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을 지키고 가꾸는 사람들이 살기 어려운 세상이다. 마음 좋은 사람들, 남을 위하는 사람들은 오래오래 건강을 지키기도 돈을 벌기도 쉽지 않다. 시간의 함수로 지켜보면 좀더 야멸차고, 좀더 독하고, 좀더 자신의 이익만을 챙기기에 나은 사회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각박하다.
내부고발자라는 표현이 맞는 것인지 의심이 든다. 고발이라는 어감자체가 이런 양식을 담고 있는 말이 아니다. 조직의 논리가 횡행하고 그 안의 개인은 자신의 주장을 관철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양식있는 전문가나 양심있는 사람들이 양심을 지키면서 편히 살 수가 없다. 더구나 시스템의 논리에 반하는 입장을 가진 이들에게 세상은 숨도 쉬지 못하고 뱉어내기만 한다.
조직과 시스템의 병폐를 줄이거나 그들만의 리그를 벗어나게 하려는 외로운 몸짓을 사회가 용인하는 분위기도 아니지만, 만일의 경우에 그 고난에 찬 이들과 교감하거나 대응하려는 대항시스템도 말로만 할 뿐 만들어지려는 움직임이 미미하다. 4대강 반대의 양심선언을 한 연구원의 박사 이후의 삶은 어떠한가? 군대, 일터, ...숱하게 양심을 지키는 이들이 생겨날 수밖에 없음에도 유행처럼 지나가버리는 관심들로만은 그들의 삶을 조금도 부여잡을 수 없다.
국가와 관료와 관성화된 조직이 잡을 수 없다면, 사회의 밀알같은 역할을 하는 이들을 위한 최소한의 보험장치라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월급여 ** * 2년...보장보험? 같은 것이 아니더라도 늘 야성이 있는 조직과 사람들이 그 왜곡된 시스템의 중심을 잡기 마련이므로 그 서글픔들은 슬픔과 관심밖을 벗어나 소멸하는 것이 아니었으면 한다.
양심적인 사람들의 연대...그리고 최소한의 삶의 연대를 이루어낼 방법과 시도와 실험을 하지 않는다면 늘 주위에 분위기라는 악령이 우리들의 들숨과 날숨에 기생할지 모른다. 더 심한 감기처럼...이 땅의 면역력은 참으로 감성적일 뿐, 이성의 장치를 만들기위한 노력이 부족하다. 또 다른 가족이 더 많이 만들어져야 한다. 의도해서라도.. ...더 낫게 살 이유가 충분히 있다. 양심을 지킨다는 일보다 중요한 가치가 나의 마음에게 더 있는가?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