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멍게

멍게는 다 자라면 스스로 자신의 뇌를 소화시켜
버린다. 어물전에선

머리 따윈 필요 없어. 중도매인 박 씨는 견습인 내
안경을 가리키고

나는 바다를 마시고 바다를 버리는 멍게의 입수
공과 출수공을 이리저리

살펴보는데, 지난 일이여. 나를 가만두지 말길. 거
대한 입들이여.

허나 지금은 조용하길. 일몰인 지금은
좌판에 앉아 멍게를 파는 여자가 고무장갑을 벗고

저녁노을을
손바닥에 가만히 받아보는 시간

 

 2

 

 

액체근대를 살아간다는 것은 우리가 세 가지 조건 속에 내던져진다는 뜻입니다. 첫째, 우리는 불확실성 속에서 살아가야 합니다. 둘째, 예측하려 하지만 원칙적으로는 결코 측정되지 않는 지속적인 위험 속에서 살아가야 합니다. 삶에는 늘 감당하기 힘든 변수들이 있기 마련이지요. 셋째, 신뢰의 위기 속에서도 과감히 행동할 수 있어야 합니다. 지금은 믿을 만한 일들이 미래에는 비난받거나 배제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것들은 비단 일의 영역뿐만 아니라 삶의 모든 곳에 적용되는 진실이기도 하지요. 이제 우리는 개인의 어깨에 지워진 책임의 무게를 넘어, 자기 결단과 해방의 자유, 거대한 위험을 기꺼이 감수하고자 하는 의지, 그리고 공동의 노력을 향한 책임의 '통각'을 길러야 하는 것입니다.  17


거대 기업들의 총수들은 회사를 파산시키고도 거액의 퇴직금을 챙기고 책임을 회피하려 도망치는 모습을 늘 목격하고 있지 않습니까. 책임이 표류하고 있으며, "책임이 주인을 잃어버렸다"고 노골적으로 비판을 하기도 합니다. 그 누구도 사회적 문제에 대해 책임을 지려고 하지 않습니다. '액체근대' 속에 내던져졌다는 미명 하에, 이러한 책임의 부재는 더욱 명백하고 분명한 진실이 되고 있어요. 먼 옛날, 집단적 실천을 꾀했던 이들의 과제는 약자들에게는 제한된 선택권을 주면서 책임의 무게를 그들의 어깨로부터 덜어주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은 정확히 그 반대가 되었지요. 따라서 힘없고 소외된 약자들은 자기 결단과 해방을 무기로 삼아 거대한 위험을 무릅쓰고자 하는 책임의 소명을 발명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22

 

새로운 시대에는 이전과는 다른 삶의 양식과 사회적 비전이 필요하지요. 그리고 진정한 배움이란 실패의 위험을 감수하는 결단이며, 견고한 지평을 뒤흔드는 도전이어야 합니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바로 이 지점에 희망이 자리하는 것입니다. 22

 

3

 

68혁명 당시 우리는 자유로운 몸을 발견했다고 생각했지만, 바이마르 시대 독일에서도 똑같은 감각숭배가 벌어졌고, 사실 르네상스 시대의 베네치아로까지 그 연원을 추적할 수 있다...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감각적 해방은 무척 부르주아적인 자유 개념인 듯하다. 여느 쇼핑처럼 감각을 소비하는 것이다. 자신의 느낌을 '접촉하는 것'은 청소년기의 충동이다. 이것은 진지한 변화를 이루기 위한 지속 가능한 처방이 아니다. 따라서 [무질서의 효용]에서 나는 다른 심리적 발달 경로를 만들어내려고 노력했다.

 

청소년기는 필연적으로 젊은이가 자신이 사는 세계를 많이 경험하기에 앞서 그 세계를 정의하고 판단해야 하는 시기이다. 청소년의 정체성은 경직된 상상 속 구성물이 되기 쉽다. 그러므로 성인의 경험을 하면서 이런 경직성을 풀어헤쳐야 한다. 인간은 복잡다단한 경험을 하면서 절대성과 확신을 누그러뜨려야 한다. 의심이 해방의 조건이 된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이다....

 

자본주의의 승리와 더불어 새롭게 등장한 도시 생활에서는 경제적, 민족적, 인종적 혼합이 가차 없이 분리되고 격리된다. 그리고 신기술이 낳은 새 상품들이 넘쳐나는 덕분에 도시 중산층은 소비가 제공하는 심리적 기대를 점점 더 키운다. (아이폰이 약속하는 자기실현이 누드 수영을 하면서 얻는 자기실현보다 더 좋은지를 판단하는 일은 독자의 몫으로 남기겠지만) 사회적으로 분리되고 감정적으로 피상적인 경험을 아무리 많이 하더라도 우리는 어른의 세계관을 갖지 못한다. 10-13

 

 

 

 

뱀발.

 1.  주말 아이들과 함께 있으며 식객을 번갈아 본다. 웹툰에 익숙한 막내녀석두 푹 빠진다 싶다. 이야기와 수다를 좋아하는 막내는 내꽈가 아니다. 공부에는 영 관심이 없지만 통증으로 인해 마음이 짠하기도 해 덩치 큰 녀석을 안고 보듬어 준다.  내려오는 길 서점에 들러 백석 시 정본과 몇권의 책을 함께 보기 시작한다. 

 

2. 바우만은 리차드 세넷을 언급하고, 리차드 세넷은 이 책이 1970년에 쓴 논문이라고 하는데 다시 서문을 쓰며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한다. 대중을 설득하기 위한 언어와 노력을 다시 상기시켜 준다.  도시는 열려있지 않기에 사람들을 어른으로 만들지 못한다고 한다. 같은 무리들끼리 모여살 뿐,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못하는 숙맥제조기일 뿐이라고 말이다. 기괴한 삶은 여전히 지금 여기에서 이어진다.  바우만는 책임지지 않는 사회를 다시 한번 되짚고, 희망이 머무는 자리를 다시 한번 새긴다. 절망과 같은 자리에 서있는 희망에 다시 한번 말을 건다. 깊이 있는 배움이 한주 머무르면 좋겠다 싶다.

 

3. 성윤석시인의 시를 음미하고 있다. 페북으로 알게되었지만, 생선가게를 하며 쓰는 작품과 이력에 관심이 가 이렇게 사보고 조금씩 맛보고 있다.  멍게는 탐험을 하다시피 살면서 성체가 되면 바위에 정착해서 신경절의 필요도 느끼지 못해 자신의 뇌를 먹는다고 한다.  자본주의나 이 사회는 어쩌면 애초의 통각을 죄다 잃어버린 멍게가 되어버린 것은 아닐까?  무엇을 느껴야 어떻게 진화해야 되는지 아예 잊어버린 듯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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