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옛친구가 투명한 보라색 장식이 달려있는 머리끈을 주어서 건네받는다. 같은 색상의 귀걸이나 보석모양 소품들이 주변에 반짝거린다. 많은 사람들과 행진을 하고 있는 듯, 곁에 아는 지인이 시샘을 한다. 어느 사이엔가 버스안인 듯, 다정하게 걷고 있는 것 같은데 품을 기대고 있는 듯 포근하다. 건네준 선물을 오른 팔목에 차니 밴드같이 탄력성있는 끈과 전자시계이다. 왼쪽 팔목에 보라색 장식이 달려있는 끈을 둘러묶으니 그러지 말라고 한다. 그러지 말라는 각인과 함께 어느새 버스는 내리막을 위험하지 않게 사뿐한 기분으로 달린다. 멀리 직선주로가 보이고 어스름이다. 조금이라도 꿈이 길면 좋으련만 그 꿈에서 깨어났다. 잠시 뒤 왠지 모를 불안감이 휩쓴다. 가까운 이들에게서 무슨 일이 생길 듯이 말이다.

 

2. 며칠 전 새벽, 이것이 끝이라고 생각하겠지만...자꾸 꿈속에서 문구를 고쳤다. 그래 이렇게 하고 말꼬리만 달리 표현하게 되면 이 터널은 어찌해도 지나게 되는 것이다. 라구 되새겼다. 꿈 속은 전혀 꿈속이지 않았고 현실과 그 경계에 있었다. 꿈 글을 남겨야 된다고 했지만 막상 이렇게 시간이 지나니 느낌만 남고 증발해버렸다.

 

 

3. 윤여일샘이 시간이 되어 대전에 머문다는 얘길 듣고, 아카데미에서 강독 모임을 갖게 되었다. 휴가 전날 서둘러 출발해서 늦은 시각 함께 할 수 있었다. 강독 모임과 관련된 뉴스레터 이야기가 끝나고, 루쉰과 다케우치 요시미의 차이점이 무엇이냐는 궁금증을 던진다.  루쉰의 절망이 그래도 대국의 기질과 끊임없는 자성에서 그 역할을 찾았다면, 다케우치 요시미는 좀더 각박하다고 해야할까? 답에 대한 정확한 기억은 없고, 답에 끄덕였던 느낌만 남아있다.  텍스트를 읽고 번역자, 비평가, 공작자의 시선으로 되감아 읽는다는 표현이 무엇인지 알 수 있게 된다. 일상을, 사람에 대해 한가지 시선이 아니라 겹시선을 가지고 본다는 것이 무엇인지 새삼 느끼게 된다. 홍콩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박은석샘이 코멘트해준 중국과 한국, 일본의 차이도 다가선다. 대국의 기질을 갖는다는 것과 주변인, 섬의 위치에 있으면서도 자각하지 못하는 우리, 그리고 또 다른 경계로서 일본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을 섞는 자리가 되었다. 의도하지 않은 기분 좋은 만남. 텍스트와 독서 방법들에 대한 수다. 선질문에 대한 또 다른 바깥읽기가 곁들여진다. 기록이 되어 남았으면 하는 아쉬움도 함께 인다.


 

4. 아카데미 후원회 일로 노조위원장인 지인을 찾아간다. 선약을 해놓고 그 시간에 일어나 주섬주섬 콜을 하다니, 말복이라 점심 약속이 되었다고 한다. 부리나케 택시로 이동해서 이것저것 얘기를 나눈다. 요즘 무슨 책을 읽으시나요. 진보관련 책들을 읽고 있다고, 보관함에 넣어두고 사지 않을 수가 없다고 답한다.  점심을 같이하고 반주겸 이야기를 나눈다. 쓴소리 마왕의 저력은 잔술에 살아난다. 영업하러 왔으면 명함도 돌리고 해야지 사무국에서 이러시면 안되는 것 아니냐구 건넨다.  우리는 컨셉이 이렇다구 불쑥 회원가입서 내밀고 한다구 말을 건들여보지만 힘이 없다. 박*해보다 더 많은 책을 읽었으리라. 속도 더 깊을 것이다. 숨은 보물들은 많은데 참 방법이 마땅치 않다.

 

 


 

5. 나만봐달라고 때쓰는 어른이 태반이다. SNS에는 차고 넘쳐서 유치원은 아닐까하는 착각이 든다. 관음증과 노출증의 경계에 있는 사람들 말이다.  상처를 딛고 일어서지 못한다. 상처를 툴툴 털고 쓱쓱 다른 일을 벌이고 해나가지 못한다. 매번 그 사람들에 얽매여 제발 바라만 봐주세요를 연발한다. 상처가 아프다고 호 해달라고 한다. 순수하고 좋은 사람은 일을 벌이지도 벌이고도 수습하지 못한다. 아이이다. 순수하고 때가 묻지 않았을 뿐 아무 것도 해나가지 못한다. 몇번의 매듭과 상처를 상처로 보고 쓰라림을 부여안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모든 시선을 자신의 중심에 두거나 보게 만들거나 그 자장안에 움직이게 한다. 그 시간에 성큼성큼 일을 밟고 나아가거나 나만이 아니라 다른 너에게 붙임성있게 다가가 너를 섞거나 달라지면 좋겠다. 움직이는 동선마다 응석이 널려있어 보기 애처롭다. 나란 인간이 소중하니 이것저것 널려진 것, 잘못행해진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 일을 주섬주섬 쓸어모아 합리화시키기에 여념이 없다. 단자로서 개인만 추구하니 같이 붙어있는 너는 영쓸모가 없다.  유일자인 나는 너와 함께 해놓은 일이 많은데, 그 과정도 무용하다.


 

6. ' 가끔 화가의 작품보다 그들의 삶을 들여다보면 전율이 느껴질 때가 많다. 작품을 위한 열정만이 아니라 작품을 위해 갖고 있는 것을 버리며 심지어 목숨까지 아무렇지 않게 대하는 걸 보면서 존중이나 껍질같은 형용어가 다 필요없음을 느낀다. 날 것으로 대하는 님들이 늘 김수영보다 더 강열하게 다가온다. 그래서 가끔 책이 싫다. 그리고 가끔 등잔 밑의 친구들이 그립다. 몹시 ᆞᆞᆞ' - 미술사 강연을 참관하고 뒤풀이 자리에서 함께 얘기를 나눈다. 참 좋아하는 작가들이 다시금 묻어나온다. 그래서 조금은 목소리도 떨리고 마음도 들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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