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꽃이 굵은 비처럼 후두둑 나린다. 숲그늘을 따라 거닌다. 안경을 두고 걷는다. 걷다보면 흐릿한 풍경 속에 꽃내음이 꽃보다 먼저 코끝에 닿고, 호하고 후하다보면 소리가 먼저 귀에 듣는다. 문득 앞을 보지 못하는 사진사가 생각이 난다. 그는 아마 소리나 향기가 나는 방향으로 마음을 쫑긋! 그 향기와 소리를 찍어두었을 것이라고... 겉모습에 취해 가까이 있는 내음도 맡지 못하고 듣지도 못하는 정상이 정작 시각장애자라구 ...다 봤다고 다안다는 시각장애자가 득실거려 여전히 이러하다고... 꽃향기가 안개처럼 마음에 내린다.

 

 

 

1. 길섶을 돌아서자 청춘은 서럽고 깊은 우울이 눈가에 맺혀 슬프다. 김수영의 시가 눈물에 흐릿하다. 바꾼 것이라고는 달랑 방안의 좌탁 위치만일뿐. .. 역사의 울분을 넘어 역사를 바꾸었다는 날인 3.1운동과 6.10 만세운동은 고종과 순종의 장례날로 국민의 슬픔이 넘쳤지만 제도와 시스템은 더 들썩이기만 할 뿐 정작 바뀐 것은 별반 없는 날이기도 하다.

 

2. 역사에서 왔다고 하는 날도 이러한데 백년 뒤의 촛불과 지금의 슬픔도 이러한 것같아 서글픔이 복받친다. 역사에서 '온 날'은 한번도 없었다. 뒤돌아서면 그 제도와 시스템의 관성은 그저 화장이나 고치고 화장대 위치만 바꿀 것이다. 더구나 제도안을 바꾼다는 정치인이라 주장하는 이들 가운데 안전의 맥락과 호흡도 없이 그저 제도에 기대 해쳐먹는 일밖에 관심이 없다는 것이 여실히 드러났고, 주*현이란 교수의 인지능력을 고마워해야 하는 개인,단체의 무지와 무능을 내재한 사후뒷방문도 그러하다.

 

3. 살아있는 자가 죽을 차례라는 비참을 겪어낼 수 있을까? 시의원이라면 구청장이라면 시장이라면 단체활동가라면 단체회원이라면 최소 안전불감의 시스템 ㅡ 실험하다 죽고 일하다가 여행가다 다치고 지하철로 비가 많이와서 눈이많이 와서 숱한 ' 와서 '에 대해 " 알고 느끼고 몸에 배이고 확인하고 한 사람이라도 덜 죽게 " 할 수 있을까. 무지와 무능이 슬픔과 함께 사라지는 것은 아닐까.

 

4. 제사준비하는 딸래미의 일상보다 사내아이의 간만의 분주한 도움?에 넋을 잃고 칭찬하는 어른들에겐 칭찬의 주체로 딸은 없다. 딸의 눈물과 슬픔은 여전한데 기제사는 지나갔다. 내가 그런 아빠여서 미안하고 슬프다.

 

5. 제사처럼 내년도 명절도 어김없이 올텐데 우리집은 우리 마을은 구는 시는 저 섞어문드러진 제도와 관성으로 눌러앉은 것들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걷어낼 수? 어떻게하면 푸념같은 것이 사라지게 ᆞᆢ 희망보다 절망이 문을 두드린다. 톡ᆞᆞᆞ

 

 

 

뱀발. 내상이 밖으로 필 것 같다. 햇살 많이 보고 쬐고 돌아다녀야지. 힘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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