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일본에서는 우리 국민들이 자신의 생활과 실천 속에서 제도를 만들어낸 경험이 부족합니다. 역사적으로 보더라도 대부분의 근대적인 제도는 이미 만들어진 것으로 도입되었으며, 그 틀에 따라서 우리의 생활이 규제되어온 것입니다. 그래서 자연히 먼저 법률이나 제도의 원칙이 있고 그것이 생활 속으로 내려온다는 실감이 강하게 뿌리를 내리고 있으며, 그와는 반대로 우리의 생활과 경험을 일정한 법이나 제도의 설립을 요구하거나 그것을 바꾸어간다는 발상은 쉽게 퍼지지 않습니다. 게다가 본래의 관료적 사고양식이 그런 경향에 박차를 가하게 됩니다.(중략) 제도의 원칙 논리는 구체적인 정책 ->법의 시행->국회의 다수결->국민 다수의 의사와 같은 '수미일관'된 환원론법에 의해서, 정책을 실시한 경우의 구체적인 효과에 대한 주도면밀한 측정이나 끊임없는 검증이라는 문제를 단번에 뛰어넘어버리는 것입니다.  256-257

 

2

 


'이다'사고와 '답게'도덕이 강한 사회에서는, 자칫 '작용'의 구별이 오로지 특정한 인간이나 집단의 구별에서 나오는 것처럼 생각됩니다. 다시 말해서 문화활동은 '문화단체'나 '문화인'에게, 정치활동은 '정치단체'나 정치가에게 각각 환원되어버리기 때문에 문화단체인 이상, 정치활동을 해서는 안된다. 교육자는 교육자답게 정치에 입을 열어서는 안된다는 식으로 생각하기 쉬운 것입니다. 그런 경향이 극심해지면, 정치활동은 직업정치가의 집단인 '정계'의 전유물이 되고, 정치를 국회 안으로만 몰아넣게 됩니다. 그러므로 그것 이외의 넓은 사회의 장에서 정치가 이외의 사람들에 의해 이루어지는 정치활동은 본래의 나눠진 권한을 넘어선 행동 혹은 '폭력'처럼 간주되기에 이릅니다.

 

그런데 말할 것도 없이 민주주의란 본래 정치를 특정 신분의 독점으로부터 널리 시민에게까지 해방하는 운동으로 발달한 것입니다. 그리고 민주주의를 짊어지는 시민의 대부분은 일상생활에서는 정치 이외의 직업에 종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민주주의는 조금 역설적인 표현입니다만 비정치적인 시민의 정치적 관심에 의해, 그리고 '정계' 이외의 영역으로부터의 정치적 발언과 행동에 의해 비로소 지탱될 수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입니다.  258-259

 

3

 

정치나 경제의 제도와 활동에는 학문이나 예술의 창조활동의 원천으로서의 '고전'에 해당되는 것은 없습니다. 기껏해야 '선례'와 '과거의 교훈'이 있을 뿐이며, 그것은 양자의 중대한 차이를 암시하고 있습니다. 정치에는 그것 자체로서의 가치같은 것은 없습니다. 정치는 어디까지나 '과실'에 의해 판정되지 않으면 안됩니다. 정치가나 기업가, 특히 현대의 정치가에게 '무위'는 가치가 아니라 오히려 '무능'과 연결되어도 어쩔 수 없는 말이 되어버렸습니다. (중략)

 

 문화적인 정신활동에서는 휴지가 반드시 나태함은 아닙니다. 거기서는 흔히 '휴지'가 마치 음악에서의 쉼표처럼, 그것 자체로 '살아있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세계에서 명상이나 고요함을 예로부터 높이 평가해온 것은 그만큼 근거가 있으며, 반드시 그것을 시대에 뒤떨어진 사고방식이라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문화적 창조에서는 오로지 앞으로 앞으로 진전하든가, 끊임없이 바쁘게 일하고 있다는 것보다도 가치의 축적이라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265-266

 

4


"자유를 축복하는 것은 쉽다. 거기에 비해 자유를 옹호하는 것은 어렵다. 그러나 자유를 옹호하는 것에 비해서 자유를 시민이 매일매일 행사하는 것은 더욱 어렵다."  자유는 장식물처럼 거기에 있는 것이 아니라, 현실의 행사에 의해서만 지켜집니다. 바꾸어 말하면 매일매일 자유가 되고자 하는 것에 의해 비로소 자유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239

 

 

 

볕뉘.  우리나라 사람들은 참 마음도 좋다. 정치행태에 대해서 다 이해해주고 감싸버린 기억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정치를 결과로 이야기하지 않고 팬심이나 우리편이라는 정파심에 따른 동정까지 고려하니 말이다.  정치라는 것도 대행하거나 씹거나 욕하는 비난과 비평만이 존재할 뿐, 어떻게라는 어떻게 해야되는지는 생각해본 적이 없다. 차라리 대행하는 보험은 그래도 수지타산을 맞추려하지만 말이다. 서구에서 들여온 헌법과 법률이란 것도 서구에서 300년 동안 피로 이루어낸 것을 빌려써서 별 말이 없다. 우리에게 맞는 틀이나 제도를 요구해야 한다. 만들어야된다는 감각은 더 더군다난 없다는 것이다. 헌업이라는 틀과 제도라는 외피 사이에서 동아시아사상가들은 많은 고민과 실천, 그 뿌리는 아직까지 이어지고 있다. 미래는 어쩌면 안고 품은 과거에 있다는 말이 틀리지는 않을 것이다.  위의 발췌는 학계의 천황이라 불리우는 마루야마 마사오의  [일본의 사상] 마지막 장 "이다라는 것과 하다라는 것" 의 강의록의 일부분이다.  명사형, 동사형도 떠오르긴 하지만, 정치습속에 대해 잘 짚어놓아 옮겨본다.

 

 

 책을 수중에 넣었다. 이땅의 민주주의는 참 너무도 많은 피를 먹고 자라는 것 같다. 자라는 아이들, 이땅에 태어날 앞날의 세대를 위하여 민주주의의 두집이 나기 위해서라도 복기에 복기를 거듭했으면 좋겠다. 삶의 선수를 두기위해 서로 기대고 나만의 세상, 돈만의 세상이 아니라 나-너의 세상,  하고싶은삶+돈의 세상이란 것이 공유되었으면 좋겠다.  우리는 늘 '이다'와 '하다'로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잇속 밝은 것에는 하나하나 굵직굵직한 구체-추상의 덩어리면서도 정치에 있어서는 하염없이 작아지는 듯하다.  정치는 결과로 판단하는 이기심이라도 배워야하지 않겠는가? 내새끼만을 위한다면 아픔이 필요하겠냐만은 우리새끼를 진심으로 위한다면 하루하루 정치의 디테일을 논해야하지 않을까? 오늘도 더위가 꽂힌다.  마음, 아픔, 슬픔 잘 달래는 하루되시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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