞는 사람은, 관리직을 맡아 힘겹게 애쓰고 있는 흑인 점장 로드니 에버치였다. 94
빌 게이츠가 특정한 상품에 그다지 집착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현재의 신세대는 특정한 노동에 무관심하다. 즉 자신의 직업에 대한 정체성은 미약하다. 일에 대한 애착심의 결핍은 심리적 혼돈과 짝을 이루게 마련이다. 여러 언어에 능통하고 유연한 인력일수록 사회에서의 자신의 위치를 보다 더 분명히 인식한다. 97


보스턴 제과점에서 내가 접한 직업에 대한 애착심의 결여와 심리적 혼란은 유연한 작업장에서 컴퓨터라는 특수한 자산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보인 반응이었다. 저항이나 어려움이 정신적 자극의 중요한 원천이고, 또 우리가 뭔가를 애타게 알려고 투쟁할 때 더 잘 알게 된다는 점은, 보스턴 제과점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는 그다지 큰 흥미거리가 아니었다. 이러한 진리는 그들에게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그 제과점이 생산 과정에서는 어려움과 유연함이 반대입장이다...그녀는 자신의 일에 대해 피상적으로만 이해했고, 따라서 직업 의식도 희미했다. 102


과거에는 사람들을 몇 개의 사회적 계급으로 분류했는데, 현대에 와서는 일반적으로 개인의 정체성이 보다 유동적이라고 본다. '유동성'은 적응성이라는 의미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일련의 연상작용을 거치면, 유동성에는 용이함이 함축되며, 유동적인 행동에는 장애물이 없다는 전제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어떤 것이든 사용하기 쉽도록 만들어지면, 내가 묘사한 노동들에서와 마찬가지로 사용자는 연약해진다. 스스로가 하는 일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면, 일에 대한 연계나 열정은 피상적인 것이 된다....지금 중요한 것은 결속력을 대신해서 등장한 유연성, 유동성과 표면성의 연계다. 그래서 글로벌 상품 광고의 번지르르한 겉모습이나 단순한 메시지들은 우리에게 이미 낯익은 것들이고, 사용자 편의 지향적이다. 그러나 표면과 심층을 똑같이 절반씩 나누면 사용하기 쉬우면서도 한눈에 파악될 수 있을 정도로 심오한 논리를 숨기지 않는 유연한 생산 과정이 눈에 띌 것이다...모든 사람이 같은 얼음판 위에 서 있을 때, 한 사람만 규약을 위반해도, 그 얼음 표면은 전부 부서질 것이다....일에 대한 불투명한 표면성은 다보스 회의장의 열성적인 참여와 대조적이다. 유연한 체제에서라도 사회와 자기 자신을 리스크의 감행이라는 특별한 행동을 통해 '이해'하려고 시도할 수 없다. 103-104

 

리스크 - 혼란과 침체를 불러오는 리스크


로즈와 같은 중년층이 어떤 새로운 일을 위해 모험을 하려면 용기가 필요하다. 그러나 그녀가 서 있는 곳에 대한 불확실성은 그녀가 살아온 경험에 대한 부정으로 연결되어, 결국 그녀의 정신력을 좀먹는다. 그녀가 트라우트로 돌아가기로 결심한 순간 '변화', '기회', '새로운' 등의 말들이 허공에 울렸다. 모험을 감행하려는 그녀의 의도가 의외엿고 그 광고 회사 역시 의외로 유동적이고 피상적이었지만, 그녀의 실패는 유연한 세계 속에서 제대로 방향을 잡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주는 일반적인 사례다. 111


모험을 무릅쓰고자 하는 성향은 더 이상 벤처 자본가나 특별히 모험을 즐기는 개인만의 특성으로 여겨서는 안 된다. 모험이란 누구나가 매일매일 짊어져야 할 필수적인 것이다. 사회학자 울리히 벡은 "현대의 진보적 사회 구조에서 사회적 부를 생산하는 데는 사회의 모험적 생산이 수반되게 마련"이라고 말한다. 규모가 감축된 회사에서 개인의 역량을 키우는 바업의 저자는 소박하게 근로자를 정원사로 비유하고, 일이란 마치 식물을 기르듯 계속 분갈이를 하는 것과 같다고 설명한다. 유연한 체계의 불안정성은 근로자들로 하여금 '분갈이', 즉 일에 대해 모험을 감행할 필요를 느끼게 한다. 112


하여튼 그 회사 사람들은 기억력이 부족하거든요. 제가 전에 말했듯이 당신은 늘 원점에서 다시 시작하고, 매일 자신을 입증해야 직성이 풀리나봐요.. 계속적으로 모험에 노출되면 우리는 자칫 스스로 인간성에 대한 감각을 파괴해버릴 수 있습니다. 중간적 가치로 되돌아가는 것을 막을 수 있는 이야깃거리는 없습니다. 118


유연한 자본주의에서 불확실성이라는 구조적 구멍들 쪽으로 이동할 때 방향을 잡지 못하는 이유는 '애매 모호한 횡적 이동' '뒤늦게 후회하는 손해' '예측할 수 없는 수입의 변화' 등 때문이다. 당사자는 느슨한 네트워크 속에서 종적으로 (밑에서 위로) 이동한다고 믿고 있지만, 실은 횡적으로 이동한다는 것이다. 120


거대한 사회적 경제적 힘이 모험하지 않을 수 없도록 부추기며, 제도의 무질서화 경향, 유연한 생산 체계 등 물질적 현실이 사람들을 스스로 바다로 나아가 항해하게 만든다. 가만히 있다가는 낙오하기 십상이다. 그러므로 출발을 결정한 것이 이미 성취다. 변화하기로 결심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모험 감행에 관한 많은 연구에 따르면, 사람은 현재 상태에서의 이탈, 즉 변화를 처음 결심할 때 사기가 고조된다고 한다. 124


그들은 모두 스스로를 시험하는 순간이 왔을 때, 자신의 과거 경험이 중요시되지 않는다는 점을 두려워한 것이다. 137

 

노동 윤리 - 변화되어온 노동 윤리


권위 없는 권한을 통한 게임은 참으로 새로운 인간성 유형을 낳는다. 스스로를 몰아붙이는 유형의 사람 대신에 아이러니한 사람이 출현한다. 철학자 리처드 로티는 아이러니에 대해, "자기 자신을 수식하는 용어가 자주 변하고 최종적으로 선택한 용어는 우연적인 것이거나 망가지기 쉬운 것이며, 따라서 그들 자신도 우연적이고 망가지기 쉽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결코 스스로를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의 정신 상태"라고 적고 있다. 자신을 아이러니하다고 보는 관점은 권위와 책임 의식의 기준이 없이 유연하게 시대를 살아가기 때문에 나타날 수밖에 없는 당연한 결과이다. 168


팀워크 내에 포함된 권력 관계들, 즉 권위의 주장 없이 집행되는 권한은 세속적 금욕주의를 강조한 과거 노동 윤리에서 특징적으로 나타나던 자기 책임의 윤리들과도 거리가 멀다. 만족을 얻으려 하지 않고 고된 노동을 통해 자아를 증거하는 고전적 노동 윤리는 자신의 취향을 거의 드러내지 않는다. 그러나 팀워크는 그 자신의 허구들과 공동체의 위장술을 사용하여 더 강력한 주장을 펼 수 있다......팀워크라는 새로운 집단 정신은 그 체제의 고용인들과의 진실한 계약을 교묘히 빠져나가는 '조정자'와 '작업 관리자'를 만들어낸다.,,삶의 역사를 어떻게 구성해야 하는가 하는 딜레마는 오늘날의 자본주의 속에서 사람들이 미래에 대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를 예측해봄으로써 부분적이나마 명확해지리라 본다. 169-170

 

실패 - 실패에 대처하는 법


자기 자신이 어떤 행동의 대상이 되고, 자신이 그 행동에 적용되는 영역이며, 자신이 사용하는 도구이고 동시에 행동하는 주체라고 한다면, 과연 어떻게 '자기 자신을 다스릴 수 있을까?'...그들이 취한 행동은 서로의 실패담을 털어놓는 것이었다. 그것은 실제적 행동이라고 볼 수 있다. 그들은 각자의 실패를 털어놓음으로써, 이른바 실패에 관한 터부를 깨고 표면으로 드러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그들이 대화로 터부를 깨는 방식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190..고통을 제거하는 일이 체념고 전혀 무관하지는 않을 듯싶다. 체념한다는 것은 객관적 현실으 무게를 인정한다는 뜻이다. 196 서로 실패에 대해 토론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더욱 일관성있는 자아 감각과 시간 개념을 찾아내는 방법을 발견한 프로그래머들이야말로 월터 리프먼이 감탄했던 그런 유형의 사람들이다. 보다 넓은 공동체 의식, 그리고 더 풍부한 감각의 인간성이야말로 현대 자본주의에서 점차 늘어만 가고 있는 실패할 운명에 처해 있는 사람들에게 요구되는 덕목이다. 197

 

우리, 그 위험한 대명사 - 표류하는 삶을 구조하는 수단


신자유주의의 영역 밖에서 그 작용을 통제하려는 노력은 하나의 다른 합리성을 지녀야만 한다. 즉 그 기업이 지역 공동체에 어떠한 가치를 지니고 있으며, 자체의 손익 계산보다는 시민의 이해게 기여할 수 있는지를 반드시 짚어보는 자세가 필요하다. 외적인 행동 기준을 부과하면 종종 내적 개혁이 시작된다. 글로벌 망의 세계는 형태가 일정하지 않고 지속적이지 못하기 때문에, 기업 외부 공동체의 책임 있는 행동 표준이 그 기업체에 대해 '여기, 당신이 있는 그 자리에서, 바로 당장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해 염두에 두도록 한다. 200


장소는 지리적이며 정치적 목적을 지닌 위치다. 지역 공동체는 장소의 사회적 개인적 반경을 환기시킨다. 장소는 사람들이 '우리'라는 대명사를 붙여 사용할 때, 하나의 공동체를 뜻하게 된다. 이런 식의 표현은 지역적 애착심은 아닐지라도 애착심을 요구한다. 한 국가는 그 안에서 사람들이 날마다 실천을 통하여 믿음과 가치를 함께 구현할 수 있을 때, 하나의 공동체가 된다. 루소는 정치 행위들이 이러한 일상의 생활 의식들에 얼마나 깊이 기초를 두고 잇고, 정치가 공동체의 '우리'에게 얼마나 많이 의존하고 있는가를 이해한 최초의 근대 사상가다. 현대 자본주의는 의도하지 않았지만 장소의 가치를 강화하고 공동체에 대한 갈망을 불러일으켰다. 우리가 작업장에서 탐사한 모든 감정적 조건들이 그런 욕망을 자극한다. 이 모든 조건들은 사람들로 하여금 뭔가 깊이 있고 전념할 만한 다른 것을 찾도록 강요한다. 200


책임감과 인간성의 자아-유지에 관한 레비나스의 생각은 다시 철학자 폴 리쾨르에 의해 보다 정교하게 다듬어진다. "누군가가 나에게 기대하고 있기 때문에, 나는 다른 사람 앞에서 나의 행동에 책임을 지게 된다."....유연한 자본주의에서 확산되는 무관심은 더 개인적이다...212-213

 

철학자 한스 게오르그 가다머는 "우리 자아는 그 자신을 소유하지 못한다. 자아란 오히려 생성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고 했다. 자아는 시간의 사건들과 역사의 조각들에 종속되어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개인의 자아 의식은 역사적 삶으 폐쇄 회로에서 찾을 수 있는 하나의 깜빡거림일 뿐이다."라고 선언한다. 이것은 현대 자본주의에서으 인간성의 문제를 보여준다. 역사는 있되, 어려움을 공유한 이야기는 없고 함께 한 운명도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인간성은 점차 파괴되어간다. '누가 날 필요로 하겠는가?"라는 질문에 정답을 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214

 

산악 도시 다보스이 도로에 늘어선 리무진들과 경찰의 행렬을 뚫고 회의장을 드나들면서, 나는 이러한 체제는 적어도 그 산 아래 사는 사람들의 상상력과 감성에 대한 지배력만큼은 놓치고 있다고 생각했다. 또한 나의 가족들이 겪어온 쓰라리고 변화 무쌍한 과거를 통해서 깨달은 사실은, 변화는 땅에서, 집단적인 봉기를 통해서라기보다는 개인들 사이에서 심리적 필요에 의해 말로 터져 나오리라는 것이다...그 정치적 프로그램이 무엇인지 아는 잘 모른다. 다만 나는 우리가 왜 인간적으로 서로를 보살피며 살아야 하는지 그 소중한 이유를 제시해주지 못하는 체제라면 자신으 정통성을 오래 보존하지는 못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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