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천지현황, 우주 ㅡ 묵자님의 말씀이라는군요. 그의 시간관과 생명론은 놀랍습니다. 미래와 과거가 뒤섞여있고 생명은 미래와 마주침이다. 죽음은 운동이 멈췄을 뿐이다. 시간은 화살이다라는 직선의 시간은 부드럽지도 삶을 어루만져주지도 기대지도 못하게 하죠. 시간도돌고 공유하고 나눠쓰는 것이라면... 그러고보니 많은 생명을 많은 미래를 잃어버렸군요. 여전히 꿈이 칼끝같은 나날입니다. ㅡ그러고보니 기세춘선생님의 뫔동작이 살아있네요. 하나라도 더 전해주려는 마음이 말입니다.

 

 

 

 

 

 

 

 

2.

 

며칠 전 식당에서 피곤을 안주삼아 탕을 한그릇시켰다. 부추 간은 짜고 탕은 밋밋하다. 앞, 정수장학회 달력엔 박근혜대통령이 시진핑과 악수하는 장면을 그의 부인이 존경어린 모습으로 보고있다. 미닫이 출입문 옆에는 박(정)희전대통령과 노란한복의 육영(수)여사가 나란히 찍은 사진이 액자에 걸려있다. 정수장학회 지부장인 혈색좋은 주인할아버지 사진이 나온 신문코팅본과 기념패들이 훈장처럼 즐비하다. 또 한편에는 휘호처럼 김대중전대통령의 조국통일 이란 붓글씨가 액자에 보관되어 있다. 양파 좀 더 주세요라고 하자 무뚝뚝한 아들은 자리를 비워 없고 할어머니가 주방홀에서 담겨있던 양파 몇쪼가리를 건네었다.

 

 

3.

 

살구나무 그늘로 얼굴을 가리고, 병원 뒤뜰에 누워, 젊은 여자가 흰옷 아래로 하얀 다리를 드러내놓고 일광욕을 한다. 한나절이 기울도록 가슴을 앓는다는 이 여자를 찾아오는 이, 나비 한마리도 없다. 슬프지도 않은 살구나무 가지에는 바람조차 없다.

 

나도 모를 아픔을 오래 참다 처음으로 이곳에 찾아왔다. 그러나 나의 늙은 의사는 젊은이의 병을 모른다. 나한테는 병이 없다고 한다. 이 지나친 시련, 이 지나친 피로, 나는 성내서는 안 된다.

 

여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옷깃을 여미고 화단에서 금잔화 한 포기를 따 가슴에 꽂고 병실 안으로 사라진다. 나는 그 여자의 건강이ㅡ아니 내 건강도 속히 회복되기를 바라며 그가 누웠던 자리에 누워본다.

 

윤동주, [병원]

 

ps. ᆞᆞᆞ성내서는 안된다. 그가 누웠던 자리에 누워본다. 그녀가 누웠던 자리에 ᆞᆞᆞ

 

 

4.

 

 어둠 속에서도 불빛 속에서도 변치않는
 사랑을 배웠다 너로해서

 

 그러나 너의 얼굴은
 어둠에서 불빛으로 넘어가는
 그 찰나에 꺼졌다 살아났다
 너의 얼굴은 그만큼 불안하다

 

 번개처럼
 번개처럼
 금이 간 너의 얼굴은

 

 김수영, [사랑] 1961

 ps. 벌써 두달이 흐른다. 너를 부여잡고 ᆞᆞ

 

 

5.

 

첫차를 놓치다 ㅡ 이른 시각 빵집은 문을 연다. 30여분전 부산스럽게 준비하는 일손이 바쁘다. 28-9분 '재미있게ᆞ ᆞ' 라는 구호제창과 함께 30분 업무가 개시된다. 사무적으로 묻는다. 도통 알아들을 수 없어 그냥 바쁘다는 표정으로 '네'했더니 의도와 달리 차근차근 예를 갖추고 주섬주섬 섞어준다. 헐레벌떡 뛰다보니 사무적인 역무원이 말한다. 먼저 움직였습니다. 다음차를 타셔야합니다. 일찍 도착한 다음차의 손님은 화들짝놀라 어떻게 일찍도착하지란 표정으로 내립니다. 사무보러가는 길 사무적이지 말아야지 애걸복걸하지 말아야지 바쁘게 살지 말아야지 다짐 비슷한 걸 해봅니다. 어젯밤 느티나무도 바람도 참 좋았는데 하면서 ᆞᆞᆞ

 

 

뱀발.  집안일로 어제 하루 휴가를 낸다. 잡지 원고를 보고 출판할 곳 분들과 식사를 함께하고 바람 좋은 곳에서 담소를 나눈다.  혁명을 말못하게 하는 유럽의 사상가들을 이야기하고, 겉멋만 잔뜩 든 인문학을 이야기한다. 도통 옆집의 살림살이에 무지한 인문학의 유행에 대해서 나눈다. 더 이야기하고 진도를 나갈 수 있음에도 그러지 못한 현실에서 김수영의 현대식 교량이란 시가 접힌다. 약간의 취기와 약간의 이른 일상을 안고 일터로 나선다. 혁명을 이야기하고 작품활동을 하기로 한다. 두 편의 시는 민예총 작년 강연 자료집에서 가져온 것이다. 돈이 있는 사람은 돈을, 지식이 있는 사람은 지식을....로 시작하는 문구도 묵자에서 비롯된 것임을 이제서야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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