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김정은의 딜레마'
 - 우리는 어디에 있는가,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1


'오바마-김정일의 딜레마' -오바마가 미국 GDP의 85퍼센트 이상을 차지하는 금융자본 중심의 현대화 경제를 고작 12퍼센트의 제조업 중심으로 되돌릴 수 없듯이, 김정일도 이미 도시화된 70퍼센트의 사람들을 맨손으로 농업에 종사하도록 바꿀 수는 없다는 점이다. 결국 오바마는 미국의 딜레마를 해결할 수 없고, 김정일도 북한의 딜레마를 해결할 수 없다. 이 두 가지 사례는 철학적인 의미에서 동질성을 갖는다고 할 수 있지 않는가?


버락 오바마든 김정일이든, 서양이든 동양이든, 이데올로기가 어떻게 대립되든, 어떤 체제를 유지하든, 결국 '올라가기만 할 뿐 내려오지는 못하는' 곤경에 직면하게 된다는 것이다. 즉 이미 '오르막길로만 움직인' 경제구조를 '바꾸기'는 매우 어렵다. 오바마든 김정이든 모두, 이전에 '오르막길로만 움직인' 과정이 남긴 막대한 유산에 대한 대가를 치를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170

 

2


중국공산당의 16대가 2002년에 열렸을 때, 목표에 매우 중요한 조정이 생겼음이 사실상 분명해졌다. '전면적인 소강'이라는 목표가 등장한 것이다. 새로운 지도자가 그것에 대해 이렇게 설명을 했다. 향후 20년의 큰 목표가 전면적인 소강이고, 우리는 2020년까지 전면적인 소강을 실현하기 위해 모두 각고의 분투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면적인 소강을 실현한 이후 20-30년 동안 또 다시 각고의 분투를 한다면 21세기 중반에는 중진국 정도의 수준에 다다를 수 있고, 그 이후 다시 한두 세대의 각고의 분투가 이어진다면 당연히 21세기 말에는 선진국의 현재 수준 정도에 이를 수 있다고 했다. 즉 그때가 되어야 우리는 비로소 중국의 현대화가 실현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네 가지 현대화라는 위대한 목표는 이렇게 백년을 미루어서, 21세기 말까지 연기되었다.178


이렇게 볼 때 국가의 전략적 목표는 이미 2002년에 변화되었다고 할 수 있다. '네 가지 현대화'에서 '전면적인 소강'으로 조정된 것이다. 이어서 중국공산당 17대에는 더욱 큰 단계적 조정이 이루어졌다. 생태 문명이라는 역사 단계적 판단이 제기된 것이다.(저우리 교수의 관점, 농업문명->공업문명-> 다시 생태문명) 16대의 '전면적인 소강'에서 17대의 '생태 문명'으로의 변화는 중국공산당이 시대와 더불어 발전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이고, 여전히 생명력을 가지고 끊임없이 자기 조정을 하고 있음을 나타내주는 것이기도 하다. 178

 

3

 

아인슈타인이 상대성이론을 발표한 마당에, 曺錦淸 차오진칭의 사고에도 간단한 과학철학의 지식이 덧붙여져야 했다. 그 어떤 영역에서의 수익도, 그에 상응하는 등가의 비용을 수반하지 않는 경우는 없다는 것이다. 단지 가로축과 세로축만으로 사분면을 구성하여 제도 변화로 인한 수익을 표시한다면 아마도 상향의 곡선이 될 것이다. 그러나 가로축을 하나 더 그려서 삼차원의 공간으로 구성한다면, 분명 하향의 곡선이 만들어질 것이다. 이것이 곧 수익에 상응하여 발행하는 제도의 비용이다. 이것이야말로 단순히 X축과 Y축으로 표현되는 평면의 세계가 아니라, 입체감이 있는 실제의 세계이다.


위에 언급한 것처럼 '오바마-김정일 딜레마'는 결코 이데올로기로 인한 문제가 아니고, 또한 정치체제로 인한 문제도 아니다. 그것은 현대화를 추구하는 어떤 경제체라도 막대한 '현대화 비용'을 외부나 또는 아래로 전가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다. 전가가 잘 되면 이른바 '유발성 제도 변화'가 되는 것이고, 전가가 잘 안 되면 이른 바 '강제성 제도 변화'로 나아가게 된다. 신제도주의 경제학은 제도 변화로 수익을 얻게 되는 과정을 강조하지만, 제도의 비용에 대해서는 진지하게 논의하지 않는다. 171

 

 

뱀발. 

 

1. 어차피 세상이란 것은 하나이기에 가장 피해를 입는 자는 없는 사람들이다. 팽이의 가장자리에 있는 자가 그 휘청거림에 더 요동치고 더 멀리나가 떨어진다. 세상에 공짜라곤 없다. 자본주의 300년에 석탄과 석유를 말라버리게 만들면서 이렇게 지구를 따듯하게 만든 것도 같은 식견이라 하겠다.  X-Y축의 공간에는 성장과 수익의 장밋빛에 가려진 굴곡이 드러나지 않는다. 네번의 위기에 얼마나 많은 도시인과 농민이 희생을 겪었는지? 그 경제의 파고를 어떻게 감내해내었는지 이야기한다. 우리에게 차상위 계층과 기초생활 수급자들이 수혜는 차치하고서라도 최소한의 생계나 유지하고 있는가? 성장을 위한 식물인간, 그 자화상이란 것을 부정할 수 있을까?

 

2. 저자는 중국의 산업자본과 금융자본의 비율이 미국과 역전되어 있다고 한다. 여러번의 위기에 중국은 내륙과 향촌에 도로과 전기와 인터넷선을 놓고 깔고 가다듬었다고 한다. 그런 이유로 자본의 동맥경화가 생기지 않았고, 이제는 금융자본도 안정적인 상태에 이르렀다고 한다. 그는 마르크스 경제학자로서 중국은 유럽이 걸었던 길, 미국이 가고 있는 길과 다른 길을 갈 수 있는 독특한, 마르크스 표현대로라고 하면 아시아 생산양식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백년을 되돌아보면서 자본의 원시적축적, 자본이 따로 움직이고 산업자본화, 금융자본화되는 가능성은 최근에서야 맛보게 되었다고 한다.  역사발전 5단계론에 따라 이제야 자본주의의 그물에서 움직이는 국가가 있다고 한다. 유럽이 식민지 수탈로, 미국이 전쟁의 수혜를 입으면서 성장했다고 하면 중국은 다르다고 하는 것이다.  

 

3. 북한의 현상태에 대한 진단은 새롭다. 1980년대 기계화에 따른 농업의 비약적 발전이 있었다고 한다. 그런 발전에 따라 대부분 도시로 이주하게 되고 농촌대 도시의 비율이 3:7정도로 과도한 도시화가 있었고, 구 소련의 몰락으로 트랙터에 기름도 넣지 못할 지경이 되었다 한다. 중국처럼 농사지을 수 있는 사람도 인력도, 하방하여 몸으로 때울 수 있는 처지도 되지 못한다 지적한다. 북한의 몰락 원인이 기계화였다고 진단한다.

 

4. 저자는 삼농, 농민과 농촌, 그리고 농업의 정책이 여러 문제의 복합적인 해법으로 제시하고 있다.

 

5. 중국공산당은 전면적인 저성장은 2002년 16대 대회에서 이미 정강정책으로 채택하였고, 최근 생태적인 관점에서 정책을 설계하고 있다고 전한다. 그의 백년의 급진이 이루어낸 진단과, 좌우를 막론하고 백년의 설계에 매진하고 있는 모습이 글로 전해진다.

 

6. 우리에게 5년은 있는가? 10년은 있는가? 하물며 자본주의에 대한 수평적인 진단은 있는가? 진보보수를 너머 백년을 짚고 넘는 공감이라도 있는 것일까? 내륙으로 더 갈수도, 농촌으로 더 깊어질수도 개성과 평양, 그리고 중국으로 갈 수 있다면 답이 있는가? 전면적인 소강을 합의할 수 있는가? 지나친 비틀림을 조금 곧게 펼 수는 있는가? 이렇게 세계에서 10번째 가까이 있는 부국이 그림조차 그리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박근혜-박원순-안철수 의 딜레마'는 똑같은 맥락은 아닐까? 답이 있다면 북한도 아니고 중국도 아니고, 캐나다도 아니고 아마 지금 여기에 있을 것이다. 철학도 이론도 빌려쓰는데만 있을 것은 아니다. 아마 가슴과 머리 사이 그 어딘가에... ...

 

7. 참 짧은 논문들에 대한 국내 경제학자, 정치학자..중국학자 .등등과  진보 그룹 내의 견해들이 몹시도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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