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으로 시달리는 근로자는 노역을 벗어나고 싶어도 노동을 말하지 않는다. 그런 노동자가 싫고 잊어버리고 싶어 부모는 자식에게 공부 못하면 저렇게 된다고 세뇌한다. 힘에 중독된 언론은 노동에 관한 기사는 발르고 발라내 드러내지 않는다. 정치인은 어느 누구도 나서서 노동을 홀로 얘기하거나, 먼저 얘기하지 않는다. 정치인들은 하나같이 노동과 삶을 연결시키지 않으며, 정치에 노동을 앞세우지 않는다. 그토록 많은 전태일들이 단풍으로 되돌아 와도 마치 아무런 일이 없는 듯 세상은 더 넣을 곳이 없는 장농 속으로 꾸깃꾸깃 쳐넣는다. 살점이 보이고 피가 흥건히 흘러나와도 금새 금빛찬란하다고 입을 봉해 놓는다. 노동을 먼저 말하려 하지 않은 정치는 벙어리다. 노동을 앞세우지 않는 인권은 냉가슴이다. 노동을 가슴에 사무치지 않는 정책은 변태다. 국시가 반노동인 듯, 살아지는 삶만 있는 노동의 그물은 그물코가 풀리고 잘려져야 한다. 정치는 유죄다. 어느 정치인도 노동을 먼저 말하지 않기에 유죄다. 어느 정치도 삶을 보듬고 품에 안으려 하지 않아 뒷전이기에 유죄다. 어느 언로도 삶의 결에 녹아있는 노동의 덫을 헤아리려 하지 않기에 유죄다. 세상을 키운 것의 팔할은 바람이 아니라 노동이기 때문이다. 살아지지 않고 살게 좀, 제발 - - -세상아!
