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적 자본주의인가, 지역적 계획경제인가 외 책세상문고 고전의세계 15
칼 폴라니 지음, 홍기빈 옮김 / 책세상 / 2002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사랑받는 것들이 있다. 칼 폴라니의 책은 과거보다 오늘날 더욱 부각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특히 어린 시절부터 지나친 경쟁에 익숙한 삶을 살며 미국과 특별한 관계(?)를 유지해 오고 있는 우리에게 그가 오래 전 남긴 이야기는 시간의 흐름에도 불구하고 귀 기울여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그의 이름을 처음 접한 것은 ‘경제사회학’이라는 과목을 통해서였다. 경제행위는 시장 질서 속에서 완벽하게 합리적인 결정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회환경적 요소의 제약 속에서 이루어진다는 사회적 배태(embeddedness)의 개념을 주창하고 있는 그. 경제학자로 보아야 하는 것일까. 아니면 사회학자일까. 그것은 맑스를 두고 경제학자인가 사회학자인가 혹은 정치학자인가를 고민하는 것과도 같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폴라니를 맑스와 비슷한 이라고 정의내리고 싶었다.

그는 경제학자였지만 결코 시장질서를 신봉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주류라고 이야기할 수는 없을 듯 했다. 그는 경제학에서의 통계는 현실에 대한 외적 정보만을 제공할 뿐이라고 보았다. 그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생산의 실질적인 과정에 참여하는 이들의 노고에 대한 이해였다. 이와 같은 그의 생각은 노동으로부터 인간이 분리되어서는 안 된다는 맑스의 신념과도 그 맥을 같이 한다고 하겠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경제결정론에 대한 비판을 가하고 있는 폴라니의 견해는 하부구조를 중시한 맑스와는 또 다른 측면을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전 세계적 자본주의인가 지역적 계획경제인가’는 소비에트 연방이 붕괴하고 미국 중심의 자본주의 경제질서가 전 세계에 만연하고 있는 현실과 조금은 동떨어져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의 날카로운 분석틀을 느낄 수 있었다. 그의 이중적 운동에 대한 분석은 유럽에 도래할 파시즘에 대한 예측을 가능케 했다. 어쩌면 그는 영국이 지역적 고립주의 정책을 포기하고 미국과의 불평등한 공조를 추구하기 시작하는 그 순간부터 현재의 무한경쟁체제를 예견하고 있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는 지역에 기반한 고립적 경제 블록의 형성이 경제적 안정의 원천이라고 이해하고 있었다. 트로츠키의 혁명 노선이 스탈린의 혁명 노선 앞에서 무릎을 꿇을 수 밖에 없었던 것 역시도 보편주의에 대항한 지역주의의 승리였다고 저자는 보고 있었다. 심지어 그는 유고 연방의 티토가 고립주의 정책을 시행함으로써 시장에 매몰되지 아니하면서 동시에 경제적으로 성공을 거둘 수 있을 것이라고 예측하기도 했다.

물론 이러한 그의 분석은 오늘날 결코 옳다고 말할 수 없다. 그가 희망을 발견했던 유고 연방과 소비에트 연방은 붕괴하였으며, 영국은 오늘날 미국의 최고의 우방국가 중 하나로 변모해 버렸다. 세계화의 질서 속에서 어떠한 보호주의 무역도 허용치 아니하며, 자국 내의 복지 역시도 생산효율성을 저해하는 요소로 이해되기까지 하는 오늘날 지역적 계획경제는 더 이상 존립할 수 없다. 오히려 보복적 무역관세로 인한 경제 침탈을 겪거나 현실감각이 없는 국가로 타 국가들에 의해 낙인찍힐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 합당치 않다는 이유로 그의 분석을 모두 매도하거나 버려야 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의 분석 안에는 시장 만능주의에 대한 비판이 살아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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