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걸자


나는 퇴색할 대로 퇴색한, 그리고 반쯤 벌거벗은 높다란 담벼락을 따라 걸어가고 있었다. 먼지로 뒤범벅된 송진 가루가 발뒤꿈치에 따라붙었다. 길에는 나 말고도 몇 명이 제 갈 길을 향해 걷고 있었다. 산들바람이 불어오자 담장 너머 길가로 삐죽이 나와 있는 높다란 나뭇가지에 아직도 매달려 있는 촉촉한 나뭇잎들이 내 머리 위에서 일렁거렸다.


산들 바람이 불어오자 온 세상이 흙먼지투성이다.


한 아이가 나에게 구걸을 했다. 그 아이는 두 겹으로 된 옷을 입고 있었고, 불쌍해 보이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는 머리를 조아리고 나를 옴짝달싹 못하게 만들면서 따라오고 있었다. 나는 그 아이의 목소리와 태도가 싫었다. 나는 그 아이가 결코 슬프지 않고 단지 어린아이의 장난기가 서려 있는 것이 싫었다. 그리고 쫓아오면서 애원하는 듯한 그의 처량한 목소리도 가증스러웠다.


나는 길을 따라 걸었다. 다른 사람들도 자기 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산들바람이 불어온다. 온 세상이 흙먼지투성이다. 한 아이가 나에게 구걸을 했다. 그 아이는 두 겹으로 된 옷을 입고 있었고, 불쌍해 보이지도 않았다. 단지 벙어리처럼 두 손을 활짝 펴고 억지를 부리는 손짓을 했다.


나는 그 아이의 이런 손짓을 증오한다. 더구나 그 아이는 혹 벙어리가 아닐지도 모르고, 그것은 구걸하는 한 방법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에게 아무것도 주지 않았고, 베풀려는 마음도 없었다. 단지 나는 베푸는 자의 자리에 서서 그에게 성가심과 의심, 그리고 증오를 주었을 뿐이다.


나는 무너질 대로 무너진 토담을 따라 걷고 있었다. 이가 빠진 돌담 사이로 담장 안이 보인다. 하지만 그곳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산들바람이 불어온다. 쌀쌀한 가을바람이 내 두 겹옷을 뚫고 들어온다. 온 세상은 흙먼지투성이일 뿐이다.


나는 앞으로 어떤 방법으로 구걸할 것인지를 생각했다. 내가 구걸하려고 외쳐 댄다면 어떤 목소리로 해야 할까? 벙어리 시늉을 한다면 어떻게 손짓할까? .......


다른 사람들은 제각기 자기 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나는 앞으로 베품을 얻지 못하고, 베풀어 줄 마음을 얻을 수도 없을 것이다. 내가 얻을 수 있는 것은 스스로 베풀어 주려는 자 위에서의 성가심, 의심, 증오뿐이다.
나는 앞으로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고, 침묵을 지키며 구걸할 것이다.....


나는 적어도 허무만은 얻게 되리라.


산들바람이 불어오자, 온 세상은 흙먼지투성이다. 이와는 별도로 다른 사람들은 각각 제 길을 걷고 있다.


흙먼지, 흙먼지........  ...........


흙먼지 ...........

 

 

뱀발. 

 

1. 루쉰의 들풀 가운데 구걸하는 자 전문이다. 나도 그러하고 사람들은 최악의 경우를 생각하지 않는다. 빚더미에 앉고 병마가 찾아오고 늙어가는데도 말이다. 나만은 내 자식만은 내 가족만은 부자되고 좋은 성적에 잘 살거라고 말이다. 아이를 키우면서 지나친 낙관은 없어졌다. 병을 얻고 아픈 자식이 생기면서 공부를 잘하기를 바라는 부모의 욕심을 버렸다. 그리고 어느 순간에 벼락처럼 일터를 잃을 수 있고, 그것에 예외되는 일터에 다니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이엠에프가 변화시킨 것은 정많고 사람 좋아하는 이들을 벼랑으로 더 내밀었고, 죽음의 사선에서 돈폭탄에 명멸했다는 것이다. 오늘도 여전히 돈지뢰에 밟힌다. 한번 밟히면 삶은 비참의 버전으로 바꿔야 한다. 나라고 예외가 아니다. 최악을 가정한다는 것은 삶에 대한 면역력이자 사회에 대한, 세상을 바꿔갈 희망이기도 하다. 오늘도 다시 읽는다. 루쉰이 얻는 허무를 느낀다.  온 세상은 흙먼지투성이다. 이와는 별도로 다른 사람들은 각각 제 길을 걷고 있다.....흙먼지...흙먼지....온통 흙먼지.... ....

 

2. 세모녀가 죽어나가도 수중에 주식오르는 걸 화제로 삼는다. 삶과 삶들 사이에는 휴전선이 있는게다. 삶이 울컥거렸다. 주식도 돈도 놀리지 않는 습관들인 나를 위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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