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지방주재시인
인디밴드 장기하의 싸구려 커피가 인기란다
독립영화 워낭소리가 인기란다
인디포엠
독립시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는
나는 지방주재시인이다
소주잔 기울이며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그저 술이나 축내는
동네시인 몇몇은
간간이 낡은 술집 주인과 농담을 하며
변방의 영토를 안주 삼는다
가끔 슈퍼마켓 앞에 앉아
캔맥주를 마시고 있으면
길 가는 낡은 술집 주인이 합석한다
지방주재시인의 유일한 독자는
반겨주는 술집 주인뿐,
술집 주인마저 제 술집을 뒤로하고
거리의 파라솔 아래 앉아 있는
이곳은 지방이다
2
화
욕을 하거나
주먹으로 문을 치다가
발을 들었는데
찰 것이 마땅치 않다
굳건한 철제 책상
며칠째 물을 주지 않아
목을 길게 빼고 있는 란
2초 남짓 들었던 발은
잠시나마 분노를 분석한다
발이 본 것은 단단하게 서 있는 책상과
가냘프게 연명하는 잎새
화가 발로 향할 때
판단하고 사유하는 발
세상의 씨발이 그렇게 태어났다.
3
계란프라이 레시피를 통해 본 詩論
후라이팬을 달구고
올리브 기름 몇 방울 떨어뜨리고
이십초쯤 지난 뒤
유정란을 깨뜨려
노른자가 터지지 않도록
익힌다
이것이 계란후라이 레시피라고 한다면
꽃이 핀다
개나리가 노랗게 핀다
목련이 처연하게 피었다 진다
벚꽃이 화들짝 떨어진다
어찌됐든 화무십일홍이다
이것이 봄날의 개화를 말하는 레시피라고 한다면
그리고 이것을 시라고 쓴다면
계란프라이
꽃의 개화
詩가 어떤 차이가 있을까
뱀발. 책이 궁금하였지만 치밀어오르는 봄꽃의 개화가 더 당기어 발이 가는 곳은 꽃길이다. 나무가 다 같은 듯하지만 꽃맵시는 다들 제각각이다. 혹자는 다 같이 핀다고 투덜댄다지만, 그러는 사람 역시 식물원, 온실 속의 개화를 정신나갔다고 할 일은 없다. 그저 매년 세상이 토해내는데로 일단 즐기고 볼 일이다. 그렇게 꽃을 우러러보다 도촬한 벚꽃의 관음증에 놀라다 슬슬 책마실을 하려는데 한켠에 숨어있던 이 시집이다.
읽다보니 발문은 혹시?라는 의문이 든다. 지방주재시인인 김병호님이다. 발문은 술친구로 시작한다. 애써 거리를 두지만 그렇게 거리를 둘 수 없는 사이. 몇편의 겹쳐읽은 시가 떠오른다. 발문에서 경향신춘문예로 등단한 시인이 왜 20년동안 시를 멀리했을까라는 의문에 답한다. 시에 인생을 걸만도 한데, 지방주재시인은 한발짝 떨어져서 '아님말구'라는 일상에 시가 드리워져 있다한다. 시론에서 말하는 계란후라이와 시의 레시피에 무슨 차이가 있을까라고 말한다.
지방에 주재하는 시인에게 호들갑은 없다. 알아주는 이가 술집주인뿐이라고 하더라도, 시는 씨앗처럼 어떤 이들의 맘 속에 스며들어 발아를 할 것이다. 일상의 한점 한점들이 맺혀 있는 시인의 시는 분노와 욕망, 그렇지만 세상의 모서리 어디쯤 그 사이를 둔중하게 치고 있다. "화가 발로 향할 때/ 판단하고 사유하는 발/ 세상의 씨발이 그렇게 태어났다"고 한다.
분노가 치밀고 화가나도 세상은 온통 쏠의 톤으로 "안녕하십니까? 고객님!"하고 중화를 시키고 있지만, 분노해야 하고, 화가 치밀어 발을 냅다 지를 수 있어야 하지 않는가? 그렇게 부지불식간에 중화되는 사이, 우리의 무의식은 아마 중성이 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세상의 씨발은 있어야 한다. 새롭게 말이다. 지방주재시인들이 말하고 있지 않는가? 그 각혈을 들어야 한다. 인내와 끈기를....
발문에서 계룡시주재 김병호시인은 말한다.
"이렇듯 분노와 단둘이 선 어떤 발은 새로운 세상의 '씨'가 되는 '발'이 되었으며 이는 다시 세상의 시발(始發)이기도 하다 "
세상은 그래야 태어나는 것이라고....세상은 스마트폰에 너무 주눅이 들었다. 시인이 말하는 목없는 좀비처럼....일주일에 2-3번 술잔을 기울이지 않더라도 어깨펴고 목을 들고 서로의 비참도 즐거움도 갑론을박해야 한다. 비데에 부는 바람도 새로 이름붙여야 하는 것처럼..어쩌면 세상은 일상에서 아주 작은 바람, 샛바람이라 다른 이름을 불러줘야하는 일들이 많이 생겨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